걸어서 5600㎞ 유럽횡단 "강도라도 앞길 못 막아"
“제 고향이 경남 하동인데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부터 뒷산으로 지는 해를 보면서 해가 지는 곳은 어디일까, 거기에 가보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그게 평생의 꿈이 됐죠.”

이중길 전 서울예술고 교장(71)은 자칭 ‘꿈의 나그네’다. 어린 시절부터 품은 꿈 때문에 대학(서울대)에서 지리학을 전공했고 서울예고에서 40년 동안 지리를 가르쳤다. 그리고 10여년 전부터 그 꿈에 도전하기 시작했다. 유라시아 대륙 횡단이다.

“환갑 때 전남 해남 땅끝에서 휴전선까지 650㎞를 16일 만에 걸어서 종단했어요. 4년 전에는 프랑스의 르퓌부터 스페인 산티아고까지 가는 길 중 1800㎞를 걸었고, 지난해에는 4월24일부터 150일 동안 터키 이스탄불에서 불가리아 세르비아 루마니아 헝가리 오스트리아 스위스를 거쳐 프랑스 중부 르퓌까지 3200㎞를 걸었죠. 두 구간을 합치면 유럽의 동쪽에서 서쪽까지 5000㎞를 걸은 셈인데 유럽을 동서로 도보횡단한 사람은 전 세계에 없는 걸로 알고 있어요.”

이 전 교장은 오는 7월 이스탄불에서 유럽의 서쪽 끝인 포르투갈까지 5600㎞ 가운데 남아 있는 포르투갈 구간 600㎞를 마저 걸어 동서횡단을 완성할 계획이다.

그는 유럽으로 떠나기 전에 150권 이상의 책을 읽고 유럽 13개국의 나라별 자료파일을 만들었다. 숙식은 산티아고 순례길 곳곳에 있는 순례자 숙소를 이용해 비용을 줄였다.

“대학 때 배구선수로 뛰었고 교사로 일하면서 크로스컨트리에 빠져 서울 인근의 산을 17년 동안 뛰어다녔으니 체력엔 문제가 없어요. 덕분에 유럽여행을 하면서도 하루 평균 25~30㎞, 많을 땐 최장 67㎞까지 걸을 수 있었죠.”

기나긴 도보여행에서 인적이 없는 산길을 혼자서 걷는 것은 흔한 일. 자칫 넘어지기라도 하면 수백m 낭떠러지로 떨어질 수 있는 비탈길을 몇 ㎞씩 통과하기도 했다. 불가리아 장미계곡 근처에선 집시 7명에게 지갑을 빼앗기기도 했다. 그래도 그는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한반도에서 포르투갈까지 거리가 3만㎞쯤 됩니다. 여건이 되면 북만주를 지나 중앙아시아 초원길을 걸어 유라시아 대륙 전체를 횡단하고 싶어요. 치안 등이 너무 열악하고 위험해 혼자서는 못할 것 같아요. 텐트, 식량, 물까지 가지고 다니려면 캠핑카와 동료가 필요해 스폰서를 찾고 있죠. 2년 뒤에는 이탈리아부터 덴마크 북부까지 유럽 종단도 할 생각입니다.”

그는 “한국은 장사(무역)를 해서 먹고 사는 나라인데 국사와 국토지리만 해서는 안 된다”며 “세계사, 세계지리로 안목을 넓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유럽 사람들은 요즘 한국에 대해 감탄을 넘어 존경한다고 하는데 삼성 현대가 그 주역이고, 박지성 선수와 비보이도 한몫했다”며 “젊은이들이 실업난만 탓하지 말고 세계로 눈을 돌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