趙成鳳 <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재정경제부 혁신인사기획관실에 비상이 걸렸다는 보도가 나왔다.

재경부가 최근 금융정책국 전 직원 59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10명 중 7명 꼴로 혁신 피로감에 시달린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혁신에 피로감을 느끼는 이유로 '전시성 혁신사업' 때문이라는 응답이 45%로 가장 많았고,'가시적 성과가 없어서(25%)','업무부담만 가중(15%)'이라는 응답이 뒤를 이었다.

참여정부가 내건 공공개혁 상품의 대표 주자(走者)인 혁신 프로그램에 공무원들 스스로 얼마나 냉소적인가를 잘 말해주고 있다.

참여정부의 공공혁신은 생색내기에 치중돼 왔다는 그동안 항간의 지적이 구체적인 수치로 확인된 것이다.

참여정부 공공혁신의 특징은 스스로도 밝히고 있듯이 소프트웨어적이다.

즉 인력 감축이나 조직 개편,자산 매각이나 민영화와 같은 하드웨어적인 개혁은 지양(止揚)하고 일하는 방식과 고객서비스 개선을 강조하는 것이다.

본래 하드웨어적인 개혁의 성과를 알 수 있는 지표는 간단하다.

인력,매출,이윤,자산 등 몇 가지 성과지표만 보더라도 확연하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런데 소프트웨어적인 성과의 지표를 확인하는 작업은 간단치가 않다.

우선 분야만 하더라도 고객만족도,청렴도,위기관리,홍보관리,혁신관리,정보화 등 다양하다.

평가주체도 많다.

자체 평가,외부전문가 평가와 함께 연말이면 다양한 설문조사를 실시한다.

게다가 혁신워크숍이다,평가회의다 해서 혁신에 쏟아붓는 시간과 비용이 엄청나다.

필자도 연말이면 여러 정부부처,공기업,정부출연 연구기관이나 이들을 대신하는 여론조사 기관에서 끊임없이 걸려오고 날아드는 전화와 이메일,각종 평가서류와 보고서 심사 의뢰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그러니 재경부 공무원들이 업무부담이 가중돼 힘들다고 대답한 것을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는다.

이러다보니 평소에 일을 열심히 잘 한다고 해서 좋은 평가가 나오는 것이 아니다.

소문 내고 포장을 하고 알려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실제로 일하는 노력 이상으로 이를 광고하고 알리고 생색내며 평가 담당자들이나 주요 예상 설문 대상자들과 원만한 관계를 형성하는 일에 더 공(功)을 들이게 된다.

자연히 이를 위한 인력과 부서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

참여정부는 올해 들어 매주 국무회의에서 거의 빠짐없이 정부 직제개편안을 통과시켜 올해에만 1만4000여명의 공무원을 증원한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참여정부에서만 6만5000여명,철도공사로 전환한 3만명에 가까운 인력을 포함한다면 9만5000여명에 달하는 공무원이 증가한 셈이다.

진정한 혁신은 성과로 보여주어야 한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얘기지만 현실에서는 종종 간과된다.

1992년 미국 대통령선거에 출마했던 기업인 페롯이 당시 미국 최대 기업에서 벌어지고 있는 관료주의를 풍자한 내용은 유명하다.

이 회사 공장에 뱀이 들어오자 이 뱀을 퇴치하기 위하여 회사 경영진은 이 뱀을 어떻게 쫓아낼지를 검토하기 위한 위원회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냥 아무나 나서서 죽여 쓰레기통에 버리든가 공장 밖으로 쫓아내면 될 일인데 말이다.

불필요한 일을 만들어서 하고 이를 생색내고 알리고 검토하는 일은 이미 공공부문의 특기(?)가 되어 버렸다.

"나라에서는 월급을 주는 척 했고 우리는 일하는 척 했다"란 말은 소련 사회주의 체제의 위선(僞善)과 비효율성을 꼬집은 말로 잘 알려져 있다.

본래 사회주의는 도덕적 호소력이 대단했다.

그러나 그 시스템이 과학적으로 작동되지 않을 때 가장 위선적인 체제가 되어 버렸다.

모든 것이 잘 되고 있는 것처럼 포장하고 외부에 선전하려고 했지만 실제로 경쟁력을 높이려는 노력을 하지 않을 때 그 조직은 병들게 된다.

그나마 안심되는 것은 재경부 공무원들이 이런 공공혁신에 대해 솔직하게 설문조사에 임했다는 것이다.

정부는 혁신하는 척 했지만 공무원은 혁신이 잘 된다고 말하는 척은 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하드웨어적인 성과 없는 혁신은 결국 포장에 지나지 않는다.

공무원도 알고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