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기'에 의존한 물가 때려잡기…눌렀던 가격 정상화땐 후유증 커
이명박 대통령은 취임 직후인 2008년 3월 서민생활과 밀접한 52개 품목을 별도로 선정해 관리하겠다고 밝혔다. 쌀 배추 마늘 돼지고기 등 주로 생필품이 포함된 이른바 ‘MB 물가’였다.

MB물가는 그러나 대통령의 집중관리 지시가 무색할 정도로 롤러코스터를 탔다. 대표적인 게 배추다. 지난해 8월 배추가격은 ‘MB물가’로 편입된 직후보다 무려 154% 급등했다. 비난여론이 빗발치자 정부는 부랴부랴 수입을 확대, 불과 4개월 뒤인 12월에는 7분의 1로 떨어뜨렸다.

이 대통령은 3일 과천청사에서 열린 기획재정부 업무보고에서 이 같은 물가관리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재정부 관계자는 “서민생활과 밀접한 품목은 수급을 미리 조절해 가격급등락이 발생하지 않도록 연중관리하는 것이 맞다는 취지의 지적이 있었다”고 말했다.

재정부는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주요 품목별로 담당자를 정해 책임지고 수급동향을 파악하고 대책을 선제적으로 마련토록 하는 ‘물가관리 책임실명제’를 추진키로 했다. 농식품은 농림수산식품부가, 공공요금은 국토해양부가, 공산품은 지식경제부가 각각 실무담당 과장에게 품목을 할당, 가격 동향을 모니터링하고 필요시 할당관세를 내려 수입을 확대하는 등의 조치를 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환율 금리 등 거시정책 수단을 그대로 둔 채 ‘공무원의 개인기’에 의존한 물가관리대책의 한계를 지적하고 있다. 시장원리에 의한 수급안정보다는 각 부처가 가진 ‘힘’을 동원한 ‘때려잡기식’ 물가관리가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또 다른 정부 관계자는 “대외 수급불안에 따른 수입 원재료의 가격변동과 세금 등이 훨씬 큰 가격변수”라며 “간부 한 명에게 과다한 부담을 지우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본다”고 속내를 밝히기도 했다.

업계에서는 정부 당국자가 직접 나서 가격인상 자제를 요구하는 ‘구두개입’이나 공정거래위원회 조사 등과 같은 강압적 수단이 올해도 되풀이되는 건 아닌지 우려하고 있다. 지난해 최중경 전 지식경제부 장관이 나서 “정부에 성의표시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정유사에 기름값 인하를 종용, 인위적으로 ℓ당 100원씩 내렸던 전례도 있다. 지난해 말에는 국세청이 나서 맥주 등 주류값 인상을 저지했고, 라면 우유 등의 가격도 공정위의 ‘창구지도’로 인상이 보류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정부가 나서 일시적으로 가격인상을 막을 수 있지만 가격이 한꺼번에 정상화되는 과정의 후유증이 더 크다며 물가책임실명제와 같은 대증요법의 부작용을 지적하고 있다. 실제 ‘MB물가’로 지정된 쌀과 돼지고기 고등어 사과 고추장 설탕 등은 물가당국의 집중 관리에도 최대 48.5% 급등했다.

정부는 그러나 일단 대통령 지시를 속도감 있게 이행한다는 방침에 따라 5일 열리는 비상경제대책회의에 물가책임실명제를 안건으로 올렸다. 재정부는 이날 서민생활 민감품목을 정해 부처별 담당을 할당, 연중관리체제에 들어가기로 했다.

이심기/서욱진 기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