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1초로도 승부가 갈리는 선물 · 옵션시장에서 코스콤(옛 증권전산)이 일부 증권사와 선물회사에 대해 매매주문을 다른 회사들보다 최고 20%나 빨리 체결해주고 있어 불공정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9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여의도 거래소 사옥에 입주해 있는 NH투자증권 리딩투자증권 KB선물 부은선물 등 4개 증권 · 선물회사들은 코스콤 랜망을 통해 한국거래소의 매매체결시스템에 직접 접속,다른 업체들보다 주문체결 속도가 최고 20%(0.004초)나 빠른 것으로 나타났다.

일반 증권사와 선물회사는 KT 데이콤 등의 통신망을 통해 거래소 시스템에 연결돼 주문 체결 속도가 0.016초에 이르지만 이들 4개사는 0.012초로 훨씬 빠르다.

이 같은 속도 차이는 주식의 경우엔 큰 문제가 없지만 초단타 매매가 일반적인 선물 · 옵션시장에서는 회사의 손익이 좌우될 정도로 큰 차이라는 지적이다.

특히 일부 선물사들은 속도의 경쟁 우위를 영업에 활용, 초단타 대량거래를 일삼는 외국인 투자자들을 유치해 시장점유율을 확대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외국인들이 빠른 주문 체결을 무기로 초단타 대량거래에 나서 막대한 수익을 챙겼을 것으로 추정된다"며 "국부 유출의 소지도 있다"고 지적했다.

KB선물과 부은선물은 거래소 별관에 입주해 있으며 NH투자증권 리딩투자증권은 사무실만 빌려 전산시스템을 두고 있다. 이에 따라 증권사와 선물회사들은 거래소와 코스콤이 불공정 행위를 조장하고 있다며 크게 반발하고 있다.

대형 증권사들은 지난달 실제 주문체결 속도에 이 같은 차이가 있음을 확인하고 거래소 매매체결시스템 유지 보수를 관할하는 코스콤과 거래소 측에 불공정성 문제를 정식으로 제기했다. 또 증권 · 선물회사 전산 담당 임원인 최고정보책임자(CIO)들은 지난 2일과 4일 잇따라 회의를 갖고 대책을 논의했다.

김기범 메리츠증권 사장은 "이는 최근 미국에서 논란이 됐던 고주파 거래(HFT · High Frequency Trading)문제와 다름없다"며 "거래의 형평성이나 공정성 측면에서 금융투자업계 전체에 큰 영향을 미치는 심각한 문제"라고 강조했다. HFT란 금융회사들이 월등한 컴퓨터 속도를 무기로, 일반 투자자들이 주식시장 주문정보를 접하기도 전에 이를 파악해 주식을 매매하는 방식이다. 이번 건은 컴퓨터는 아니지만 접속망의 차이를 통해 불공정한 상황이 초래됐다는 지적이다.

거래소도 문제가 있음을 인식, KB선물 등 4개사에 대해 일단 11일까지 매매시스템을 거래소 외부로 이전하고 전산망도 외부 통신사를 경유하도록 시정조치를 내렸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기본적으로는 거래소와 코스콤, 해당 증권사 간 사적 계약에 대한 사안이지만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해 진행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거래소 내에 코스콤 인터넷데이터센터(IDC)를 두어 희망하는 거래소 회원사들의 주문서버를 놓을 수 있게 하는 방안도 제시하고 있다.

서정환 기자 ceose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