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뉴타운 사업을 계속 할 수는 있는 겁니까. 사업 재개만 기다리고 있는데 고등법원에서도 패소하면 어떻게 하죠?"

1일 지하철 2호선 상왕십리역 인근에 자리한 서울의 왕십리뉴타운 1구역 조합 사무실은 재개발 사업 자체를 걱정하는 조합원들로 하루종일 시끄러웠다. 조합의 한 간부는 "지난달 22일 서울행정법원에서 정족수를 채우지 못한 조합 설립이 무효라고 판결한 뒤로 평일 낮에도 찾아와 한참이나 내용을 물어보고 돌아가는 조합원들이 많다"고 말했다.

최근 법원이 재개발 사업에 잇따라 제동을 걸면서 재개발 현장이 큰 혼란에 빠졌다. 동의서를 걷고 재개발 사업비를 산정하는 과정을 불투명하게 진행한 조합을 성토하는 목소리가 높은 가운데 법원에 대해서도 "재개발의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판결"이라는 불만이 나온다. 어쨌든 사업 지연과 분담금 증가에 따른 피해는 고스란히 조합원들의 몫이다.


◆이미 철거한 집,어찌하오리까

현재 왕십리1구역은 학교 등 일부 대형 건물만 남긴 채 95% 철거가 완료된 상태다. 주민들은 조합(조합원 769명)이 준 '이주비'를 받고 인근 지역으로 집을 얻어 나갔다. 문제는 이 이주비도 금융권 대출을 통해 조달한 것이다보니 사업이 지연될수록 금융비용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것.조합 설립 이후 관리처분인가,사업시행인가 등의 과정까지 무효화될 경우 사업은 최대 2년 가까이 공전하게 될 것으로 보이며 이에 따른 금융비용은 매달 10억여원(조합 추산)에 달할 전망이다. 다음 달로 예정됐던 분양이 연기되는 만큼 조합원의 추가 분담금과 일반분양가가 올라가게 된다.

이번 왕십리1구역 조합 설립 무효의 근거가 된 동의서 부실 수집은 재개발 현장에서는 비일비재한 일이다. 조합이 사업 속도 단축에 급급하다보니 지방까지 홍보요원을 파견해 위임장을 받아 오고,사업 내용을 제대로 설명하지 않고 조합원에게 동의서를 걷기도 했다. 성동구 금호13구역 등지에서는 동의한 적이 없는 조합원들의 이름까지 동의자 명단에 올라간 것으로 밝혀져 조합 기능이 정지되기도 했다.

문제는 현 시점에서 조합이 하자를 보완할 방법이 없다는 것.왕십리1구역의 조합원은 "철거까지 마무리된 상태에서 사업을 원위치하라는 게 말이나 되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다만 소송을 제기한 측(4명의 조합원)에서 감정평가액과 영업보상비 등으로 10억원 정도의 금액을 조합에 추가로 요구하고 있어 조합이 그 정도의 돈을 주는 선에서 소송을 취하하고 사업을 정상적으로 진행할 가능성이 높다.

한 조합원은 "고등법원에 가서 조합이 승소한다는 보장도 없는 상황에서 언제 있을지 모를 판결을 기다리느니 합의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했다.

◆소송 한 번에 20개월 제자리걸음

이달 관리처분인가를 다시 받을 예정인 마포구 아현4구역은 재개발 사업이 20개월째 제자리걸음이다. 처음 관리처분인가를 받은 것은 2008년 6월이었지만 작년 10월 법원 판결로 취소돼 조합 측이 다시 신청한 것이다. 재개발 사업 초기에 제시한 사업비와 관리처분인가 이후 제시한 사업비가 다르다는 것이 판결 이유였다. 조합은 사업비 내역과 개별 조합원의 분담금 산정 기준을 구체적으로 명시해 관리처분을 관할 구청에 재신청한 상태다.

지난주 대법원에서 조합 설립 무효 확정판결을 받은 부산의 우동6구역 사례에서 보듯 조합 측이 철거비와 조합원 분담금을 제대로 명시하지 않아 재판에서 잇따라 패소하고 있다.

문제는 재개발 사업에선 현실적으로 이를 보완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개별 조합원이 소유한 토지와 건물의 감정평가액과 시공사의 철거비와 건축비 등이 나와야 구체적인 개별 분담금을 알 수 있는데 감정평가와 시공사 선정 모두 조합 설립 이후의 일로,조합 설립 동의 과정에서 알기 어렵다. 전영진 예스하우스 대표는 "현실적으로 재개발 사업 초기 분담금 등이 법원이 원하는 수준으로 나올 수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법원은 무작정 사업을 중지시키고만 있다"며 "현 상황에서 소송에 걸리면 이길 수 있는 조합은 전국에 거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