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이 기부는 개인 차원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말한 것은 옳다. 동정 공감하는 도덕심의 본질은 오로지 자연인에게서 비롯되는 것이라는 점을 지적한 언급일 것이다. 기업이나 단체 혹은 국가는 다만 개인들의 집합이며 물적 조직일 뿐이라는 점에서 양심이라는 내심의 동기에 의존하고 있는 자비심의 주체가 될 수 없다. 국가 혹은 정부가 자연인 각자의 내밀한 가슴 속에서 작동하는 자비심을 국유화할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된다는 주장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자유주의 철학이 큰 국가를 거부하고 종종 국가의 개입을 줄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세상에 자비와 복지가 필요 없기 때문이 아니라 자비나 도덕심 같은 가치들은 온전히 개인의 몫이라는 생각에서다. 굳이 대통령의 지적이 아니더라도 한국에서의 기부가 대부분 기업 단위에서 이뤄진다는 점은 이런 면에서도 비정상적이다. 기업에 따라 매년 수백억원씩 기부를 하는데도 정작 이에 대한 평가가 인색한 것은 그것이 개인 아닌 조직 차원에서 이뤄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은 동시에 전선전미한 천사가 아니다. 자신이 쌓아올린 것을 타인에게 완전히 무상으로 쾌척하기를 기대하거나 강요할 수는 없다. 자비심이 인간의 본능에서 비롯된 만큼이나 이기심도 자연스런 감정이다. 자비심에 입각한 기부 행위에도 일정한 동기가 부여돼야 하는 것은 인간 본성에 내재한 이 같은 이중성 때문이다. 종교에서조차 내세의 복락이라는 기대를 사랑과 자비의 등가물로 설정하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한국에는 왜 워런 버핏 같은 자선 기업가가 없냐고 말하지만 버핏의 전 재산 기부야말로 자비와 이기심을 적절하게 등가 교환하는 과정이라는 점을 기억해야 마땅하다. 실제로 버핏은 자신의 전 재산을 세금 없이 상속하는 하나의 방법으로 기부를 택한 것이고 기부재산에서 나오는 과실의 일부로 자선사업을 벌이는 것이다. 버핏의 기부 약정서는 이 기부금이 증여세나 상속세 등 어떤 세금의 대상이 돼서도 안된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고 그의 상속자인 하워드 버핏에 대한 상속절차와 결합돼 이뤄지고 있다는 점도 지적돼야 한다. 만일 전 재산 기부라는 것이 벅셔해서웨이에 대한 지배권의 소멸 혹은 잠식을 의미한다면 버핏의 기부는 결코 이뤄질 수 없었을 것이다.

더구나 버핏은 의결권이 200개나 주어지는 차등의결권 주식을 보유하고 있어 재산기부와 관계없이 경영권에 대한 불안이 전혀 없다. 기업가가 기업 활동을 포기하지 않는 이상 원본의 잠식을 초래하는 기부를 선택할 수는 없고 경우에 따라 이는 오히려 무책임한 행위로 귀결될 수도 있다. 재산기부가 온전히 자비심의 발로로 되기 위해서라도,그리고 지속가능한 기부가 되기 위해서도 기업의 동일성은 유지돼야 한다. 재산적 가치도 원본이 훼손될 수는 없다. 이 점을 기억한다면 자선 재단 등에 대한 각종 족쇄는 풀어야 마땅하다. 기부 관련 세제에서도 그에 합당한 혜택을 주는 것이 옳다. 종교 재단이 면세인 것도 국가 의무에 선행하는 자비심의 전파에 주목하는 것이다. 자선재단 등이 보유하는 주식의 의결권을 제한하거나 기부행위에 높은 세금을 매기는 지금의 제도는 개인의 소유권을 부정하고 결과적으로 기부 자체를 불가능하게 만들고 있다.

록펠러 재단이 가능한 것도,빌&멜린다 게이츠 재단이 왕성하게 활동하는 것도 모두 기업의 원형을 유지하면서 이를 자비와 연결하는 적절한 유인제도가 뒷받침되고 있기 때문이다. 자선이라는 것이 재산의 쾌척으로만 이해되는 것은 위선적이며 지속가능하지 않다. 지금 우리나라의 관련 법제는 기업활동을 포기하지 않는 한 개인 기업가의 재산 기부는 불가능하다. 이런 비현실적 제도를 고치지 않는 한 한국에서는 버핏의 탄생을 기대하기 어렵다. 조건 없이 던지라는 것은 실로 또 하나의 폭력이며 비현실적이다.

정규재 논설위원 겸 경제교육硏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