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목조 건축 현장에서 빠질 수 없는 도구가 먹통이다. 목수는 먹통을 이용해 목재를 다듬고 집을 짓는다. 먹통에서 나오는 먹줄은 질서와 조화를 추구하는 역할을 한다.

붓 대신 먹통의 먹줄을 활용해 회화 작업을 하는 원로작가 이서지 화백(76)의 개인전이 서울 경운동 다보성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다.

2004년 서울 과천 선바위미술관을 설립한 이 화백은 40여년간 전통 민화를 유화,테라코타 타일 형태로 표현한 '십장생''화조도' 등을 그려왔다. 지난해부터는 기존 화풍에서 벗어나 추상화에 가까운 작업을 시작해 크게 달라진 면모를 보여준다.

다음 달 3일까지 이어지는 이번 전시회의 주제는 '덩어리'.캔버스 위에 검은색 아크릴 물감을 적신 먹줄을 튕겨 불규칙하고 깊이감이 느껴지는 추상화 근작 '괴(塊 · 사진)' 시리즈 40여점을 내걸었다. 이번 출품작들은 이전보다 훨씬 부드러워진 먹줄로 해와 달,꽃과 나무,새와 별,땅과 하늘을 추상적으로 형상화했다. 먹줄로 그려낸 추상화이지만 그의 작품들은 전통 수묵화의 맛과 아취를 뿜어낸다.

그는 "직선의 먹줄을 중첩시키지만 결과적으로 드러난 형태는 곡선"이라며 "덩어리 같은 모형은 위압감을 걷어내고 나름대로의 운율과 질서,조화를 내포한다"고 설명했다. 단순한 곡선 형태에 무수한 직선들이 질감과 농담,질서의 운율을 연출해낸다는 얘기다. (02)730-7566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