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새벽(한국시간)에는 메르켈 독일 총리와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의 유로존 관련 합의가 발표돼 세계 증시에서 큰 환영을 받았다. 그리스가 유로존에서 탈퇴하지는 않을 것이란 희망 섞인 전망은 당분간 그리스를 부도처리하지 않겠다는 양국의 합의로도 읽혔다. 한국 증시 역시 이날 발표 덕분에 전날의 폭락세에서 의미있는 반등세를 만들어 냈다.

그리스 재정위기와 관련해서는 흥미있는 음모론도 일각에서 나돈다. 이 음모론에 따르면 유럽 주요국들은 그리스를 당장 부도내지는 않는다는 게 골자다. 소시에테제네랄 아그리콜 등 그리스 국채에 대거 물려 있는 금융회사들이 빠져나올 시간을 2년 정도 확보한 다음 적당한 시기를 봐가면 디폴트를 낸다는 것이다. 이 기간 동안 몇단계에 걸쳐 소규모 채무조정을 실시하면서 시간을 번다는 것이 그리스 해법 1단계다. 유럽은 이 2년여의 시간 동안 미국을 방불하는 유럽판 양적완화정책을 펴면서 자국 금융사들이 빠져나올 시간을 확보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대거 풀려나온 자금이 아시아 증시로 유입되면서 실물경제와 관계없이 거품을 만들어 내는 것은 그 다음 단계다. 아시아 증시는 실물경제와 괴리되면서 거품을 형성하고 어느 단계에 가면 결국 터진다는 게 음모론이 가정하는 마지막 국면이다. 이렇게 되면 그동안 원기를 회복한 유럽 금융사들이 초토화된 아시아 시장에 진출해 지금 유럽에서 본 손실을 일거에 만회한다는 것이 소위 음모론의 줄거리다.

우스꽝스럽기는 하지만 1997년 외환위기의 쓰라린 경험이 있는 한국으로서는 관심있게 들어두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오죽하면 이런 음모론이 나올까 하는 생각을 해볼 수도 있다. 실제로 그리스는 국가부채가 GDP의 200%에 육박하는 상황이어서 국가부도를 피할 방법이 없다. 문제는 음모론이 때로는 일말의 진실을 말해주기도 한다는 점이다. 음모론은 치명적 약점에 관해 약간의 힌트를 준다. 국제회의장 복도에서 은밀히 확산되고 있는 음모론을 굳이 소개하는 것은 이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냄비주가, 군집행동(herding behavior), 과도한 외국인 비중 등에서 우리 시장은 너무나 허약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