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도약!2010] 한국 통일비용 서독의 9배…有備無患만이 재앙 막는다
▶▶버려야 할 것


#."남한과 북한이 통일되면 30~40년 내에 국내총생산(GDP) 규모가 프랑스 · 독일,나아가 일본을 추월할 것이다. "

미국계 투자은행인 골드만삭스가 작년 9월 발표한 '통일한국(a United Korea)-대북 리스크에 대한 재평가' 보고서의 골자다. 북한이 풍부한 지하자원과 양질의 노동력을 바탕으로 시장경제체제로 전환할 경우 한국이 이룩한 고속성장을 못할 이유가 없다는 게 골드만삭스의 분석이다.

#.피터 벡 미국 스탠퍼드대 아시아 · 태평양센터 연구원은 올해 초 월스트리트저널(WSJ) 기고를 통해 남북한 통일 비용이 최소 2조달러(약 2300조원) 이상 들 것이라고 주장했다.

북한 소득 수준을 한국의 80%로 끌어올리기 위해 향후 30년간 통일 비용이 최소 2조달러에서 최대 5조달러(약 5800조원)가량 필요하다는 분석이다. 이는 남한 국민 1인당 4만~10만달러(약 4600만~1억1500만원)의 통일비용을 분담해야 한다는 의미다.

◆통일에 대한 막연한 공포

통일에 대한 전망이 극과 극을 달리는 것은 한반도를 둘러싼 변수들이 그만큼 복잡하게 얽혀있기 때문이다. 이는 통일이 엄청난 기회이자 위기가 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실제 통일 20주년을 맞은 독일은 막대한 통일비용을 부담해야 했고 동서독 주민 간 갈등과 같은 통일 후유증에 시달렸다.

독일 정부는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 이후 20년간 '통일 비용'으로 최소 1조2000억유로를 쏟아부은 것으로 추정된다. 지금도 매년 독일 연간 GDP의 4% 수준인 1000억유로 정도가 옛 동독지역에 지원되고 있다.

남북한 통일의 경우 독일경제가 감당한 것보다 부담이 훨씬 클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 조세연구원은 남북한이 2011년 통일된다고 가정할 경우 10여년간 매년 남한 GDP의 12%가량(2008년 GDP 기준 122조원)에 해당하는 추가 재정을 통일비용으로 투입해야 할 것으로 분석했다. 막대한 통일비용에 대한 부담은 통일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확산시키고 통일을 금기시하는 분위기까지 만들었다.

각종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통일이 필요하다'는 의견은 계속 줄어들고 '통일이 필요없다'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아예 무관심하거나 통일을 두려워하는 경우도 많아지고 있다. "남한 국민이 북한 주민을 먹여살려야 한다" "통일이 되면 남북한이 모두 망할 것"이라는 주장이 나오면서 통일에 대한 공포를 불러왔다.

◆통일 편익에 대한 오해

그러나 전문가들은 통일에 따른 편익을 고려할 경우 통일비용은 충분히 감내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분단상태로 인해 치러야 하는 '분단비용'을 감안하면 통일이 훨씬 많은 기회를 가져다 준다는 것이다.

조동호 이화여대 교수는 "비용은 30년이건 50년이건 지출만 하면 끝나지만 편익은 한반도가 지구상에 존재하는 한 계속해서 발생한다"며 "통일로 인한 편익이 비용보다 훨씬 크다"고 말했다.

통일한국의 인구는 8000만명으로 내수시장 규모가 커지고 섬나라나 다름없던 한국이 대륙과 연결돼 지리적 한계도 극복하게 된다. 국가브랜드 가치 상승,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 등 무형의 편익도 엄청나다. 독일 통일을 교훈삼아 시행착오를 줄이면 적은 비용으로도 통일을 관리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통일비용이 과장된 측면도 있다. 북한경제의 흡수능력을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북한 경제를 남한 수준으로 끌어올릴 때 드는 비용을 추산한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大도약!2010] 한국 통일비용 서독의 9배…有備無患만이 재앙 막는다
◆정권유지를 위한 정략적 접근


남북 문제를 정략적으로 접근하는 것도 경계해야 할 대목이다. 과거 독재정권 시절에는 '북풍' 등과 같은 남북한 긴장관계를 이용해 정권 유지의 수단으로 삼는 경우가 있었다.

남북문제나 통일 논의를 놓고 보수와 진보 진영이 사사건건 대립하면서 남남갈등이 벌어지는 일도 많았다. 분단 이후 처음으로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킨 김대중 정부조차도 정권 내내 '퍼주기' 논란에 시달렸다. 남북문제를 정치적으로 이용하거나 성과를 내기 위해 조급증을 내서도 안된다.

대통령 임기가 5년인 한국과 종신제인 북한의 협상은 구조적으로 남한에 불리할 수밖에 없다. 실제 임기 내 일정한 성과를 거두고 싶어하는 한국 정권을 상대로 북한은 많은 것들을 얻어냈다. 지난 10년간 한국의 다각적인 지원노력에도 남북관계는 여전히 싸늘하다.

김근식 경남대 교수는 "남북문제는 당파를 초월해 민족의 이익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며 "여야를 떠나 정치권이 초당적으로 협력하는 문화를 만들어 가야 한다"고 말했다.

▶▶채워야 할 것

통일은 예고 없이 찾아올 수 있다. 이해득실을 따져 선택할 수 있는 여지가 없을 수도 있다. 통일이 축복이 될지, 재앙이 될지는 얼마나 치밀하게 대비하느냐에 달려있다. 통일 전문가들은 "통일을 남북한 모두의 재앙이 아닌 기회로 만들어야 하는 것이 현 시대 우리에게 맡겨진 소임"이라고 한다. 특히 중요한 것은 급작스런 통일의 충격을 흡수할 수 있을 정도의 경제력과 사회안전망을 키우는 것이다.

◆경제력 키워라

독일 통일과 비교할 때 현재 남북한의 상황은 훨씬 좋지 않다. 남북한 경제력은 통일 당시 동서독의 상황보다 못하다. 서독과 동독의 경제력 차이는 4 대 1 수준이었지만 남한과 북한의 경제력 격차는 38배에 달한다. 통일비용이 서독의 9배가 넘는다는 얘기다.

반면 인구 비례는 반대다. 동독 인구는 서독의 4분의 1밖에 안됐지만 작년 기준 남한은 4800만명,북한은 2300만명으로 남한의 부담이 훨씬 커질 수 있다.

동용승 삼성경제연구소 경제안보팀장은 "통일 당시 서독은 미국 다음가는 막강한 경제력을 과시하고 있었지만 통일 독일의 경제는 오랜기간 침체의 늪에 빠졌다"며 "준비 없이 통일이 갑작스럽게 이뤄질 경우 남북한은 상상하기 힘든 심각한 경제문제에 직면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동 팀장은 "무엇보다도 한국의 경제력을 높이는 것이 통일을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준비"라고 강조했다. 또한 북한의 개방과 시장경제체제로의 전환을 유도,경제력 격차를 해소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북한 바로알기 등 통일교육

독일 통일 후 경제적 격차로 인한 갈등,서독 주민들의 동독 지원에 대한 반감,동독 주민들의 사회주의 향수 등도 통일한국에서 충분히 나타날 수 있는 문제들이다. 같은 언어를 쓰는 같은 민족이지만 60년 이상 서로 다른 체제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사회문화적 장벽을 걷어내는데는 상당히 오랜 기간이 걸릴 게 분명하다.

동서독은 통일 이전부터 활발한 교류협력을 진행했고 동독 주민들의 자유에 대한 갈망도 대단했다. 하지만 남북한의 교류협력 수준은 여전히 걸음마 수준이다.

유호열 고려대 교수는 "완벽한 폐쇄성을 갖고 있는 북한은 통일이 되더라도 동독에 비해 체제전환을 하는데 어려움이 많을 것"이라며 "사고와 생활방식이 크게 다른 북한 주민들과 동거체제를 형성하는 문제도 현재 한국의 정치사회적 역량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울 수 있다"고 지적했다. 청소년은 물론 기성세대 역시 북한의 실상을 제대로 알 수 있도록 통일교육도 강화될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유 교수는 "핵 문제나 경제협력 못지않게 사회 문화적 역량을 키우는 게 중요하다"며 "통일에 대한 국민적 관심과 의지를 재점화하는 것도 중요한 과제"라고 말했다.

◆통일비전 마련 및 외교역량 강화

국민적 에너지를 하나로 모으는 새로운 통일비전도 필요한 시점이다. 통일에 따른 변화와 경제적 부담에 대한 국민들의 두려움을 줄여줄 수 있도록 설득력있는 청사진을 제시하고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해 나가야 한다는 지적이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이명박 정부가 '그랜드 바겐'과 '비핵 · 개방 · 3000' 슬로건을 통해 핵문제 선해결을 내세우고 있지만 단기적인 전술은 될 수 있어도 장기적인 전략이 되기는 힘들다"며 "핵문제뿐만 아니라 평화체제 구축,민족공동체 형성,통일 청사진을 담은 '그랜드 플랜'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북한 권력체제 내부의 급격한 변화에 대한 준비와 대응책 마련도 시급하다. 이를 위해 한국의 대비 태세 못지않게 주변 국가들과 긴밀한 공조체제를 구축할 수 있는 외교역량이 필요하다. 한반도는 남북한 분단을 전제로 지난 60년간 세력균형을 유지해 온 만큼 통일로 인해 동아시아 정세가 변화하거나 통일한국이 세계적인 강국으로 부상하는 것을 주변국들은 원치 않을 수 있다. 하지만 분단상태가 지속되는 것보다 하나로 합치는 게 자신들에게 이롭다면 굳이 반대할 이유가 없다.

북핵 문제 해결을 통일과 연계하는 것도 유력한 방법이다. 북한의 개방과 통일이 동아시아와 세계경제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점을 부각시킬 수도 있다.

양준영 기자 tetriu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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