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우주와 나
사춘기 시절 누구나 한 번쯤 고민하는 것 중 하나가 ‘나는 누구인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하는 본질(本質)에 관한 궁금증일 것이다. 필자는 어릴 적부터 우주(宇宙)에 관심이 많았다. 유년 시절 내내 마음 깊은 곳에서는 우주의 시초, 시간과 공간, 다른 생명체의 존재에 관한 끊임없는 질문들이 생겨났다.

이는 여자친구를 만나 데이트할 때 화제가 되기도 했고, 주교님이나 신부님을 뵐 때 여쭙는 단골 메뉴이기도 했다.

우주는 너무나 광활해서 상상조차 하기 쉽지 않다. 당장 지구와 태양 사이의 거리만 해도 1억4960만㎞나 되는데 이는 비행기로 20여년, 자동차로는 170여년이나 걸리는 거리다.

태양계의 지름은 1000AU(1AU는 1억4960만㎞)이고 태양계가 속한 우리 은하의 지름은 10만광년(1광년은 6만3240AU), 그리고 우주 전체의 지름은 274억광년이나 된다고 한다.

우주는 수천억개의 은하로 이루어져 있고 각 은하 역시 수천억개의 항성과 이들 주변을 도는 행성을 갖고 있다. 최근 과학자들은 위치와 크기 계산, 원소의 존재 여부에 대한 검토를 통해 생명체가 살아갈 수 있는 외계 행성의 수가 생각보다 많다고 말한다. 하지만 많다고 하더라도 접촉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아무리 가까이 있다고 해도 그곳에 도달하는 시간만 수백년에 달할 것이기 때문이다.

우주는 우리의 머릿속에 평상시 망각의 상태로 머물러 있다. 현실에 존재하지만 너무도 실감하지 못해 아예 생각하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

중요한 것을 평소에는 종종 잊고 사는 것은 가장 가까웠던 사람을 떠나보내는 일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장례식장에서 고인을 떠나보내고 나면 우리는 살면서 또 잊고 지낸다.

최근 들어 한계를 극복하는 인간의 능력은 증대되고 있지만 그것 또한 한정된 영역에 국한된다. 갑작스러운 자연재해, 그리고 예기치 못한 사고나 죽음을 맞닥뜨리면 그 한계를 더욱 절실하게 느끼게 된다. 이는 아마도 인간의 머리로는 상상조차 불가능한 우주의 큰 섭리가 작용하기 때문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한계를 가진 인간과 무한한 우주를 생각한다면 다소 허망한 생각도 들고 회의에 빠질 수도 있다. 하지만 이 같은 한계를 겸허히 받아들이고, 나와 연결된 우주의 섭리에 의지한다면 현실의 삶이 보다 평안해지고 삶의 무게 역시 가벼워질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우주의 섭리가 인간을 관장한다고 믿는다면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 나오는 라틴어 카르페 디엠(carpe diem·현재를 잡아라)이라는 말처럼 현재를 보다 충실하게 살아가는 것만이 답(答)이 아닐까 생각한다.

서종렬 < 한국인터넷진흥원장 simonsuh@kisa.or.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