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자존심 도요타자동차 본사는 도쿄가 아닌 아이치현 도요타시에 있다. 중부지역 관문 추부국제공항에서 대중교통으로 1시간 반이면 도요타 본사까지 갈 수 있다. 도요타시는 도요타 계열사와 협력업체들이 몰려 있는 ‘도요타 타운’이다.

1월 말 도요타자동차를 취재하기 위해 본사를 방문했다. 공식 홍보시설인 도요타회관에 들어서자 휴머노이드 로봇이 두 발로 서서 멋진 음악을 연주하고 있었다. 최첨단 기술력이 응집된 인간형 로봇으로 도요타의 향후 행보를 읽을 수 있는 제품이다.

도요타의 2012년형 신차들도 10여대 전시돼 있었다. 올해 국내외 시장에서 판매 촉진에 힘을 기울이는 하이브리드차다. 하이브리드차를 표시하는 도요타의 파란색 엠블렘이 전면부에 붙어 있는 게 눈길을 끌었다.

미야타 카오 홍보과장은 “하이브리드차 등 에코카의 품질 만큼은 경쟁사보다 훨씬 앞서 있다” 고 자신한 뒤 “새해 들어 주문이 넘쳐 차량을 인도받으려면 몇달을 기다려야 한다”고 밝혔다. 올해 일본 국내에서 판매되는 도요타 신차의 경우 3대 중 1대가 하이브리드차다.

일본에서 근무하던 2000년대 중반 도요타 본사를 방문한 지 5년 만에 찾은 도요타자동차의 사무동과 공장에는 잇따른 악재 탓인지 긴장감이 흘렀다. 회사의 신제품과 동향을 설명하는 사원들의 얼굴에선 비장함도 느껴졌다.

미국 등 글로벌 시장에서 도요타를 맹추격하는 현대자동차에 대한 관심도 매우 높았다. 후지이 히데키 커뮤니케이션팀 부장은 “현대차의 성능과 디자인이 3,4년 새 너무 좋아졌다”고 높이 평가했다.

세계 최대 일간지인 요미우리신문은 1월 말 올해 자동차시장을 전망한 흥미있는 기사를 냈다. 세계 자동차시장이 ‘빅5’로 재편돼 생존경쟁이 본격화할 것으로 예측했다. 지난해 글로벌 시장에서 659만대를 팔아 ‘5강’에 진입한 현대자동차를 일본 메이커들의 무서운 경쟁사로 지목했다.

하지만 일본 언론들은 도요타자동차의 글로벌 경쟁력에 대해 여전히 높이 신뢰를 보였다. 실제로 도요타는 대량리콜에 이은 동일본대지진 후유증에서 벗어나 작년 4분기 이후 정상을 되찾고 있다.

이와 관련, 한일기술협력재단의 이종윤 전무는 “도요타와 협력업체의 끈끈한 공생, 협조 관계가 동일본대지진 위기를 극복하고 정상화된 원동력이 됐다” 며 “자동차산업은 제조업 경쟁력의 총체인 만큼 세계 최강인 일본 중소업체 덕분에 도요타가 다시 경쟁력을 발휘할 것”으로 내다봤다.

실제로 도요타는 올 1월 세계 최대 자동차 시장인 미국에서 좋은 실적을 냈다. 도요타는 전년 동기보다 신차 판매 대수가 7.5% 증가해 3개월 연속 늘어났다. 이달 2일에는 13년 만에 중저가대의 소형 스포츠차 ‘86’을 개발, 스포츠카 매니아들을 파고들고 있다.

도요타는 이달 5일 올해 세계시장에서 작년보다 21% 많은 958만대를 판매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4년 만에 내준 업계 정상 자리를 탈환할 수 있을 것으로 자신했다. 하이브리드 등 에코카 판매 확대 등에 힘입어 대폭적인 증산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1937년 창립 이후 사상 최악의 악재를 벗어나 도요타자동차가 부활에 나설 수 있었던 것은 기초 기술을 중시하는 일본의 ‘모노즈쿠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품질 제1주의’를 내건 도요타가 경쟁력을 되찾을 것으로 일본인들은 자신하고 있다.

아사노 가즈야 교수(도호대 경영학과)는 “도요타는 그룹 각사와 하청기업들의 모임인 ‘協豊會’ 등에 의해 지탱되고 있다” 며 “본사와 협력업체간 계열화된 ‘계층적 하청 구조’가 도요타의 경쟁력 비결”이라고 분석했다.

자동차업계 전문기자로 손꼽히는 사이죠 쿠니오 니혼게이자이신문 편집위원도 최근 ‘강한 도요타는 부활할까’ 칼럼에서 도요타의 부활을 낙관했다. 사이죠 씨는 올해가 강한 도요타의 부활 ‘원년’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특히 하이브리드차 기술에서 앞서 부활 가능성을 높여주고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글로벌 경기침체 속에 미래를 낙관하는 것은 기술과 품질에 자심감 때문이다. 후지이 히데키 커뮤니케이션팀 부장은 “최근 2년간 회사 경영이 어려운 가운데도 R&D에 대한 투자를 꾸준히 했기 때문에 빠르게 회사가 정상화됐다”고 말했다. 또 “자동차업계에서 경쟁이 치열해 코스트 절감이 필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매력적이고 새로운 신차를 지속적으로 만들 수 있는 기술과 인력”이라고 강조했다. 협력업체인 뿌리산업의 경쟁력이 있어야 완성차 업체들이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의미로 이해됐다.

도요타시에서도 뿌리산업의 중요성을 느낄 수 있었다. 모토마치공장 등 도요타의 주요 생산기지가 자리잡고 있는 아이치현은 일본 제조업의 ‘메카’다. 도요타와 중소 하청업체들이 전형적인 집단 구조를 형성하고 있다.

도요타자동차 생산은 그룹 각사와 ‘協豊會’‘榮豊會 가맹기업’ 등 거대한 관련 하청업체들이 지탱하고 있다. 2004년 기준으로 가맹기업 수는 협풍회 203사, 영풍회 123사다. 협풍회는 유닛 부품회사(109)와 보디부품회사(94)의 2개 부회로, 영풍회는 보디설계부회(20), 유닛 설비부회(48), 설비부회(32), 물류부회(23) 등 4개 부회가 있다.

도요타그룹 기업은 도요타자동직기제작소, 아이치제강, 도요타공기, 도요타차체, 도요타통상, 아이싱정기, 덴소, 도요타방직,도와부동산, 도요타중앙연구소, 간토자동차공업, 도요타합성, 히노자동차공업, 다이하츠공업 등 14사로 구성돼 있다.

이들 기업들은 각각 ‘협력회 조직’을 갖고 있다. 도요타자동직기는 ‘豊水會(69)’, 아이치제강은 ‘豊鋼會(128)’, 도요타공기는 ‘豊工協力會(90)’, 도요타차체는 ‘協和會(106)’, 아이싱정기는 ‘아이싱협력회(86)’, 덴소는 ‘飛翔會(85)’, 간토자동차는 ‘NEXT(139)’, 도요타합성은 ‘協和會(72)’ 등을 보유하고 있다.

아이치현에는 도요타를 정점으로 1차, 2차, 3차, 4차 하청 등 수천개의 중소 제조업체들이 피라미드구조로 연결돼 있다. 한일산업기술협력재단의 장진욱 비즈니스협력센터장은 “도요타는 부품업체와 계열화해 계층적 하청구조를 형성하고 있다” 며 “모노즈쿠리로 무장한 이들 하청업체들이 도요타를 자동차 업계 1위로 만들었다”고 분석했다.

지난해 자동차업계 3위로 내려앉으면서 ‘도요타 신화’의 빛이 상당히 바랬다. 그렇지만 2년 전 미국에서 발생한 1200만 대의리콜사태와 지난해 3월 동일본대지진으로 공장 가동률이 50% 이하로 떨어지는 악재 속에서도 도요타의 기초 체력은 흔들리지 않았다. ‘가이제(개선)’으로 대표되는 품질관리와 협력 업체들과의 끈끈한 공생으로 가능했던 ‘품질 제1주의’거 경쟁력 원천이다.

한일기술협력재단의 이종윤 전무는 “창업주 이후 4대째 이어져 내려오는 ‘모노즈쿠리’ 정신이 도요타가 위기를 벗어나 정상화될 수 있는 원동력”이라고 평가했다. 도요타시(일본 아이치현)=최인한 뉴스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