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압류나 가처분을 해 두고서도 정작 본안소송을 장기간 제기하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은데 예기치 않은 낭패를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빌려준 돈을 받지 못해 채무자의 부동산에 가압류를 해두었지만 채무자를 상대로 돈을 달라는 재판을 제기하지 않고 몇 년이 흐른 경우를 살펴보자. 가압류만 해둔 채로 이렇게 장시간이 흐르는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인간관계에서 법적인 절차는 최소한에 그쳐야한다’는 생각을 근저에 두고 ‘가압류까지 했는데 곧 돈을 주지 않겠느냐’ 는 낙관적인 생각을 하기 때문일 수도 있고, 또 어떤 경우에는 비록 돈을 받지는 못하고 있지만 채무자와의 인간적인 면 때문에 차마 본 소송을 제기해서 법정에서 얼굴을 마주치기가 너무 부담스럽기 때문일 수도 있다. 법적으로는, 가압류를 해 두면 돈 받을 채권의 소멸시효 진행이 그 때부터 중단될 뿐만 아니라 가압류가 부동산등기부에 등재된 상태에서는 더 이상 소멸시효가 진행되지도 않는다는 생각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이는 채권자의 권리보호에 미흡할 수 있다. 위에서 본 사례에서와 같이 가압류를 해 두고 몇 년씩이나 본 소송인 대여금청구의 소를 제기하지 않으면, 민사집행법에 따라 사정변경에 의한 가압류취소 사유가 될 수 있다. 본 소송 제기도 없이 장기간 가압류와 같은 보전처분만 해두게 되면 장기간의 보전처분으로 인해 채무자의 이익이 크게 침해될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보전처분을 한 이후 장기간 본 소송을 제기하지 않아 보전처분의 취소사유가 될 수 있는 기간은 관련법의 개정으로 크게 차이가 있는데, 2002. 7. 1. 이전에 신청된 보전처분은 10년 내에, 2002. 7. 1.부터 2005. 7. 27.까지 신청된 보전처분은 5년 내에, 2005. 7. 28.부터 신청된 보전처분은 3년 내에, 보전처분집행 이후 본안소송을 제기하지 않으면 보전처분취소사유가 된다.
결국 가압류를 해두고 장기간 본 소송을 제기하지 않게 되면, 채권의 소멸시효가 중단되기 때문에 실체적으로는 채무자에 대한 대여금채권 자체는 그대로 살아있을 수 있지만, 절차적으로는 가압류집행이 취소당할 수 있게 된다. 채권이 소멸되지 않고 존재하고 있다는 것과, 장기간 본소를 제기하지 않아 절차법적으로 가압류가 말소된다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물론, 채권은 여전히 살아있기 때문에 가압류집행이 취소되기 이전에 다시 가압류를 신청하면 새로운 가압류가 인용될 수 있을 수도 있다. 또, 사정변경에 의한 보전처분 취소재판은 채권자와 채무자 쌍방을 법원에 소환해서 심문을 한 다음에 취소 여부를 판단하는 것이 원칙이라는 점에서 가압류취소재판의 기일소환장을 받은 가압류채권자로서는 가압류취소재판에서 기존의 가압류가 취소되어 등기부에서 말소되기 이전에 즉시 다시 가압류신청을 하는 기회를 가질 수는 있다. 그렇지만 이런 식의 조치는 채무자가 해당 가압류재산을 그대로 보유하고 있는 전제하에서만 가능하다는 점에서, 만약 채무자가 가압류취소 재판을 하기 이전에 다른 사람에게 해당 부동산을 매매해서 소유권을 이전한 다음에 가압류취소재판을 제기한다면 채무자의 재산이 아니라는 점에서 새로운 가압류가 여의치 않을 수 있다.
이 점은 가처분도 마찬가지일 수 있다. 부동산을 사서 이전등기를 받지 못해 임시로 처분금지가처분만 해둔 채 몇 년이 흘렀는데, 채무자인 매도인이 이 부동산을 다른 사람에게 팔아버리고서 이전등기까지 한 후에 사정변경에 의한 가처분취소를 구하게 되면, 매도인이 이중매매에 따른 배임죄로 형사처벌 될 수 있는 것은 별론으로 하더라도, 가처분해 둔 해당 부동산에 대한 권리취득이 불가능할 수 있다.
▶ 이해를 돕기 위해 최근에 처리한 사건을 소개하기로 한다.
의뢰인의 아버지는 약 18년 전에 다른 사람으로부터 돈을 빌리고 돈을 갚지 못한 채 최근에 사망했는데 약 12년 전에 이 채권문제로 가압류를 당해 지금까지 이 상태가 유지되어오고 있었다. 그런데 최근 가압류된 이 땅이 수용되면서 상당한 보상금을 받을 수 있게 되자, 가압류등기를 말소하기 위해 필자에게 법률자문을 의뢰받게 된 것이었다.
당시 의뢰인은 10년 이상되면 채권이 소멸한다는 막연한 생각에 사건해결을 쉽게 바라보고 있었지만, 법리적으로는 간단치 않다. 이 사안은 12년 전에 이루어진 가압류로 인해 일단 대여금채권의 소멸시효는 중단되었지만, 가압류한 때로부터도 다시 10년 이상이라는 시간이 흘렀다는 점에서, 가압류로 인한 시효중단의 효력이 쟁점이 되었다. 즉, 가압류로 인해 중단된 시효가 가압류된 이후로 다시 진행하여 가압류된 시점으로부터 10년이라는 시간이 지나면 채권이 소멸되는 것인지, 아니면 가압류가 지속되는 한 계속 시효중단의 효력도 유지되는 것인지가 논란이 될 수 있다. 이 점에 관해 대법원은 “--민법 제168조에서 가압류를 시효중단사유로 정하고 있는 것은 가압류에 의하여 채권자가 권리를 행사하였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인 바, 가압류에 의한 집행보전의 효력이 존속하는 동안은 가압류채권자에 의한 권리행사가 계속되고 있다고 보아야 하므로 가압류에 의한 시효중단의 효력은 가압류의 집행보전의 효력이 존속하는 동안은 계속된다”고 하여( 대법원 2006.7.4. 선고 2006다32781 판결), 후자의 입장을 취하고 있다.
결국, 가압류가 그대로 존속되고 있는 한 채권은 소멸하지 않고 그대로 유효하게 존재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채무자가 가압류를 해결하고 채무에서 해방될 수 있는 방법은 있다. “提訴(제소)기간 도과를 이유로 한 가압류취소”절차인데, 가압류한 이후 10년 내에 가압류의 근거가 된 본안소송( 이 사건에서는 대여금청구소송)을 제기하지 않으면 가압류가 취소될 수 있다< 구 민사소송법 706조(현행 민사집행법 288조)>.
반면에 채권자로서도 이에 대항할 비장의 카드는 있다. 위와 같은 가압류취소소송이 제기되면 법원으로서는 채권, 채무자 모두를 소환해서 심문하는 과정을 밟아 사실확인을 한 다음에 판단을 하게 되는데, 10년 내에 본안소송 제기가 없었다는 것은 역사적인 사실이라는 점에서 결국 가압류가 취소되는 판단은 면할 수가 없겠지만, 채권자로서는 가압류가 취소되는 결정을 받기에 앞서 재판 도중에 다시 가압류를 신청하는 등 시효를 중단시킬 수 있는 조치를 신속하게 해 두면 채권이 소멸되지 않을 수 있다. 가압류가 취소되어 시효가 완성되기 이전에 다시 시효를 연장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 사건에서는 가압류취소소송이 가장 유력한 방법일 수 있었다. 결국, 이렇게 제기된 가압류취소사건에서 가압류를 말소할 수 있었고, 채권자의 법적인 무지 덕분(?)에 가압류취소 이전에 다른 시효중단조치가 이루어지지 않아 채무자인 의뢰인으로서는 당면한 가압류해결은 물론 채무관계에서도 근본적으로 해방될 수 있었다.
법개정으로, 제소기간도과를 이유로 한 가압류취소기간이 예전의 10년에서 5년으로, 다시 3년으로 짧아지고 있다는 점에서, 비록 가압류가 되어있다고 하더라도 너무 장기간 채권행사를 방치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것과 함께 법적인 자문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상-
<참고법령 및 판례 >
■ 대법원 2006.7.4. 선고 2006다32781 판결 【대여금】
민법 제168조에서 가압류를 시효중단사유로 정하고 있는 것은 가압류에 의하여 채권자가 권리를 행사하였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인바, 가압류에 의한 집행보전의 효력이 존속하는 동안은 가압류채권자에 의한 권리행사가 계속되고 있다고 보아야 하므로 가압류에 의한 시효중단의 효력은 가압류의 집행보전의 효력이 존속하는 동안은 계속된다.
■ 대법원 2000. 4. 25. 선고 2000다11102 판결 【가압류결정취소】
[1] 민법 제168조에서 가압류를 시효중단사유로 정하고 있는 것은 가압류에 의하여 채권자가 권리를 행사하였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인데 가압류에 의한 집행보전의 효력이 존속하는 동안은 가압류채권자에 의한 권리행사가 계속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므로 가압류에 의한 시효중단의 효력은 가압류의 집행보전의 효력이 존속하는 동안은 계속된다.
[2] 민법 제168조에서 가압류와 재판상의 청구를 별도의 시효중단사유로 규정하고 있는데 비추어 보면, 가압류의 피보전채권에 관하여 본안의 승소판결이 확정되었다고 하더라도 가압류에 의한 시효중단의 효력이 이에 흡수되어 소멸된다고 할 수 없다.
■ 2005. 7. 28. 시행 민사집행법 제288조 (사정변경 등에 따른 가압류취소) ①채무자는 다음 각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사유가 있는 경우에는 가압류가 인가된 뒤에도 그 취소를 신청할 수 있다. 제3호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이해관계인도 신청할 수 있다.
1. 가압류이유가 소멸되거나 그 밖에 사정이 바뀐 때
2. 법원이 정한 담보를 제공한 때
3. 가압류가 집행된 뒤에 3년간 본안의 소를 제기하지 아니한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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