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건호 금융투자협회장은 강원도 '촌놈'이다. 2018년 동계올림픽을 개최하는 강원도 평창이 그의 고향이다. 스스로도 '촌놈'임을 숨기지 않는다. 지난 5월 한국인 최초로 국제증권업협회협의회(ICSA) 회장에 선출됐을 때도 그랬다. "강원도 촌놈이…"라며 감격스러워했다. 그가 맛집으로 추천한 곳도 강원도 음식 전문점인 '나무가 있는 집'이었다.

초가을 바람이 시원했던 지난 8일 저녁 서울 신문로에 있는 '나무가 있는 집'을 찾았다. 4층으로 올라가니 한쪽이 탁 트여 바깥 바람이 들어오는 공간이 있었다. 자리에 앉자 감자옹심이가 나왔다. "식기 전에 드세요"라는 말과 함께였다. 감자옹심이는 감자를 으깨 수제비처럼 만든 강원도 토속음식.담백하니 별미였다.

"이 집에 자주 오십니까"라고 물으니 "2주에 한 번 정도"라는 답이 돌아온다. 주된 동반자는 대학 1학년 때 만나 결혼 36주년을 맞은 아내다. 이 집의 자랑인 곤드레돌솥밥을 먹은 뒤 정동길과 덕수궁 교보문고 경복궁으로 이어지는 길을 아내와 함께 걷는 즐거움은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한다.

언제부터 단골집이 됐는지 궁금했다. 황 회장은 "촌놈이다 보니 한번 드나들기 시작하면 잘 바꾸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가 자주 찾는 설렁탕집이나 칼국수집 등은 모두 30년이 넘었다. 그러다 보니 "남들은 가족들과 함께 이탈리아 식당이다 뭐다 잘도 다니는데,당신은 노후자금을 걱정할 필요가 없겠네요"라는 아내의 핀잔을 듣기도 한다.

맛으로 치면 묵은 장맛이다. 그의 인생이 그랬다. 1976년 대우증권에 입사한 뒤 36년을 줄곧 증권맨으로 살았다. 감자옹심이에 이어 강원도를 대표하는 음식들이 하나둘씩 식탁에 올라왔다. 감자전,메밀전병,각종 산나물이 입안에 군침을 만들어 낸다. 찰진 감자전과 쫀득쫀득한 옹심이 한 알이 간간이 인터뷰를 방해했다.

그가 서울대 상대를 졸업하고 처음 사회생활을 시작한 것은 종합상사다. '007 가방'을 들고 수출전선을 누비다가 어느날 문득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아직 초창기인 증권사에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기 때문이다. 당시는 그룹에 입사한 뒤 계열사로 배치받던 시절이었다. 그는 대우증권을 목표로 대우그룹에 들어갔다. 그의 장인은 "서울대 상대 나와서 무슨 증권사냐?"며 말렸지만 그는 '증권업은 내 운명'이란 생각을 했다.

"저는 남이 가는 데 따라가고 몰려 다니는 걸 싫어합니다. 반대로 살거나 먼저 살든가 하죠." 새로운 분야인 증권업의 무한한 발전 가능성을 예감한 셈이다.

대우증권에 입사해선 승승장구했다. 증권사들이 기업금융이라는 새로운 영역에 진출할 시점에 기업금융과 국제금융 쪽에서 일했다. 신입 직원으로 시작해 대리 과장 차장 부장 이사 상무 전무 등 전 직급을 2년에 한 번꼴로 승진했다. 입사 23년 만에 부사장에 올랐다.

대우증권에서 일하던 시절을 얘기할 때는 말이 빨라졌다. 증권업계 1세대 국제통인 그는 일찌감치 선진 금융을 접하고 이를 국내에 도입했다. 입사 3년여 만인 1979년 첫 해외 연수 대상자로 뽑혀 독일의 금융회사를 다녀왔다. 국제금융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국제부 설치를 건의했다. 증권사관학교로 불리는 대우증권 국제부는 그의 아이디어에서 만들어졌다. 대우그룹의 싱크탱크였던 대우경제연구소도 그의 제안에서 출범했다. 외국인 투자자금을 모아 1984년 '코리아펀드'도 설립했다. 황 회장은 그후 대우증권 뉴욕사무소장이자 '코리아펀드' 부사장으로 5년간 월스트리트에서 일했다.

감자전이 바닥을 드러내고 강원도 영월 출신 음식점 사장이 특별히 만들었다는 곤드레전이 나올 때였다. 황 회장이 문득 물었다. "한국 제조업은 왜 강하다고 생각합니까?"라고.머뭇거리자 질문이 뒤따른다. "제조업은 세계 최고인데 금융은 왜 안되는 거죠?"

그의 결론은 '사람'이었다. "1980년대 코리아펀드를 운용할 때였죠.외국인 투자자를 데리고 조선소를 가면 정말 창피할 정도였습니다. 조그만 공장에서 조립공들이 간신히 배를 만들어 냈습니다. 그때는 어려운 시기여서 기업들도 돈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들의 기술력 하나로 세계 최고의 조선사를 만들어낸 거죠."

"금융도 마찬가지"라는 게 그의 지론이다. "금융의 핵심은 꿈을 가진 사람과 아이디어에서 나온다"던 호주 최대 투자은행 맥쿼리그룹 회장의 말도 전했다. 금융지도자들의 각성도 촉구했다. "우리는 수학이든 과학이든 뛰어난 민족입니다. 교육 수준도 낮지 않죠.이렇게 훌륭한 인재를 갖고 왜 금융업에서는 부가가치를 창출하지 못하는지 금융인들은 스스로 반성해야 합니다. "

목소리 톤이 올라갔다. 아니나 다를까. 지나친 규제도 지적했다. "무엇이든 완전한 것은 없습니다. 선택의 문제입니다. 제조업이 잘되는 이유와 금융이 뒤처진 이유를 보면 답이 나올 겁니다. 금융 규제 완화가 왜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지 의문입니다. " 사람을 키워야 금융업이 발전하고,그러자면 창의로운 아이디어를 실행에 옮길 수 있는 규제완화가 필요하다는 얘기로 들렸다.

쉬어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동주를 권했다. "우리 금융업도 많이 크지 않았습니까"라며 은근히 반론을 펴보았다. 황 회장은 들었던 술잔을 도로 내려 놓았다. "국제금융에 관한 한 외환위기 이전보다 오히려 못합니다"는 답이 돌아왔다. 의외였다.

"외국기업이 해외에서 주식이나 채권을 발행할 때 국내 금융회사들이 주관사를 맡았다는 얘기를 들어봤습니까. 전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 1985년 대기업들의 해외 진출을 계기로 이들 기업의 대규모 해외 증권 발행이 있었다. 당시엔 대우증권이 대부분 딜의 주관사를 맡았다. 1990년대 초에는 중국 인도 기업의 해외 증권 발행 주관사 업무도 따냈다. "지금 증권사들은 규모나 형태는 그때보다 나아졌을지 몰라도 질은 그때만 못한 것 같습니다. 외환위기 때 국제업무 능력이 뛰어난 인재들이 상당히 쓸려 나간 영향이 큽니다. "

빈 동동주통 몇 개가 나가고 새 통이 들어왔다. 건물 밖 조명도 한층 밝아졌다. 국제금융이 처진 이유를 묻자 리더의 역할을 강조했다. 새로운 분야에서는 최고경영자(CEO)나 리더들이 견인차 역할을 해야 한다는 얘기였다. "CEO는 관리자가 아닙니다. 이노베이터(innovator · 혁신가)이자 이니시에이터(initiator · 개척자)입니다. 위에서 끌어주는 사람이 없으면 밑에 있는 사람이 빨리 자라도록 해 줘야 하는데 이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금융 리더는 현장,상품을 잘 알아야 합니다. 관리자로만 만족하면 결코 발전할 수 없는 것 아닙니까. "

마침 음식점에서 직접 만들었다는 두부가 들어왔다. 맷돌에 갈아 만들어서 그런지 맛이 달랐다. "웰빙음식"이라며 권하는 황 회장에게 증권맨 36년 노하우의 재테크 방법에 대해 물었다. 그는 증권저축과 국내 및 해외펀드를 다양하게 보유하고 있다. 역시 '장기분산투자'의 전도사란 별칭에 딱 맞는 답이 나왔다. "투자는 바이앤드홀딩(사서 보유하기)이 원칙입니다. 30년 넘게 증권업에 종사했지만 단타매매 같은 건 한번도 해본 적이 없습니다. 마이너스 수익률을 낸 적은 당연히 없고요. "


◆ "금융의 힘은 사람…장 담드긋 시간 갖고 인재 키워야"

코리아펀드 얘기를 꺼냈다. 코리아펀드 설립 당시 수탁액은 6000만달러에 불과했다. 그 자금은 그해 말 삼성전자 현대차 등 우량주에 투자됐다. 액면가 1000원짜리 삼성전자 주식은 1640원,현대차는 630원(액면가 500원) 정도에 사 모았다. 수탁액 6000만달러는 20여년 만에 12억달러로 불어났다.

"어떻게 보면 무식해 보일 수도 있죠.하지만 이미 선진국에서는 장기투자 문화가 정착해 있었습니다. 제가 틈만 나면 주장하는 '주식으로 저축하자'는 취지도 이런 겁니다. 같은 금액을 나눠 꾸준히 사 오래 투자하는 것이 성과를 높이는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

이 집에서 가장 좋아한다는 곤드레돌솥밥과 얼큰 두부찌개가 나오고 나선 황 회장의 말이 중간중간 끊겼다. 그동안 다소 아끼는 듯하던 수저가 밥그릇과 입을 부지런히 오간 때문이다.

황 회장은 2004년 초 협회 설립 이래 처음으로 실시된 경선에서 3년 임기의 증권업협회장에 올랐다. 중소형사인 메리츠증권(현 메리츠종금증권) CEO를 지낸 데다 당시만 해도 협회장은 원로들의 자리였던 터라 53세란 젊은 나이의 황 회장에게 우려의 시선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법조항 하나 바꾸는 데도 몇 년씩 걸리던 시절에 기금관리기본법을 개정해달라고 건의해 연기금의 주식투자를 이끌어냈다. 2005년에는 퇴직연금을 도입하고 '주식으로 저축하세요' 캠페인으로 펀드 대중화 시대를 열었다. "협회장에 당선될 때 회원사들이 100% 지원을 안 했죠.하지만 나중에는 다 지지를 보냈습니다. 투자문화 선진화를 위해 제도와 규제를 많이 바꿨습니다. 협회장으로서 최선을 다했죠."

황 회장은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라는 좌우명을 갖고 있다. 주어진 상황에 최선을 다하고 준비를 철저히 하자는 것이다. 그러면 결과가 좋지 않아도 승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유감없이 사랑하면 인연이 안 되더라도 후회를 하지 않는 것과 비슷한 겁니다. 뭐든 어설프게 해서는 안 됩니다. "

만난 지 3시간을 넘어 시침이 저녁 9시를 넘어간 시점이었다. 식사도 다 끝나고 인터뷰도 어느 정도 마무리될 때쯤 주머니에서 손바닥만한 크기에 꼼꼼히 적힌 메모지를 꺼냈다. 혹시나 빠뜨린 얘기는 없는지 한 장 두 장 넘긴 종이가 10여장은 넘어 보였다.

"아,이 얘기는 꼭 하고 싶습니다. " 금융투자업계가 단기 업적주의 중심으로 변해가는 데 대한 문제점이었다. "금융은 시스템적인 게 많습니다. 그래서 중장기적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금융인을 키우는 데도 시간이 걸리고요. CEO나 펀드매니저들이 수시로 바뀌는데 어떻게 소신을 갖고 일할 수 있겠습니까. 어떤 조직이나 지속가능성을 염두에 둬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후퇴하는 법이죠." 후식으로 달지 않은 식혜와 과일이 나왔다.

농반진반으로 "협회장이 너무 센 것 아닙니까"라고 물어봤다. 그러자 "개척자는 외로운 법"이라는 말로 되받았다.

황 회장이 악수를 나누고 떠나자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The Road Not Taken)'이란 시가 떠올랐다. 그의 삶은 '나무가 있는 집' 음식 만큼이나 묵은 장맛이자 새로운 맛으로 느껴졌다.


◆ 황건호 회장의 단골집 '나무가 있는 집'
집에서 만든 손두부, 담백한 곤드레밥, 강원도 토속 상차림

서울 신문로 서울역사박물관 옆 골목에 있는 '나무가 있는 집'은 집에서 만든 손두부와 강원도 명물 곤드레밥을 맛볼 수 있는 한정식 집이다. '건강한 음식 · 자연을 담은 음식'을 모토로 1996년 문을 열었다. 강원도 무공해 식재료로 만든 전통 토속음식을 판다. 두부는 강원도 영월에서 기른 콩과 강화 염전에서 올라오는 천연 간수를 이용해 옛날 방식 그대로 매일 가마솥에서 삶아 만든다. 곤드레나물을 비롯한 각종 나물도 정선 등 산지에서 직접 공수해 온다. 들기름과 된장 등 조미료를 직접 만들어 사용해 음식 맛이 간결하고 담백하다.

주메뉴인 '나무한상차림'은 손두부와 메밀전병 메밀묵사발 간장게장 곤드레나물밥이 기본으로 나온다. A세트(3만5000원)의 경우 두부보쌈과 불고기가 더 나온다. B세트(5만5000원)를 시키면 전복요리와 해물코다리찜 등을 추가로 즐길 수 있다. 곤드레밥을 제외한 토속상차림(2만5000원)도 있다. 점심에는 미리 예약하면 해물전복솥밥(1만5000원)등을 제공한다. 감자를 갈아 수제비처럼 끓인 감자옹심이도 별미 중 하나다. (02)737-3888

황건호 회장 프로필

▼1951년 강원도 평창

▼용산고 서울대 경영학과 졸업

▼미국 럿거스대 대학원 경제학 석사

▼대우증권 뉴욕사무소장 겸 코리아펀드 부사장

▼대우증권 부사장

▼메리츠증권 사장

▼이화여대 경영학부 겸임교수

▼한국증권업협회 회장

▼전국투자자교육협의회 의장

▼한국금융투자협회 초대 회장

▼아시아투자자교육연맹(AFIE) 초대 회장

▼국제투자자교육연맹(IFIE) 회장

▼국제증권업협회 협의회(ICSA) 회장


서정환/강지연 기자 ceose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