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십은 지구상에서 가장 많이 관찰되면서도 가장 이해되지 않는 현상 가운데 하나다. " 미국의 리더십 학자인 제임스 맥그리거 번스가 한 말이다. 리더십에 대해서는 그동안 수많은 이론과 논의가 있어왔다. 서점에는 리더십에 관한 책이 쏟아진다. 리더십이 그만큼 중요하지만 하나의 연결 고리로 꿰어내기 쉽지 않다는 방증인 것 같다.

《빅맨(selected)》도 차고 넘치는 리더십 관련 책의 하나다. 하지만 이 책의 리더십 접근법은 독특하고 신선하다. 리더십이 진화해온 발자취를 추적해 리더십에 대한 의문점을 파헤친다.

책은 리더십을 진화론적 관점에서 살핀다. 바로 '진화 리더십 이론'이다. 자연선택과 적자생존으로 요약되는 찰스 다윈의 진화론은 '리더와 팔로어'라는 한쌍의 행동방식을 이해하는 데도 적합한 통찰을 제공한다는 설명이다. 조직심리학에서 진화생물학까지,동물의 왕국에서 현대 정치와 기업문화까지 다양한 영역을 넘나든다. 이를 통해 인간의 본능적 행동 프레임인 리더십과 팔로어십을 발견한다.

이 책이 제안하는 '진화 리더십 이론'의 요체는 이렇다. 인간의 리더십과 팔로어십은 집단 생존에 유리해 진화적으로 '선택'됐고,그 토대는 인간이 진화하기 훨씬 전부터 갖춰진 것이라는 것.수백만년의 역사를 통해 인간은 누군가를 따르도록,그리고 환경이 갖춰지면 리더의 역할을 수행하도록 프로그래밍됐다는 것이다.

사람들을 모아 과제를 던져주면 리더를 정하라는 지시가 없어도 자발적으로 팀을 이끌 리더를 고르고,각각의 포지션을 정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아기는 태어난 직후 엄마의 얼굴 표정을 모방하기 시작한다. 팔로어십에 대한 열망은 기저귀를 차고 있을 때 이미 나타난다.

그렇다면 왜 누군가는 리더가 되고 대다수는 팔로어가 되는 걸까. 《빅맨》은 세계 각지의 문화권에서 바람직하다고 여기는 리더의 자질에 공통점이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넬슨 만델라나 달라이 라마 등을 떠올리게 하는 관대함,공정함,능력 등이 그것이다.

또 인간이 본능적으로 원하는 리더의 아이콘으로 '빅맨(big man)'을 제시한다. 인류학에서 주로 사용돼온 빅맨은 원시시대 소규모 부족의 우두머리를 일컫는 말이다. 그 의미가 확장돼 이제 큰 키와 다부진 턱,관대하고 용맹한 성격,카리스마와 언변을 갖춘 이상적인 리더를 상징하는 용어로 쓰이기도 한다.

물론 빅맨의 개념이 지금도 통용되는 것은 아니다. 사바나의 리더 빅맨은 150명 규모의 부족을 이끌었다. 민주적이고 자비로운 성향을 가지고 한정된 영향력만 행사했다.

하지만 빅맨의 시대는 약 1만3000년 전인 농업혁명기까지만 지속됐다. 부와 지위의 차이가 생겼고,무리사회는 군장사회로,왕국과 근대국가로 진화했다. 특히 인간은 돈(salary)과 지위(status),섹스(sex) 등 3S의 혜택 때문에 지배자의 위치에 오르기를 열망하게 됐다고 책은 설명한다.

21세기에 빅맨의 외형만 보고 리더를 선택하다간 '리더 실패'를 부르기 십상이다. 그러나 우리 몸 속에는 오랜 진화가 남겨둔 '원시의 뇌'가 숨겨져 있다고 저자들은 지적한다. 맹수와 약탈자로부터 보호해줄 빅맨을 선택할 때와 유사한 기준으로 리더를 고른다는 것.키가 큰 대선 후보가 당선 가능성이 높고,젊은 리더보다는 성숙한 리더를 선호하는 등 '부조화'가 나타난다는 설명이다.

훌륭한 운동선수가 감독으로 성공할 확률이 높지 않고,지연과 학연에 따라 선택한 리더가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도 원시적 편견을 바탕으로 한 비이성적 리더 선택의 사례로 꼽았다. 대부분의 조직 상부에 여성의 수가 많지 않은 것도 원시적 편견 때문이라고 봤다.

책은 '21세기 리더십을 위한 10가지 조언'도 담고 있다. 우선 영웅적 리더십에 대한 환상을 버리고,팔로어의 이익을 생각하라고 주문한다. 빅맨시대의 자질과 환경을 만들라는 조언도 눈길을 끈다. 우리의 뇌는 150명 규모의 조직에 적응돼 있는 만큼 조직을 잘게 나누고,질서와 규칙으로 적절히 통제하는 능력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또 나쁜 리더를 일컫는 '3대 악'을 피하라고 조언한다. 3대 악은 지나친 자기애,마키아벨리즘(권모술수형 권력추구),사이코패시(반사회적 이상심리) 등이다. 저자들은 "겉보기에 매력적인 빅맨으로 보이던 이들이 리더가 돼 힘을 가지게 되면 본색을 드러낸다"며 "영리한 팔로어라면 이러한 성향을 갖고 있는 이들을 선택에서 배제하는 혜안을 가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한다.

양준영 기자 tetriu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