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시에 상장될 때마다 무섭게 주가가 뛰던 스팩(SPAC · 기업인수목적회사)의 기세가 완전히 꺾였다. 한때 공모가의 2배 넘게 올랐던 스팩 주가는 대부분 공모가 수준으로 급락했고 거래량도 확 줄었다. 이상 급등했던 주가가 정상적으로 되돌아온 것이지만,그 이면에는 스팩의 상품성 자체가 크게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란 분석이다.

스팩은 다수의 개인투자자로부터 공개적으로 자금을 모아 3년 내 장외 우량업체를 인수 · 합병(M&A)하는 조건으로 특별 상장되는 페이퍼컴퍼니(서류회사)다. 지난 3월 첫선을 보일 당시 장외 우량업체를 합병할 것이란 기대가 높았지만 법인세법 시행령이 스팩의 M&A를 가로막는 방향으로 개정될 예정이어서 비상이 걸렸다.

◆우리스팩1호 상장 첫날 냉랭

우리스팩1호가 유가증권시장에 11일 상장됐지만 투자자들의 반응은 싸늘했다. 시초가가 공모가(1만원)보다 5% 높은 1만500원에 결정된 뒤 4.29% 급락한 1만50원에 거래를 마쳤다. 공모가보다 겨우 50원 높은 수준이다. 앞서 3월 상장했던 대우 · 미래에셋 · 동양 · 현대스팩과는 너무 비교되는 성적표다. 동양밸류스팩의 경우 상장 첫날(3월25일) 시초가가 공모가(1만원)보다 50% 높은 1만5000원으로 출발했었다.

상장된 스팩들의 주가는 전반적으로 힘을 못 쓰고 있다. 한때 3810원까지 치솟았던 미래에셋스팩1호는 반토막 났고 동양밸류스팩은 1만100원까지 떨어져 공모가를 위협받고 있다.

현대증권스팩1호와 대우증권스팩도 고점 대비 급락해 공모가 부근에서 간신히 버티고 있다. 우리스팩1호에 이어 신한제1호스팩,한국투자신성장1호스팩,히든챔피언1호스팩,교보KTB스팩 등 10개사가 이달과 내달 줄줄이 상장할 예정이지만 청약 시장에 대한 관심도 급격히 떨어지고 있다.

이날 청약을 마감한 신한제1호스팩의 최종 경쟁률은 8.48 대 1에 그쳤다. 자동차 부품회사 만도와 청약 일정이 겹쳤다는 점을 감안해도 실망스러운 수준이라는 지적이다. 지난달 말 청약을 받았던 우리스팩1호의 경쟁률이 193 대 1에 달했고 미래에셋스팩1호와 동양밸류오션도 100 대 1을 넘겼다. 단순히 스팩의 거품이 빠지면서 이상급등이 해소되는 과정으로 보기 어려운 대목이다.

◆법인세법 개정에 M&A 차질 우려

증권사들은 스팩이 갑작스럽게 침체된 원인을 이달 3일 정부가 발표한 법인세법 시행령 개정안에서 찾고 있다. 오는 7월 시행될 개정 시행령에서 합병 시 최대주주 지분 매각 제한 조항이 스팩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것.개정 시행령에는 피합병 법인의 최대주주가 합병 후 세제 혜택(과세 이연)을 받기 위해선 3년간 주식을 단 1주도 팔아선 안 된다는 조항이 신설됐다.

이는 우량 비상장사와의 합병을 목표로 설립된 스팩에는 치명적이다. 한 증권사 스팩담당 본부장은 "기업공개(IPO) 직상장의 경우에도 최대주주 보호예수기간이 1년인데 합병 후 3년간 못 팔게 하는 것은 지나친 규제"라며 "우량 기업 대주주라면 주식을 팔 생각이 없더라도 그런 제약 자체를 꺼려 스팩과의 합병을 거부할 것이 불 보듯 뻔하다"고 우려했다.

증권사들은 스팩에 대해 설립 후 1년 동안 사업을 영위하지 않더라도 합병 세금을 이연해 주는 규정이 법인세법 시행령에 담길 것을 기대해 왔다. 하지만 이런 기대가 받아들여지지 않은 데다 예상치 못한 대주주 지분 매각 제한까지 생겨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한국거래소 관계자는 "합병 세금 문제로 인해 우회상장 대체 통로로 도입된 스팩이 우량 장외기업과의 합병이 힘들어질 것이란 우려가 매우 높다"고 지적했다.

금융투자협회 한국거래소 등은 이날 대책회의를 갖고 스팩 제도를 도입한 금융위원회에 이 문제를 풀어줄 것을 요청했다. 금융위는 개정 시행령 입법예고 기간에 세제 주무 부처인 기획재정부에 스팩에 대한 과세특례 적용을 요청할 예정이다.

하지만 재정부가 이를 받아들일지 미지수여서 스팩 주가는 약세를 벗어나지 못할 것으로 예상된다. 재정부 법인세과 관계자는 "건의 내용이 타당하다면 과세특례를 적용할 수 있지만 형평성 차원에서 스팩만 우대해 달라는 것은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

조진형 기자 u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