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미술품 중 역대 최고가
총격에서 살아남은 전설의 작품
15명 응찰후 4분도 안걸려 낙찰
1986년에 판 컬렉터가 되사가
피카소의 '알제의 연인들'보다
200억원 가량 더 비싸게 팔려
'검은 피카소' 바스키아가 세운
美 작가 최고가 기록도 깨
"전세계 미술 시장 최고 호황기"
MZ세대 컬렉터 대거 경매 참여
"팔려는 작품도 많고, 돈도 충분"
9일(현지시간) 저녁 뉴욕 크리스티 경매장. 앤디 워홀(1928~1987)의 1964년작 ‘총 맞은 마릴린 먼로(Shot Sage Blue Marilyn)’가 나오자 장내가 술렁였다. ‘팝 아트의 제왕’이 남긴 최고 걸작의 ‘몸값’을 확인할 수 있는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15명이 달라붙은 ‘레이스’는 1억달러에서 출발한 작품 가격을 1억9504만달러(약 2500억원)까지 끌어올린 뒤에야 끝났다. 경매에 걸린 시간은 4분. 앤디 워홀이 ‘두 명의 피카소’를 한꺼번에 넘어서는 순간이었다.
2년 만의 경매…컬렉터 ‘세대교체’
파블로 피카소
‘알제의 여인들’(1955)
1억7940만달러 낙찰
‘총 맞은 마릴린 먼로’의 낙찰가는 공개 방식으로 팔린 20세기 미술작품 가격 중 가장 높았다. 앞선 최고가는 파블로 피카소의 ‘알제의 여인들’로 2015년 1억7940만달러(약 2300억원)였다. 워홀은 미국 작가가 그린 작품의 최고가 기록도 깼다. ‘검은 피카소’로 불린 장 미셸 바스키아(1960~1988)의 작품 ‘무제’의 몸값(2017년 1억1050만달러)을 여유 있게 넘어선 것. ‘해골’이란 별칭으로 잘 알려진 1982년작이다. 바스키아는 워홀과 3000여 개 작품을 함께한 절친이자 라이벌이었다. 이번 경매로 친구에게 ‘한 방’ 먹었다.
이번에 팔린 워홀의 작품은 ‘샷 마릴린’ 시리즈 작품 중 하나다. 샷 세이지 블루 마릴린은 먼로가 숨진 지 2년 뒤인 1964년에 제작됐다. 워홀은 먼로의 출세작인 영화 ‘나이아가라(1953)’의 현란한 포스터 사진을 실크스크린으로 제작했다.
작품 제목은 1964년 가을 행위예술가 도로시 포드버가 워홀의 스튜디오를 방문해 벽에 먼로의 초상화 작품을 겹쳐 세워달라고 말한 뒤 갑자기 권총을 발사한 사건에서 유래했다. 워홀은 먼로 시리즈를 각각 다른 색으로 5점 완성했는데, 2점만 총알에 관통됐다. 샷 세이지 블루는 이때 ‘살아남은’ 3점 중 하나다. ‘샷 마릴린’ 시리즈 중 오렌지색을 배경으로 한 작품은 2017년 경매가 아닌, 개인 간 거래를 통해 2억달러에 팔린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경매는 재미있는 뒷이야기도 낳았다. 워홀의 작품 등 이날 경매에 나온 작품 36점은 스위스 취리히의 유명 미술상이자 수집가 남매가 세운 토마스·도리스 암만 재단이 내놨다. 경매 수익 전액을 기부하기로 해 화제를 모았다. 이날 ‘샷 세이지 블루 마릴린’을 낙찰받은 사람은 글로벌 미술계의 ‘파워 딜러’로 불리는 래리 가고시안이었다. 1986년 뉴욕 23번가에서 토마스 암만에게 이 작품을 판 사람이다. 자신이 내놓은 작품을 36년 만에 되찾은 셈이다.
“올해 미술 시장 초호황 예고”
장 미셸 바스키아
‘무제’(1982)
1억1050만달러 낙찰
이번 크리스티 경매는 코로나19 여파로 2년 만에 열렸다. 미술계에서는 이번 경매에 대해 “올해 미술 시장의 체력을 확인할 수 있는 가늠자가 될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왔다. 이날 경매에는 사이 톰블리, 시그마 폴케, 카틴 키펜베르거, 루시안 프로이드, 바스키아 등 거장들의 대작이 쏟아져 나와 지난달부터 세계 미술계의 눈과 귀가 쏠렸다.
이 중 가장 주목받았던 워홀의 작품이 당초 추정가(2억달러)와 엇비슷한 금액에 낙찰되면서 미술시장 호황세가 올해도 지속될 것이란 예상이 나오고 있다. 해외 미술가에선 앞으로 2주간 계속되는 크리스티 경매의 총 거래 금액이 20억달러(약 2조5000억원)를 넘어설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20~40대 젊은 컬렉터들이 경매시장에 뛰어드는 등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고 있어서다.
필립 호프먼 뉴욕 파인아트그룹 창립자는 “2년간 시장에 나오지 못한 그림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고, (이 작품을 사들일) 컬렉터들의 수요도 충분하다”며 “모두가 최적기를 기다렸고, 지금이 최적기”라고 밝혔다. 타데우스 로팍 호주 갤러리스트는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미술 시장에 팔려고 내놓은 고가의 명작이 넘쳐나고, 돈도 충분하다”고 했다.
일각에선 경매가격이 계속 상승추세인 만큼 이번에 워홀이 세운 기록도 머지않은 시기에 깨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현재까지 세계 미술시장 최고가 경매 기록은 4억5000만달러에 팔린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살바토르 문디’다. 윌렘 드 쿠닝의 ‘인터체인지’(3억2800만달러)와 세잔의 ‘카드 놀이하는 사람’(2억8800만달러)이 뒤를 잇고 있다.
브루크너의 교향곡 전곡은 그 각각이 숲이자 성당이다. 그것은 집단적 열락을 안겨주는 종교적인 체험이기도 하고, 호젓한 산책길처럼 내밀하며 개인적인 체험이기도 하다.크리스티안 틸레만은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 뮌헨 필하모닉, 빈 필하모닉 등 가장 독일-오스트리아 레퍼토리에 정통한 악단들과 함께 브루크너 교향곡을 연주해 왔다. 빈필을 지휘한 2023년의 브루크너 교향곡 전곡(11곡) 영상물은 브루크너의 세계에 대해 오늘날 가장 정통적인 레퍼런스로 손꼽힌다.그 빈 필과 틸레만이 20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올해 방한 마지막날 연주에서 브루크너 교향곡 5번 B플랫장조 단 한 곡을 들고 왔다. 2019년 브루크너의 가장 ‘확장된’ 교향곡인 8번 C단조로 잊히지 않는 감동을 준 뒤 6년 만이다.악단이 입장하자 19일 슈만과 브람스 교향곡 연주와 달리 무대가 꽉 찼다. 악보에 표시된 호른 4대, 트럼펫 3대, 트럼본 3대보다 늘어난 호른 6대, 트럼펫 4대, 트럼본 4대로 증강된 금관이 눈에 띄었다.곡이 시작되자 과연 현악에서부터 틸레만과 브루크너가 소환하는 풍성한 양감이 귀를 압도해 들어왔다. 수많은 다른 연주가 그 양(量)만을 보여준다면 틸레만이 불러낸 숲은 그 전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양감을 넘어 두께까지 측정되는 해상도 높은 현이었다. 금관의 번쩍임이 햇살처럼 그 숲 위에 투영되었다. 금관의 미세 실수들이 귀에 잡혔지만 어떤 실황 연주에서나 마주칠 수 있는 부분들이다.동기와 주제들이 첩첩이 쌓이고 클라이맥스들이 능선처럼 중첩되면서 그동안 음원과 영상으로 만났던 틸레만 제(製) 브루크너의 매력들이 더 손에 잡힐 듯 호흡되기 시작했다. 그의 브루크
교향악 콘서트에서 연주가 끝난 뒤의 침묵은 어떻게 찾아오는가? 또 그것은 어떤 의미인가? 통상 차이콥스키의 ‘비창 교향곡’이나 말러의 ‘교향곡 제9번’처럼 음악이 조용히 침잠하며 마무리된 경우에는 객석에서 곧바로 박수가 나오지 않고 한 동안 침묵이 이어지는 것이 자연스럽고 바람직하다. 물론 연주가 충분히 좋았어야 한다는 전제가 필요하겠지만, 거장 클라우디오 아바도는 그런 침묵이야말로 연주에 대한 깊은 공감의 표시이자 연주자들에 대한 최고의 찬사라고 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지난 11월 20일 목요일 저녁,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빈 필) 내한공연에서 브루크너의 ‘교향곡 제5번’ 연주가 끝난 직후에 빚어진 침묵은 상당히 이례적이었다. 이 교향곡의 마지막 악장은 ‘드레스덴 아멘’ 풍의 주제에 기초한 종교적 코랄이 웅대하게 부풀어 올라 가슴 벅찬 절정에 도달한 상태에서 더없이 장엄하고 단호하게 끝맺기 때문이다. 여느 때라면 곧바로 박수와 환호가 터져 나와야 할 상황! 그러나 이 날은 마지막 음의 여운이 잦아들고 나서도 20초 이상의 침묵이 뒤따랐다. 그 표면적 이유는 지휘자가 동작을 풀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지만, 이 날 연주에는 그처럼 얼마간 강제된 침묵을 정당화시키고도 남을 만큼 특별한 무언가가 분명 있었다. 그 무언가는 명연이 유발한 극도의 순음악적 희열이었을 수도, 종교적 황홀경이었을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이 날의 관객들은 압도적인 예술적 경험을 했고, 그런 경험을 안겨준 작곡가 안톤 브루크너, 빈 필하모닉 단원들, 그리고 지휘자 크리스티안 틸레만에게 각별한 찬탄과 경의를 보내야 했다. 명연의 탄생
길가에 널린 평범한 돌멩이, 방구석에서 품은 공상도 예술가의 눈에 포착되면 작품이 된다. 서울 한남동 타데우스 로팍에서 열리고 있는 호안 미로(1893~1983)전, 바로 옆 갤러리바톤에서 열리고 있는 리너스 반 데 벨데(42) 전시는 그 사실을 명확하게 보여주는 자리다.타데우스 로팍 전시의 주인공인 미로는 스페인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작가다. 무의식과 꿈의 세계를 담은 그의 재기발랄한 작품은 전세계 미술계의 높은 평가를 받는다. 근래 들어 국내에서는 이건희 삼성 선대회장 기증품인 ‘이건희 컬렉션’에서 클로드 모네, 오귀스트 르누아르, 폴 고갱 등의 작품과 함께 그의 작품이 핵심 서양 미술품으로 꼽히며 주목받기도 했다. 이번 전시는 국내에서 처음으로 미로의 조각을 집중 조명하는 전시다. 1960년대 이후 노년기에 접어들어 제작한 청동 조각 13점이 전시의 주축이다.미로에게 조각은 ‘깎고 다듬는 것’이 아니라 ‘줍고 합치는’ 과정이었다. 그는 해변이나 산책로에서 발견한 나뭇가지, 돌멩이, 찌그러진 양철통 따위를 작업실로 가져왔다. 전혀 관계없어 보이는 이 사물들은 미로의 손을 거쳐 작품이 됐다. 청동이라는 육중한 재료를 쓰면서도 특유의 유머러스한 형태와 거친 질감 덕분에 회화의 다채로움과 리듬감이 입체적으로 살아 있다. “내가 돌을 집으면 그저 돌이지만, 미로가 돌을 집으면 그것은 곧 ‘미로’가 된다”는 말이 미술계에서 나온 이유를 실감할 수 있는 작품들이다.공간 연출에 주목할 만하다. 갤러리 공간 디자인을 담당한 양태오 디자이너가 전시장 내부에 한지 벽을 세우고 틈을 내 한옥의 차경(借景)처럼 작품이 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