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원태연(29)씨는 재야의 음유시인으로 통한다.

그는 정식으로 등단한 것도 아니고 문단에서 제대로 평가를 받은 적도 없다.

그러나 청소년들 사이에서 그는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다.

1992년 낸 첫 시집 "넌 가끔가다 내 생각을 하지, 난 가끔가다 딴 생각을
해"는 80만부 가까이 팔렸다.

이후 "사랑해요. 당신이 나를 생각하지 않는 시간에도" 등 다섯권의
시집으로 약 3백만부의 판매기록을 세웠다.

그가 이번에는 시집 "눈물에... 얼굴을 묻는다"(은행나무)를 음악CD와
뮤직비디오로 함께 내놓았다.

시와 음악 비디오를 한데 접목시킨 3각 복합문화상품이다.

올컬러로 인쇄된 시집에는 그가 직접 폴라로이드 카메라로 찍은 "사진시"도
들어있다.

신나라뮤직이 제작한 CD는 시집 뒷표지 안에 붙어있다.

책값은 시집과 CD를 합쳐 1만2천원.

CD의 음악은 작곡가 이철원씨가 만들었고 영화 "주유소 습격사건"으로 잘
알려진 영화배우 유지태가 내레이션을 맡았다.

출판사는 그의 시집에 "시로 그린 음악" "음악으로 그린 시"라는 부제를
붙였다.

표제작 "눈물에... 얼굴을 묻는다"는 뮤직비디오로 제작돼 TV로 방영될
예정이다.

뮤직비디오에는 내레이션을 맡은 유지태와 인기 탤런트 한고은이 출연한다.

그의 시도는 단순히 새롭다는 차원을 뛰어넘는다.

특정 장르의 콘텐츠를 다양한 매체와 결합시켜 다중이 공유할 수 있는
공감각적 문화상품으로 재창조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21세기에는 문화향유의 방식이 바뀔 수밖에 없다.

문화의 대중성이라는 측면에서도 그렇다.

그는 "감성시"라는 영역을 본격적으로 개척한데 이어 이를 상품화하는데
성공했다.

그의 시를 그냥 문장으로 읽을 때와 음악이나 뮤직비디오로 감상할 때는
큰 차이가 난다.

가령 "사랑이란 멀리 있는 것/멀리 있어 안 보이는 것/그렇게 바라만 보다
고개 숙이면/그제서야 눈물 너머로 어렴풋이 보이는 것"("사랑" 부분)같은
시에 소리와 이미지가 겹쳐질 때 신세대 독자들의 감수성은 금방 탄력을
받는다.

"사랑은 때때로 가을에 피어납니다/따뜻하게 데워진 베지밀을 마시고 있을
때/큰 낙엽송 밑에서 신문을 읽고 있을 때/모든 가을 풍경 속에 나 역시
하나가 되어 있을 때/사랑은 조용히 가슴 속에서 피어납니다"("풍경"부분)
라는 독백도 인접 예술의 손길이 닿으면 또다른 감흥으로 다가온다.

이번 내레이션 시집은 음반의 비중을 감안해 서점뿐 아니라 신나라레코드
등 전국 음반점에서도 판매된다.

(02)3143-0651

< 고두현 기자 kdh@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2월 7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