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서 금기시돼 온 후계구도 문제가 수면위로 부상하고 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건강에 심각한 이상이 확인된 만큼 북한 내부에서도 그냥 넘어가기는 어려운 상황이 됐기 때문이다. 후계구도가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김 위원장이 유고할 경우 북한의 지도체제는 급격한 혼란을 맞이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다.

후계구도는 대체로 김 위원장의 매제인 장성택 노동당 행정부장과 김 위원장의 세 아들에 초점이 맞춰진다.

장 부장은 노동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으로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다가 2004년 초 '권력욕에 의한 분파행위'를 이유로 업무정지 처벌을 받기도 했지만 2년여 만에 노동당 근로단체 및 수도건설부 제1부부장으로 복귀한 데 이어 작년 10월 신설된 당 행정부장으로 임명되면서 권력의 중심에 실질적인 2인자로 부활했다.

장 부장은 김 위원장의 여동생인 김경희 당 경공업부장의 남편인 데다 김 위원장의 신임이 커서 그의 주변에는 늘 사람이 모였고 이게 김 위원장의 권력에 도전하는 것으로 비쳐져 김 위원장의 견제를 받기도 했다. 한 대북 소식통은 "김 위원장이 작년 장 부장을 행정부장에 임명하고 절대적인 권한을 준 것으로 안다"며 "연로해가는 김 위원장이 믿을 수 있는 사람은 친인척인 장 부장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더욱이 장 부장은 북한의 고위층이 김 위원장 대신으로 인정할 수 있는 인물이다. 오랫동안 김일성 김정일 부자의 일인지배 체제가 유지돼온 만큼 북한 고위층은 김 위원장과 가족적 연관이 없는 인물이 김 위원장을 대신하는 데는 상당히 부정적이라고 고위층 탈북자들은 지적했다.

아들에 대한 후계수업에 나설 수도 있다. 김 위원장에게는 장남 정남(37)과 배 다른 차남 정철(27),삼남 정운(24) 등 세 명의 아들이 있다.

정부 당국자는 "김정일은 자신이 1974년 후계자로 너무 일찍 지명된 이후 치열한 권력투쟁을 겪어 같은 과정이 반복되길 원하지 않아 후계자 지명을 미뤄왔다"고 말했다.

김정남은 장 부장의 지지를 얻고 있지만 그만큼 반대 세력도 많다. 김정철은 뚜렷한 지지세력은 없지만 반대세력도 많지 않다. 김정운은 아버지인 김정일을 가장 많이 닮았고 김정일의 넷째 부인인 김옥의 지지를 받고 있지만 3남이라는 것이 약점이다. 3형제 중 후계자로 뚜렷이 부각되는 인물이 없다는 점에서 군부가 개입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특히 후계자 구도가 불명확한 상태가 지속되면 북한에서 막강한 힘을 갖고 있는 군부의 입김이 세질 가능성이 높다.

김 위원장이 장기간 와병하거나 공백 기간이 길어지면 북한은 비상체제로 돌입할 수 있고 그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힘이 군부로 모이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군의 핵심 인사 중 3형제를 지지하는 층이 나뉘어져 있어 극단적인 경우 군부 내에서의 충돌 가능성도 지적하고 있다.

임원기 기자 wonk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