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례1. 지난 1일 오후 2시께 전라남도 담양군 삼지천 마을.가족 단위 여행객들이 삼삼오오 마을 해설가와 함께 돌담길을 걷고 있다. 아시아 최초로 슬로 시티로 지정된 삼지천 마을은 창평 고씨의 집성촌으로 고재환 고가,고재욱 고가 등 100여년이 넘는 한옥들이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곳.어른 걸음으로 한 시간 정도면 마을을 둘러볼 수 있다. 서울에서 두 딸과 함께 온 박충녕씨(52)는 "해설가의 설명을 듣다보면 기와 한장도 소홀히 넘길 수 없다"며 "역사도 배우고 풍광도 즐길 수 있어 가족 여행으로 금상첨화"라고 말했다.

#사례2. 지난 3일 오후 8시 서울 광나루 한강시민공원 근처 강동 그린웨이.강동구청이 개최한 '한강생태공원 달빛걷기 대회'에 남녀노소할 것 없이 수영복 또는 바캉스 차림으로 2000여명이 참가했다. 이들은 강동 그린웨이 25㎞ 구간 중 일부인 한강생태공원 갈대밭 3.5㎞를 1시간 동안 달빛과 별빛을 가이드 삼아 걸었다.

걷기 열풍이 전국을 강타하고 있다. 수도권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제주도와 지리산을 단지 걷기 위해 찾는 여행객이 수만명에 이를 정도로 걷기신드롬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제주도 올레길은 2007년 9월 제주도 성산읍 시흥~광치기 해안에 올레 1구간이 생긴 뒤,지금까지 13개 구간(265㎞)이 지정됐다. 작년 말부터 입소문이 나 올 들어서만 벌써 9만여명이 다녀갔다. 지리산 둘레길은 지리산을 빙 둘러 고갯길,숲길,마을길 등을 하나로 잇는 옛길을 복원한 산책로다. 지금은 남원 주천에서 경남 산청까지 70㎞ 구간만 열려있지만 2011년까지 총 300여㎞에 이르는 둘레길이 생길 예정.지리산 하면 천왕봉을 오르는 종주코스가 유명했지만,올 들어 둘레길을 걸은 워킹족만 5만여명에 달한다.

올레길과 둘레길이 인기를 끌면서 여행사들도 관련 상품을 속속 내놓고 있다. 제주 전문 여행사 건건테마여행사는 지난달 제주올레길 2박3일 코스 상품을 내놨다. 제주도의 다른 관광지는 포함돼 있지 않고 올레길 2코스만으로 짜여 있다. 투어컴,썬모래투어 등 제주도 전문 여행업체들도 당일코스,1박2일 코스 등 다양한 상품을 판매하고 있다. 투어컴 관계자는 "상품이 생긴 지 한 달도 되지 않아 수백명이 이용했다"며 "관련 상품을 더 내놓을 예정"이라고 말했다. 지리산 둘레길 여행 상품도 인기다. 금성관광이 지난 4월 말에 내놓은 당일 코스는 매주 1회만 운영하지만 벌써 200명 넘게 다녀왔다.

여행 관련 서적에서도 걷기가 트렌드다. 《제주걷기여행》 《지리산 둘레길 걷기여행》 《주말이 기다려지는 행복한 걷기여행》 등 도보 여행 서적이 인기몰이 중이다.

지자체들도 산책로를 조성하는 등 걷기 열풍에 동참하고 있다. 서울시는 지난달 22일 서대문구 등의 주택가 인근 산자락 12곳에 노인,어린이 등이 쉽게 걸을 수 있는 산책로 30㎞를 2012년까지 만든다고 발표했다. 산책길 바닥은 목제데크,마사토 등 자연 소재를 최대한 활용해 만들어지며 곳곳에는 안내판과 벤치,전망대 등 편의시설이 설치된다. 부산 남구청은 5억4000여만원을 들여 신선대 둘레길,황령산 숲길 등 7개의 테마 길을 만드는 '남구 탐방 명품 건강길'조성 사업을 시작했다.

광주시는 지난 5월 산수동에서 무등산 원효사에 이르는 11.87㎞ 구간의 무등산 옛길을 개방했다. 이 구간은 개방 한 달 만에 이용자가 1만명을 넘을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전북도 지난 6월14일 희망프로젝트사업의 하나로 익산시 등 14개 시 · 군 1개 노선씩 모두 197㎞ 구간에 옛날에 걷던 길인 '둘레길'을 복원키로 했다.

세계걷기운동본부의 정준 사무총장은 "경제가 어렵기 때문에 건강이라도 챙겨야 한다는 욕구와 웰빙 열풍이 맞물려서 걷기 신드롬이 생겨났다"며 "천천히 걸으면서 자기 자신을 관조하고 성찰하려는 심리도 크게 작용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김주완 기자 kjw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