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일본은 보란 듯이 부강해질 것이다. 앞으로 중국은 일본 때문에 고생하리라."

청나라 근대화의 기수 리훙장(李鴻章 · 1823~1901)이 1895년 시모노세키 조약을 맺기 위해 일본의 내각 총리대신 이토 히로부미를 만난 뒤 한 얘기다. 이 조약은 그해 4월 일본의 승리로 귀결된 청 · 일전쟁을 정리하기 위한 것.이토는 이날 사실상 항복문서에 서명한 리훙장을 향해 "제가 10년 전에 조선을 치고자 했을 때 대인(리훙장)에게 충고를 드린 적이 있지요. 신속하게 내정을 개혁하지 않으면 10년 뒤 우리 일본에 따라잡힐 것이라고 말입니다. 이제 전쟁을 해보니 제 말이 맞다는 것을 아시겠지요"라고 이죽거렸다.

리훙장과 이토는 당시 자국을 대표하는 근대화의 기수였다. 하지만 그 전개과정이 엇갈리면서 양국의 운명도 극과 극을 달리게 된다. 청은 일본의 메이지유신보다 8년이나 앞선 1861년부터 양무운동을 전개했지만 기대한 만큼의 실효를 거두지 못했다. 기술만 배우고 서구의 신문물 도입이나 시스템적 개혁을 등한시했기 때문이다.

리훙장은 자신의 한계를 "중국이 너무 커 인심을 하나로 모으기 어렵다"는 말로 변명했다. 반면 메이지유신 주도세력들은 일본을 송두리째 뜯어고쳤다. 막부파의 엄청난 저항을 무릅쓰면서 철저한 유신과 변법을 실천했다. 1873년 일본의 미국유학생이 무려 1000명에 달할 무렵,중국의 미국유학생은 겨우 60명에 그쳤던 게 대표적인 사례다. 당시 흥선대원군의 10년 세도 끝 무렵에 있던 조선은 한심하게도 전국 곳곳에 척화비를 세우며 혼자 꿈속을 헤매고 있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미래를 준비하지 않은 나라들은 그 대가를 혹독하게 치렀다. 반대로 세계정세의 흐름에 맞춰 내부 결속력과 국가 개조 프로그램,진취적인 대외정책을 구현하고 발휘한 나라들은 흥했다.

15~16세기 유럽의 최강자는 스페인이었다. 1492년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발견 이후 북미와 남미대륙의 광물을 지배하며 해양대국으로 떠올랐다. 그 힘의 원천은 국왕의 전횡에 대항할 수 있는 영주 및 기사의 강력한 재산권보호 제도에 있었다.

14세기 베트남 스리랑카를 거쳐 인도에 다다랐던 명나라 정화(鄭和) 원정대가 기득관료들의 쇄국정책에 가로막혀 중도 귀환한 것과 대조적이다.

19세기 유럽의 신흥강자는 독일이었다. 산업혁명의 후발주자였지만 실리를 지향하는 평화외교와 국가통일의 여세를 몰아 세계 최대 석탄 · 철강 생산국으로 올라섰다.

선발국 영국이 과도한 자만에 빠져 있는 틈을 타 유럽 자원시장을 평정한 뒤 통신 및 교통 인프라를 획기적으로 개선하고 국가 주도 아래 강력한 인력양성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성공했다.

지구촌 경제가 급속하게 통합되고 있는 2010년,한국은 이 같은 역사적 교훈들을 체화하며 미래를 향한 새로운 준비와 전략을 가다듬어야 할 시점이다. 안상훈 서울대 교수는 "국가가 밖으로 나가지 않으면 국민들이 떠밀려 나갈 수밖에 없는 게 냉엄한 현실이자 역사적 경험"이라며 "1960년대 서독으로 파견된 한국의 광부와 간호사들도 나라가 가난했기 때문에 나간 것"이라고 말했다. 세월이 많이 흘렀지만 요즘도 이런 고통을 겪고 있는 나라들이 있다.

1938년 필리핀은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국민소득이 높은 나라였다. 그러나 지금은 세계의 '가정부 국가'로 전락,많은 여성들이 대학을 졸업하고도 한 달에 100만원을 벌기 위해 세계 곳곳에서 허드렛일을 하고 있다. 필리핀 경제가 이 지경이 된 것은 경직된 보호주의 경제정책 탓이라고 많은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필리핀은 독립 초기에 외자를 끌어들여 국내 자원을 활용하는 정책을 포기하고 외자를 규제하는 정책을 폈다. 배타적인 '필리핀 우선주의(Filipino First)'가 포퓰리즘으로 자리잡은 가운데 정치인들 역시 선거전에서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그 결과 1965년 집권해 1986년 물러난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정권이 남긴 것은 빈곤과 낡아빠진 민족주의뿐이다.

변화하는 자는 흥하고 고수하는 자는 망한다. 조선과 구한말은 몇 차례의 기회를 놓쳐 망국의 비애를 후손들에게 남겨주었다. 지금의 한국은 100년 전과 비교도 안 될 정도의 역량과 위상을 세계 속에 과시하고 있다. 건국 60여년 만에 근대화,산업화,민주화를 모두 이뤄낸 유일한 국가가 바로 한국이다. 세계의 모든 정치가와 경제인들이 경탄의 눈길을 보내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2차 국운 상승을 도모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그러기 위해서는 버릴 것은 버리고 새로 채울 것은 채워야 한다. 지난 세월의 고통과 분투를 미래를 향한 디딤돌로 삼아야 한다. 한국경제신문은 향후 10년 내 한국이 세계로 웅비하기 위한 10가지 과제를 선정,'10-10-10'이라는 명칭을 붙였다. 이는 향후 10년 동안 버려야 할 10가지 구태와 채워야(얻어야) 할 10가지 덕목을 뜻한다.

선진 한국을 건설하기 위한 모든 과제들을 망라할 수는 없지만 미국 유럽 중국 일본을 아우르는 해외취재와 청와대 산하 국가브랜드위원회와 미래기획위원회,주요 기업 경제연구소들과의 공동기획을 통해 새로운 한국의 아젠다와 미래상을 그려봤다.

조일훈 기자 ji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