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연목구어 불과한 저축銀특별법
최근 일부 국회의원들이 부실저축은행의 예금자보호 한도를 늘리는 특별 법안을 추진함으로써 금융권과 정치권, 행정부의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이 특별법이 통과된다면 저축은행에 예금을 했다가 영업정지로 손해를 본 피해자들은 예금자보호법이 정한 5000만원을 초과하는 예금과 후순위 채권에 대해서도 55%를 보전받아 다른 투자자들과 형평성에 문제가 생기게 된다. 결국 4·11 총선을 의식한 선심성 법안이라는 비판이 제기되는 가운데 14일 국회 정무위원회는 피해자 보상으로 사용되는 예금보험기금은 사후적으로 정부재정으로 보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예금보험기금은 금융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장치로 금융기관이 부실화해 고객예금을 지급할 수 없는 상황에서 예금보험공사가 금융기관을 대신해 지급한다. 그 돈은 예금보험공사가 평소에 금융기관으로부터 보험료를 받아 적립한 것이다. 따라서 보험료 역시 투자자인 국민의 돈이며, 일반국가재정 역시 국민의 세금이기 때문에 피해보상을 어떤 재원으로 하든지 결국은 조삼모사(朝三暮四)식의 처리일 뿐이다. 특별 법안이 법적한도인 5000만원 이상의 예금까지도 보호하려는 시도는 기존 예금보험제도의 근간을 뒤흔드는 것이다. 앞으로 부실한 금융회사가 생길 때마다 특별법을 만들어 피해자를 구제할 수 없다는 사실은 자명한 것 아닌가.

상호저축은행은 일반 시중은행의 문턱이 높아 금융혜택을 입지 못하는 서민과 소규모 기업의 금융편의를 도모하고 저축을 장려하기 위해 조성됐다. 저축은행의 근본 취지는 수익성보다는 공익성에 중점을 두고 있다. 시중은행의 대출을 받지 못해 높은 금리의 사금융을 이용할 수밖에 없는 계층을 금융시스템 안으로 끌어와 재무건전성을 유지시키도록 하고, 예금금리도 높게 적용해 안정적인 재무설계를 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그런데 저축은행은 서민금융 중개를 위해 부여한 정부의 우선적인 혜택을 악용해 무리하게 영업을 확장한 결과 외환위기 이후 부실사태가 빈번하게 발생했다. 그때마다 부실정리를 위해 쓰인 예금보험기금과 공적자금만 해도 이미 100조원이 넘는다.

2006년 자기자본비율 8% 이상, 고정여신비율 8% 미만의 저축은행에 대해 자기자본 20% 범위에서 80억원 이상 대출이 가능토록 허용한 이른바 ‘8·8클럽제도’는 저축은행의 무리한 외형확대 계기로 작용했다. 대부분의 저축은행은 본연의 서민금융 중개 기능을 저버리고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을 통해 높은 수익을 올리려 자금을 쏟아부었고 서브 프라임 사태로 부동산시장이 급격히 위축되면서 자금을 회수하지 못해 부실의 늪에 빠지게 됐다. 여기에 저축은행 임직원들의 불법대출과 횡령, 금융감독기관과 정치권이 연루된 뇌물수수 비리까지 뒤엉키면서 총체적 난국에 빠진 것이다. 이 와중에도 국민의 혈세는 부실 저축은행 구조조정을 위해 계속 쓰이고 있다.

정부가 철저한 리스크 관리와 외부감독 아래 수익성보다는 공익성에 중점을 둬야 할 저축은행을 방만하게 운영하도록 방치했다는 점은 비난받아야 마땅하다. 그러나 국회가 이에 대해 국민을 대신해 할 일은 금융감독이 제대로 수행되고 있는지 감시하고 독립성과 전문성을 갖춘 리스크관리위원회를 통한 내부통제가 잘 이뤄지는지 살펴보는 것이지, 원리원칙을 무시한 연목구어(緣木求魚)식의 구제가 아니다. 금융회사의 도덕적 해이를 해결한다면서 예금자보호법을 뿌리째 뒤흔드는 특별법을 만드는 것은 유권자들의 표를 얻기 위해 국민의 세금을 마음대로 쓰는 또 다른 도덕적 해이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정치인들이 경제문제를 경제논리에 따르지 않고 인기영합주의적인 방식으로 해결하려 한다면 결국 우리도 그리스처럼 국가부도 위기로 치닫게 될 수 있음을 유념하고 특별법안에 대한 논의를 중단해야 한다.

조하현 < 연세대 교수·경제학 hahyunjo@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