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산 상속 않겠다는 워런 버핏…한 푼도 안물려 준 아버지와 닮은꼴
세계 최고의 부자로 꼽히는 워런 버핏의 아버지 하워드 호먼 버핏은 주식중개업을 하다 미국 공화당 하원 의원(4선)을 지냈다. 하워드 버핏 의원은 진지한 성격에 강직한 성품을 지닌 인물로 정평이 났다.

하원 의원 세비가 연간 1만달러에서 1만2000달러로 오르자 인상분을 재무부에 반납한 적도 있다. 요즘 표현으로 하자면 까칠할 정도로 자신에게 엄격한 의원이었다.

하워드는 1963년 암으로 세상을 떠났는데 이때 유산으로 56만달러를 남겼다. 그는 재산의 대부분을 병원과 대학 등에 기부했다. 아들에게는 개인적인 소장품을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남기지 않았다.

지금 버핏의 재산 중 아버지가 물려준 유산은 한푼도 들어 있지 않다. 그야말로 '위대한 유산'이 아닐 수 없다.

버핏은 그의 자녀들에게도 큰 재산을 물려주지 않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버핏은 "자녀들에게 결코 많은 재산을 증여하거나 상속하지 않을 계획"이라고 거듭 말했다.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다.

'월가를 점령하라(Occupy Wall Street)'는 항의시위가 미국 월스트리트에서 시작해 전 세계로 번지고 있는 가운데 세계 최고의 자본가인 버핏이 여기에 동조하고 나섰다. 버핏은 최근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칼럼에서 "지난해 낸 세금 693만달러가 많아 보여도 사실은 전체 소득의 17%에 불과하다. 내 사무실 직원들의 41%보다 훨씬 낮다"고 꼬집었다.

그는 심지어 부자들에게 세금을 더 거두라고 오바마 행정부에 주문했다. 그의 거침없는 행보 역시 인상한 세비를 반납한 아버지를 닮았다.

버핏가(家)는 처음에는 볼품없고 한미한 이민자 가문이었다. 그의 선조인 존 버핏은 프랑스 모직물 직조공으로 종교개혁가 칼뱅의 로마 가톨릭교회에 맞서 만든 위그노 종파 신자였다. 위그노 신도 일부가 종교의 자유를 찾아 미국으로 건너왔는데 존 버핏도 그들 중 하나였다. 17세기에 롱아일랜드의 헌팅턴에 정착해 농부로 새로운 인생을 시작했다.

버핏의 증조부(시드니 버핏)에서 시작해 3대에 걸쳐 오마하에서 식료품상을 했다. "신용을 잃지 마라.신용은 돈보다 더 소중하다. 사업을 할 때는 적당하게 이익을 얻는 데 만족하라.부자가 되겠다고 너무 급하게 서두르지 마라."

버핏가의 사람들은 이러한 선조의 가르침을 되뇌며 누구나 번 것을 다 써버리지 않고 저축했다. 하워드 버핏이 주식중개업자를 거쳐 하원 의원이 됐고,그 아들 워런 버핏에 이르러 마침내 세계 최고의 부자가 된 것이다.

직조공에서 농부,식료품상,하원 의원,세계 최고의 부자에 이르는 400년 동안의 과정이야말로 가장 극적으로 진화한 가문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버핏의 애독서 가운데 미국의 사상가이자 시인인 랄프 왈도 에머슨이 쓴 '대표적 위인'(Representative Men,1850)이 있다.

버핏은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에게서 에머슨의 "위인은 군중 속에서도 즐거운 마음으로 고독의 자주성을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이다"라는 금언을 반복해서 들으며 자랐다.

에머슨의 글들은 매 순간 새롭고 낯선 삶에서 자신을 믿고 자신만의 성찰과 행동을 통해 앞으로 향해 갈 수 있는 지혜를 전한다. "모든 해답은 내 안에 있다"고 말하는 에머슨은 "참된 나로 존재하기 위해 내 안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자신을 믿고 자신만의 일을 하라"는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부자 증세를 외치는 버핏의 목소리는 바로 에머슨의 금언과 닿아 있다.

최효찬 < 연세대 연구원 · 자녀경영연구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