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최고의 외교전략가에게 배우는 '중국의 속내'
중국에 관한 책을 쓰고 있으면서도 중국은 자주 이해의 범위를 벗어난다. 시간적으로 켜켜이 쌓인 기억과 여러 기후대에 걸친 영토, 수십 개의 민족에 13억 인구로 된 나라를 어떻게 이해한단 말인가. 미국은 어떤가. 미국이라는 정치체와 그들의 이론을 대하자면 마치 두꺼운 유리 벽 앞에서 갈 곳 몰라 하는 사람 같다. 안과 밖이 철저히 구분된 유리 벽을 통해 사방을 응시한다. 《헨리 키신저의 중국이야기》(민음사)를 읽으면서 새삼 ‘현실주의 정치이론’을 처음 만났을 때의 충격이 떠올라 몸서리쳤다. 멀지 않아 이 책은 중국이라는 주제를 다룬 또 한 권의 《인간 국가 전쟁(Man, the State and War: a Theoretical Analysis)》이 될 것 같다.

저자는 역사가와 정치학자의 꼭 중간에서 현대 중국을 고민하는 사람들의 궁금증을 빠뜨리지 않고 서술한다. 역사와 문화, 그리고 세계사적인 조건들을 씨줄과 날줄로 엮으며 중국이라는 실체를 구성해가는 저자의 솜씨는 놀랍다.

[책마을] 최고의 외교전략가에게 배우는 '중국의 속내'
그는 저우언라이(周恩來)와의 만남을 이렇게 회상한다. “우리 중 어느 누구도 상대의 기본 신념을 바꾸겠다는 환상을 갖지 않았다.” 중국의 실체, 가능성, 그리고 한계까지 모두 인정할 수 있는 것이 현실주의자다. 그는 이렇게 밝힌다. 중국은 대단히 특이한 나라다. 중국에서는 수천 년의 역사가 현실에 짙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3000년이 더 된 문자를 오늘날에도 쓰며, 2000년 전의 병서를 오늘날 지침서로 활용한다. 예전처럼 지금도 자신을 세계의 중심이라고 믿으며, 군사적으로 패배해도 결국 적을 자신과 비슷하게 만들어놓는다. 전쟁을 심리학으로 바꾸며, 외교를 전쟁의 수단으로 바꾼다. 그러면서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상대의 전략적인 수단들을 잠식한다. 마치 바둑의 고수처럼.

그러나 그들의 독보적인 지위는 서구와 일본의 등장으로 완전히 박살나고 말았다. 임칙서의 호언은 허세로 끝났고, 이홍장의 이이제이는 섬나라에 굴복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그리고 100년간 중국은 서서히 세계사 무대에서 퇴락한 아시아의 상징으로 남았다. 거기서 끝났는가. 다시 닉슨의 말을 빌리면 “그러니까 내 말은, 8억 인구가 어떤 괜찮은 시스템 하에서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면… 그들이 온 세상을 이끌지 않겠는가 말이다.” 실제로 상황은 그렇게 진행되고 있다.

이 책의 절정은 역시 1970년대 초 저자가 직접 개입해 일궈낸 중·미 관계 정상화다. 베트남 전쟁에 대해 마오의 사뭇 전향적인 태도, 저우언라이에 대한 동지적인 감정, 시적이기까지 한 마오와 키신저의 대화는 외교적 수사학의 백미다. 마치 관중이 “술 거를 띠풀이 없어 제사를 못 지내겠습니다” 하니 굴완이 “풍마우불상급(風馬牛不相及)한데 어찌 이곳까지 오셨습니까”하는 격이다.

책을 읽으며 아쉬운 점도 있었다. 물론 내재적인 민주화의 힘이나, 역사적인 조건에 따라 국가의 성격이 진화하는 과정을 쓰지 않은 것은 이해한다. 그러나 왜 항일전쟁 시기에 새로운 중국의 리더십이 형성되었다는 점을 무시했을까. 그리고 사려 깊은 독자는 저자가 숨기고 있는 것을 찾아보기 바란다. 캄보디아 불법 공습이 어떻게 우회적으로 묘사돼 있는지, 중국을 이용한 베트남 봉쇄 음모가 어떻게 미화되고 있는지. 현실주의자들은 2강 체제든, 국가군들의 대립 체제든, 강자들에 의한 힘의 균형 상태를 선호한다. 베트남 ‘따위’가 끼어들면 일이 복잡해진다. 어쩌면 친절히 국제 사회에서 우리는 언제나 한국 ‘따위’라는 것을 상기해주는 것 같다.

정부 관료, 국제정치 연구자, 비즈니스맨은 물론 중국을 이해하고자 하는 이라면 반드시 읽으라고 권하고 싶다. 어렵겠지만 언젠가 이만한 이론을 만들고 이만한 안목을 갖추길 고대한다. 그는 실제로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고 있다. 과연 높이 나는 용이 후회하는 순간(亢龍有悔)이 올 것인가. 물론 ‘중국적인 관점’에서 보면 그런 순간은 언젠가 오겠지만. 다만 우리 스스로 용이 되고픈 욕망은 버리지 말라고 하고 싶다. 이 책이 서가에서 여러 번 다시 내려올 운명임은 분명하다.

공원국 《춘추전국 이야기》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