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성순 대우인터내셔널 러시아사무소장은 몇 달 전 황당한 일을 겪었다. 연간 1조원대 매출을 올리며 러시아에 안착한 이 회사의 현지은행 계좌가 갑작스레 폐쇄된 것이다. 수소문해 보니 세무당국의 착오에서 빚어진 일이었다. 다행히 계좌는 이틀 만에 풀렸다.

미국 홍콩 등지의 주재원으로 십수년을 지낸 베테랑인 강 소장은 "투자시장으로 미국 못지않다"고 말할 만큼 러시아를 좋아하고 높이 평가하는데도 그 일을 떠올리면 지금도 아찔하다고 전했다.

러시아는 불투명하고 사회 전반의 부패가 여전한 게 단점으로 지적된다. 사회주의적 전통과 결합해 더 심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열악한 금융인프라,과도한 관료주의,허술한 치안도 발목을 잡는다. 하지만 이런 위험에도 러시아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은 두드러진 성과를 내고 있다. 한국야쿠르트의 라면 브랜드 '도시락'은 주말 별장 '다차'로 향하는 러시아인들이 여행가방에 담는 필수품이 됐다.

주력 수출 품목인 정보기술(IT) 제품과 자동차도 선전하고 있다. 유리 푸트조프 삼성전자 모스크바 판매법인 이사는 "지난해 LCD TV,PDP TV,LCD 모니터,냉장고,청소기,오디오,복사기 등 7개 품목에서 점유율 1위에 올랐다"고 말했다. 2009년 수입차 판매순위 10위에 머물렀던 기아자동차는 지난해 저가 시장에서의 돌풍을 바탕으로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한국 기업의 영토는 더 확대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노인호 KOTRA 러시아 · CIS총괄본부장은 러시아의 매력을 "한국을 위해 남겨놓은 마지막 나라"라고 설명했다.

△한국에 위협을 느끼지 않는 데다 △가장 최근의 발전 경험을 전해줄 수 있고 기술에서 선진국과 별 차이가 없어 좋은 협력 파트너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특유의 위험 요인은 경계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현지인들과 친분을 쌓는 일이 특히 중요하다. 김진호 모스크바 롯데백화점 팀장은 "러시아의 서울올림픽 참가를 도와준 게 진출의 계기가 됐다"며 "한번 맺은 인연을 지켜가는 의리가 남달라 동질감을 느낄 때가 많다"고 말했다.

예브게니 포포프 경제개발부 아시아 · 아프리카 부국장은 "한국 기업에 대한 불평을 한번도 들어 본 적이 없다"며 러시아 투자 확대를 주문했다. 그는 △에너지 효율 제고 · 보전 △핵에너지 △우주기술 △의학기술 △전략정보기술 분야의 협력이 유망하다고 조언했다.

모스크바=백광엽 기자 kecor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