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품에는 그것에 내재한 불변의 고정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시세에 따라 들쭉날쭉하는 시장 가격이 이해 불가능이다. 이명박 정부가 물가를 잡겠다고 정부 부처들을 총동원하고 있는 것은 아파트 원가를 공개하라고 압박하던 노무현 정부의 좌파 원리주의와 다를 것이 없다. 이명박 정부는 이렇게 갈수록 노무현 정부를 닮아간다. 인간의 인식은 때로 매우 협소한 것이어서 가격은 원가에 적정이윤을 더한 것이라는 자연주의적 착시에 종종 빠지게 된다. 이런 오류를 특히 구성의 오류라고 부르지만 이는 대체로 현상을 눈에 보이는 형태로만 인식하는 원초적 자연주의에 그 기반을 두고 있다.

소위 공정가격이나 공정무역 같은 허망한 노력들도 이런 오류에 기초한 것이다. 브라질의 소위 커피 공정무역 등이 오늘날 한심한 실패작으로 귀결되고 있는 것은 새삼 긴 설명이 필요 없다. 그러나 착한 상인, 착한 가격, 공정한 거래의 객관적 잣대를 세울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꽤 오래된 환상의 하나다. 자연을 보이는 대로만 인식하는 1차원적 인간들에게 보이지 않는 시장규칙을 설명하는 것은 천동설이 지배하던 시대에 지동설을 설명하는 것만큼이나 어렵다. 사람들은 지금도 지평선 위로 태양이 올라온다고 말하고 있지 않나! 유통 혁신의 산물인 기업형슈퍼마켓(SSM)을 규제하고 파격 할인가였던 통큰치킨을 패배시킨 이명박 정부다. 그랬던 정부가 물가를 잡겠다고 장사치의 장부를 뒤지고 다니는 것은 앞뒤가 뒤바뀐 소극이다.

요즘은 아무도 거론조차 않는 소위 사회주의 계산 논쟁은 20세기를 풍미했던 경제학계의 큰 쟁점 중 하나였다. 사회주의 계획 경제가 장기적으로 존립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진지하게 지적한 사람은 하이에크의 스승이었던 미제스다. 합리적 계획경제가 가능하려면 합리적 계산이 수반되어야 하는데 이는 불가능하다는 것이 그의 요점이었다. 수많은 경제학자들이 좋은 '중개자(정부)'를 제대로 세우기만 하면 계산이 가능하다며 미제스에 반기를 들고 나온 것이 바로 자연주의적 오류다. 이 논쟁은 구소련의 상점 진열대가 완전히 텅텅 비어버린 현실을 목격하고서야 꼬리를 내렸다.

지금 이명박 정부가 공정위를 내세워 시도하는 것도 바로 이 시장 중개자에 대한 미련이며 소위 선량한 관리자에 대한 집착이다. 더구나 이명박 대통령은 기업인 출신이기 때문에 아마 정부가 시장의 중개자 혹은 최고경영자(CEO)처럼 종합조정기구의 역할을 잘 해내기만 하면 시장 가격체제는 잘 돌아가지 않겠느냐고 생각하는 것 같다. 순진한 생각이며 구성의 오류다. ('순진한'이라는 단어에 주목해 달라.이 말은 때로 '바보같은'이라는 단어의 동의어다) 정부는 정치적으로 통제받는 조직이기 때문에, 그리고 무엇보다 지식의 한계 때문에 가격결정에 필요한 복합적 지식을 갖는 것은 불가능하다. 정부가 개별 기업의 원가를 모두 계산할 수 있고 여기에 적정 이윤을 더하면 시장은 잘 돌아갈 것이라는 대통령의 생각은 수많은 개별 기업가들의 현장지식과 자기계산을 능멸하는 치명적인 자만에 불과하다. 상품의 생산과 공급은 본질적으로 가격변동의 위험을 감수하고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려는 기업가 정신의 산물일 뿐 원가계산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적정 가격을 설정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만일 그것이 가능하다면 이번에는 적정이윤도 보장해야 하는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결국 기업의 이윤구조를 공익적 기준에 따라 결정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숨은 보조금을 암묵적으로 전제하는 이 얼빠진 물가 통제에는 절대 찬성할 수 없다. 지금 MB정부가 시도하는 것은 지폐에 0을 하나 더 그려넣으면 10배 더 부자가 될 것이라는 초등생들의 논리와 다를 것이 없다. 딱한 일이다.

정규재 논설위원 겸 경제교육硏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