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재 <논설위원·경제교육연구소장 jkj@hankyung.com>

금융 테크닉 걱정했던 그리스 철학자들

인류의 진보엔 거품의 역할도 무시못해

로마 사람들은 투기꾼을 '그라키'(Graeci)라고 불렀다. 그라키는 그리스 사람이라는 뜻이다. 로마 시대에도 투기꾼이 있었다는 것에 놀라지 말라.원거리 무역 환어음 결제에서부터 무역 위험을 헤지하는 다양한 파생상품들까지 지금 있는 것은 그 시대에도 당연히 존재했다. 드넓은 제국의 조세 징수권은 그 자체로 매력적인 투기 상품이요 농업 선물(先物)상품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그리스 당대의 투기열풍은 물론 화폐가 이자를 낳는다는 사실부터가 못마땅했다.

그의 대표작인 '정치학'의 한 구절은 "요즘의 금융은 정말 이해하기 어렵다. 돈으로 돈을 버는 복잡한 기술은 모리배가 할 짓"이라고 쓰고 있다. 그가 "이해할 수 없다"고 했던 바로 그 말을 월가의 서브프라임 사태를 보면서 지금 우리는 되풀이하고 있다. 헬레니즘 문명의 도처에서 발견되는 경매장도 상품창고도 종잇조각을 발행하고 그것을 유통시켰다. 군인과 법률가의 체제였던 로마가 고난도의 금융투기를 만났을 때 그것을 그리스 사람의 사기술이라고 불렀던 것은 이해할 만하다. 금융 투기는 3세기께에는 이미 귀금속에서 독립한 신용화폐로까지 옮아갔고 통화위기는 일상적 현상이 되고 말았다. 물론 도가 지나치면서 로마는 결국 파국을 맞았다.

르네상스와 함께 투기도 부활했다. 금융투기가 극성을 부렸고 급기야 1351년 베네치아는 루머 단속법까지 만들었다. 정부 채권의 가격을 떨어뜨리는 루머를 단속하고 채권 선물거래를 금지하는 법안이었다. 16세기 프랑스에서 터졌던 채권투기에는 하인들과 과부들까지 미쳐들었고,1690년대 영국의 주식회사 붐 당시에는 심지어 '고아원 주식회사'까지 등장했으니 현대의 닷컴 열풍을 능가했다. 투기의 전형으로 불리는 튤립 광풍의 원조는 놀랍게도 중국의 당나라다. 이세민이 천하를 통일하고 평화와 변영의 시기가 열리자 장안의 귀족들은 그들의 정원을 장식할 아름다운 모란꽃 투기에 몰입했다. 늦은 봄이면 화려한 모란꽃 경연대회가 열렸고 1등을 받은 모란 가격은 집 한채를 훌쩍 뛰어 넘었다. 농부들이 곡물 아닌 모란재배에 미쳐갔던 것은 당연했고….(장안의 봄:이시다 미키노스케)

아마도 지금의 금융투기와 가장 비슷한 형태는 1720년에 터졌던 미시시피 버블 사건일 것이다. 화폐의 금 태환을 포기하고 대신 토지를 담보로 무한정의 화폐를 발행하는 요술은 바로 이 시대의 작품이다. 부동산을 기초로 부풀려 올린 거품이라는 면에서 작금의 거품은 미시시피 버블과는 쌍둥이다. 미시시피 주식을 사기 위해 과부들은 과부연금을 해약했고 창녀들은 몸을 팔았다. 남미 광산 붐에서부터 미국의 철도 투기(1845년)를 거쳐 20세기 들면 자동차 라디오 비행기에까지 모든 인간의 위대한 진보에는 크건 작건 열광적인 투기가 붙었다. 투기는 또한 진보를 장려했다. 투기가 없었더라면 우리가 누리는 많은 진보들 중 상당수는 아예 태어나지 않았을 수도 있다. 투기는 악마적이고 부도덕하지만 분명 그것에 맡겨진 역할도 있다.

새삼 당황해할 이유는 없다. 전우의 시체를 넘어 진군하듯이 인간의 욕망이 부딪치는 장터에는 언제나 거친 파열음이 터지곤 했던 것이다. 물론 리스크 제로에 도전한다는 현대 파생상품의 금융사기적 구조와 끊임없이 거품을 만들어 내는 투기적 금융거래를 용서하자는 말은 결코 아니다. 당연한 것이지만 금융사기와 배임,횡령에 대한 광범위한 사법적 청소작업이 조만간 월가에서 시작될 것이다. 구제금융 법안도 당국의 조사와 처벌을 분명히 하고 있다. 거품은 걷어내고 과잉은 제자리로 돌리면 되는 것이다. 이번 사태를 자본주의 종말처럼 떠드는 사람들이 생기고 있는 것도 예나 지금이나 다를 것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