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질 성범죄에 '화학적 거세' 칼빼든 법원

인사이드 Story 아시아 최초로 성 충동 약물치료 명령

미성년자 5명 성폭행 30대…징역 15년에 약물치료 3년
성 충동 줄고 발기력 저하…재범 우려자에 적용 늘 듯

법원이 성폭력 범죄자에 대한 성충동 약물치료(일명 화학적 거세) 명령 청구를 처음으로 받아들였다.

서울남부지법 형사11부(김기영 부장판사)는 미성년자 5명을 성폭행한 혐의(특수강간 등)로 구속기소된 표모씨(31)에게 징역 15년을 선고하고 성충동 약물치료 3년, 전자발찌 부착 20년, 정보공개 10년,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200시간 이수를 명령했다.표씨는 2011년 11월부터 7개월 동안 스마트폰 채팅으로 만난 10대 중반의 여성 청소년 5명과 6차례에 걸쳐 성관계를 가진 뒤 이들의 알몸 사진, 성관계 동영상을 인터넷 등에 퍼뜨리겠다며 흉기로 협박해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됐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범행을 자백한 후 반성하고 있지만 청소년을 성매수한 뒤 성폭행하고 협박한 것은 죄질이 나쁘다”며 “피해자들이 강력한 처벌을 바라고 있다”고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약물치료 3년 명령에 대해서는 “피고인의 성도착증 정도가 중증이며 성범죄자 위험성 평가 결과 재범 위험성이 높은 것으로 판단돼 성폭력 범죄의 습벽과 재범 위험성이 있다고 인정된다”고 배경을 밝혔다.

이 판결로 앞으로 검찰이 성충동 약물치료를 청구하면 법원이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아졌고, 모든 성범죄자로 대상이 확대될 가능성도 높아졌다. ◆아시아 최초…출소 2개월 전부터 투여

성충동 약물치료 명령을 받게 되면 형 만기나 가석방 등 출소 2개월 전부터 남성호르몬 생성 억제 약물을 주기적으로 투여하며 석방 후에도 약물치료를 받아야 한다. 화학적 거세는 수술로 고환을 제거하는 물리적 거세와 구별된다. 치료에 쓰이는 약물 ‘루크린’ 성선자극호르몬 길항제(GnRH Agonist)는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의 생성을 억제해 성충동이나 환상을 줄이고 발기력을 저하하는 약품이다. 아시아에서 성충동 약물치료 제도를 도입한 것은 한국이 최초다.

출소 후 보호관찰소 관찰관 관리 아래 약물치료와 심리치료를 병행한다. 치료 기간 중에는 6개월마다 남성호르몬 수치를 검사받으며, 기간이 만료될 때까지 나아지지 않으면 보호관찰소 심의를 통해 검사가 치료기간 연장을 청구할 수 있다. 상태에 따라 치료기간을 줄일 수도 있다. ◆최장 15년까지 연장 가능

이번 판결은 법원이 처음으로 성충동 약물치료 명령을 내린 것으로 검찰은 이번 건을 포함, 지금까지 4건의 약물치료를 청구했다. 법무부도 약물치료 명령을 내릴 수 있다. 2011년 5월 아동 성폭행범 박모씨(45)의 약물치료 명령은 법무부 치료감호심의위원회가 결정했다.

그러나 이는 최대 3년으로 검찰이 최대 15년까지 청구할 수 있는 이번 사례와는 다르다. 성범죄자에 대한 약물치료는 미국 캘리포니아(1997년) 등 미국의 8개주와 독일(1969년), 덴마크(1973년), 스웨덴(1944년), 폴란드(2009년) 등에서 시행되고 있다. 황승태 서울남부지법 공보판사는 “성충동 약물치료는 범죄로부터 사회를 보호한다는 점과 자신의 충동을 억제하지 못하는 범죄자를 치료해 사회 복귀를 촉진하는 두 가지 의미로 해석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 성충동 약물치료

비정상적인 성적 충동이나 욕구를 억제하기 위해 성도착증 환자에게 약물을 투여해 도착적 성기능을 일정 기간 약화 또는 정상화하는 치료로 ‘화학적 거세’로 불린다.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을 억제하는 약품이 쓰인다.

박상익 기자 dir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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