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움은 누구에게나 닥친다.

개인과 사회, 국가를 막론하고 힘들 때가 있다.

미묘한 것은 그런 위험과 위기가 주기적으로 온다는 점이다.

이 때, 큰 그림(Macrocosm)과 작은 그림(Microcosm)을 동시에 볼 수 있으면 좋겠다. 우주 속에서 자기를 보고, 자연의 섭리를 따르면 의외로 어려움은 쉽게 풀릴 수 있다.



지금의 경제위기를 살펴 보자. 몇 년이 지나면 나아질까? 내년이 최고의 정점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3~4년이 더 갈 거라는 예측도 있다. 정말 그럴까?



필자의 짧은 견해로는 10년~20년은 더 갈 것 같다.


자동차를 가질만한 집은 거의 다 갖고 있다. 시골이나 농촌에도 집집마다 승용차가 있고 경운기와 트랙터도 있다. 한글을 아는 사람은 휴대폰을 거의 다 갖고 있다. 집집마다 관공서마다 학교마다 개인용 컴퓨터도 거의 다 갖고 있다. 냉장고, 김치 냉장고, 세탁기, TV 등 새롭게 팔릴 제품은 이제 거의 없다. 낡아지면 바꾸고 고쳐 쓰면 된다. 유행 따라서 새 것, 좋은 것 사는 것도 이젠 별로 내세울만한 게 아님을 모두들 깨닫고 있다.



돈 많이 주고 좋은 집에 살아 봐야 별 거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30년 동안 급격하게 성장하는 과정에서 느끼고 배운 점들이 “경제위기”라는 모습으로 한꺼번에 나타나고 있다. 소비가 줄어 들 수 밖에 없다. 어쩌면 소비절약은 10년~30년 더 갈지도 모른다.






인간의 교만이 극에 달해 스스로 제어하지 못하고 스스로 통제하지 못하면 자연이 조정해 준다.

자연재해가 그렇고 질병이 그렇다.

유럽 전역에서 수 십만 명의 인명을 앗아 간 중세시대의 흑사병, 20세기의 에이즈, 21세기의 조류독감과 사스가 인간의 교활함을 막아 주고 있다. 쓰나미 같은 해일과 허리케인, 지진 등이 인간의 성장 속도와 인구 증가의 강약을 조절해 준다.



“네 몸에 병(病) 없기를 바라지 마라.

네 몸에 병이 없으면 교만해 지나니 병고(病苦)로써 양약을삼으라” 는
법어를 생각해 본다.





개인도 마찬가지다.



10년의 노력이 10년의 부귀영화를 가져 오고, 10년의 부귀가 10년의 불행을
초래하기도 한다.

죽기 전까지 병 없이 무탈하고 안전하게 살아 가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열심히 살던 사람이 뜻하지 않은 사고를 당하기도 하고, 열심히 돈 모은 사람이 한꺼번에 사기를 당하기도 한다. 예측 하지 못한 질병에 걸리기도 하고, 갑작스럽게 실직을 하기도 한다.



이와 같은 자연과 인생의 이치를 이해하면서도 자기만은 예외이기를 바라지만, 65억 인구가 한 개의 지구 위에 살면서 특별한 예외를 인정받기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어려울 때 필요한 게 공부이며 학습이다.



고대로부터의 역사를 읽으며 인간의 존재와 문명의 발달을 이해하고, 깊이 있는 철학자들의 애끓는 삶을 살펴 보며, 그들이 왜 그런 주제로 쓸데 없는 고민을 했는지 알게 된다. 아름다운 시구(詩句)와 수려한 문장(文章)에서 생각의 범위를 넓힐 수 있다.

기업 조직의 발전과 개인적 삶의 균형을 이루기 위해 필요한 신념(Belief)과 가치관, 세상을 보는 통찰력(Insight) 등을 올바르게 기를 수 있다면 지금의 위기를 수용하고 극복하는데 훨씬 부드러운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 지금 공부하고 학습해야 할 것은 위기 극복을 위한 처세나 특별한 기술이 아니라 보다 근본적인 이유와 합리적인 원리를 이해하는 내용이어야 하지 않겠는가 생각해 본다.



장기적인 역사의 흐름에서 세상을 보고, 인간이 왜 과학과 예술의 조화를 이루며 살았는가를 이해할 수 있다면 작은 아귀다툼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여겨진다.


쓰라린 고통을 잊기 위한 음악에의 전념, 헤어날 수 없는 가난을 물리치기 위한 그림 그리기와 글짓기, 고독의 정점을 넘어서기 위한 몸부림으로써 나타나는 존재의 의미 탐구 등이 인류 문명을 발전하게 하고, 어제보다 나은 삶을 찾는 징검다리가 되어 왔음을 이해한다면, 지금의 위기를 또 다른 문명의 발달과 역사의 장(章)을 열기 위한 전환점이 되리라 믿는다.



그렇다고 고통이 줄어 들거나 없어지지는 않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