팝아트부터 누드화까지…거장들 '색채 마술'
연말연시를 맞아 뉴욕과 런던, 파리, 도쿄 등의 유명 미술관들이 ‘겨울 여행객’을 겨냥한 특별전을 열고 있다. 이탈리아 미술가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파격적인 미학,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자본주의 리얼리즘, 구사마 야요이의 팝아트 등을 다룬 기획전이 눈길을 끈다.

◆‘미술계 반항아’ 카텔란의 파격

팝아트부터 누드화까지…거장들 '색채 마술'
뉴욕 구겐하임미술관은 이탈리아 ‘미술계의 반항아’ 마우리치오 카텔란(51)의 회고전 겸 은퇴전을 열고 있다. 지난해 광주비엔날레에 참여한 카텔란은 소변기를 전시장에 들여놓고 ‘샘’이라 이름 붙인 마르셀 뒤샹 이후 가장 파격적이고 도발적인 작가로 평가받는다. 트럭운전사 아버지와 청소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시체위생처리사를 비롯해 정원사, 요리사, 간호사 등의 직업을 전전하다 우연히 가구디자이너로 일한 것이 미술계에 입문하게 된 이력의 전부다.

‘올(All)’을 주제로 한 이번 뉴욕 전시 역시 그의 도발적인 면모가 그대로 드러난다. 무릎 꿇은 히틀러, 밀랍으로 만든 관 속에 누워 있는 케네디, 운석에 맞은 교황, 교수형 당한 남자, 줄무늬 티셔츠를 입은 피카소, 흰 천에 덮여 코만 내놓은 코끼리 등 설치 작품들이 전시장 천장에 매달려 있다. 마치 ‘파격’을 요구하는 세상을 조롱하듯 엽기적이고 압도적이다.

◆땡땡이 무늬에 미친 구사마

파리 퐁피두센터는 최근 일본 팝아트의 거장 구사마 야요이의 작품전을 시작했다. 화가이자 소설가인 구사마는 33년째 정신병원에서 치료받으며 작업하고 있는 일본의 세계적 현대미술 작가. 열 살 때부터 물방울이나 그물을 모티브로 그림을 그려 ‘땡땡이 무늬에 미친 화가’로 불려왔다. 이번 전시는 그의 1990~2000년 작품 ‘호박’과 ‘꽃’ 시리즈, 조각 작품 등 대표작 150여점을 연대기적으로 내보인다. 물방울 무늬나 미세한 그물 같은 이미지를 통해 스스로의 환각 증세를 치유하고자 하는 심리 상태를 엿볼 수 있다.

◆리히터의 화업 50년 한눈에

전후 독일 대표작가 게르하르트 리히터(80)의 화업 50년이 궁금하다면 런던 테이트 모던을 찾아보자. 리히터는 1950년대 ‘회화의 종말’이 예고됐던 상황에서 구상과 추상, 사진과 회화, 고전과 반 고전의 경계를 넘나들며 새로운 회화 영역을 개척했다. 1985년 오스카 코코슈카상을 받았고, 1996년 베니스 비엔날레 황금사자상을 수상했다.

팔순을 맞아 열리는 이번 전시에는 50년 화업 전반을 아우르는 작품 100여점이 걸렸다. 1960년대 전후 사진을 활용한 사실적인 그림을 비롯해 초상화, 사회주의를 반영한 역사적 회화 등이 눈길을 끈다.

◆키퍼의 파워풀한 설치 미학

독일이 낳은 현대미술 거장 안젤름 키퍼(64)의 작품전은 독일 바덴바덴 프리더부르다 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키퍼는 고사리 등 양치 식물을 작품 소재로 활용하며 종교와 신화, 생명과 죽음, 선과 악, 자연과 문명 등 서로 상반된 개념을 하나로 결합시켜 시간의 영속성을 표현해왔다. 1945년 구 동독지역인 도나우싱겐에서 태어난 키퍼는 1980년 베니스 비엔날레에 바젤리츠와 함께 독일 대표로 참여하면서 월드 스타로 떠올랐다. 내달 15일까지 이어지는 이번 전시에는 근작 33점을 만날 수 있다. 특히 서양 문명의 발원지인 중동지역을 은유적으로 묘사한 2009년작 ‘비옥한 반달’이 감성을 자극한다.

◆색다른 일본의 누드화

도쿄국립근대미술관은 누드와 현대미술의 관계를 보여주는 ‘일본의 누드’전을 기획했다. 누드 예술이 시각예술로 발전하는 과정을 체험할 수 있는 자리다.

전시장은 ‘나체를 만들다’ ‘나체를 허물다’ ‘다시 나체를 만들다’ 등 3개의 섹션으로 나눠 1880년대부터 1940년대까지 대표적인 유화 누드 100점을 걸었다. “누드는 타인에게 보여지는 오브제이자 일종의 의복”이라고 한 누드 정의를 반추하며 즐겨볼 만하다.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