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HL 마스코트에서 시작해 토론토 메이플리프스 비디오 코치에 선임
'최고 무기는 성실함' "NHL에서 일하게 될 줄은 짐작도 하지 못했다"
평창올림픽 대표팀 비디오 코치 샘 킴, 꿈의 NHL 입성했다
재미교포 샘 킴(35)은 뉴욕 아일랜더스의 마스코트로 북미아이스하키리그(NHL)에 첫발을 들여놨다.

두꺼운 옷과 탈을 쓰고 경기장 곳곳을 돌아다니며 재롱을 부리다 보면 얼음으로 가득한 링크에서도 온몸이 금세 땀으로 흠뻑 젖었다.

하지만 그는 최선을 다했다.

마스코트 일을 발판으로 뭘 어떻게 하겠다는 거창한 계획은 없었다.

그저 아이스하키가 좋아서 시작한 일이었고, 어떤 일이든 맡은 일은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믿었다.

샘 킴이 그의 능력으로 오를 수 있는 최고의 경지에 오른 데에는 성실함과 강한 의지가 최대 무기로 작용했다.

NHL 토론토 메이플리프스는 최근 새 비디오·코치 코디네이터로 샘 킴을 영입했다고 발표했다.

마스코트에서 시작해 NHL 최고 명문 팀 중 하나로 꼽히는 토론토의 새 비디오 코치로 발탁된 그의 드라마틱한 스토리는 캐나다 현지에서도 큰 주목을 받았다.

최근 연합뉴스와 전화 통화에 응한 샘 킴은 "운 좋게도 몇몇 분들의 소개로 토론토 구단에서 일할 수 있게 됐다"며 "가장 중요한 건 내가 지금까지 열심히 노력해왔다는 점일 것 같다.

내가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면 도움도 얻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평창올림픽 대표팀 비디오 코치 샘 킴, 꿈의 NHL 입성했다
미국 뉴욕에서 태어난 재미교포인 샘 킴은 일곱살 때 아이스하키와 사랑에 빠졌다.

고교까지 아이스하키 선수로 뛰었지만, 선수로서는 한계를 일찍 깨달았다.

그는 "나는 아이스하키를 정말로 좋아했고, 아이스하키와 관련된 일을 하고 싶었다"며 "하지만 NHL에서 일하게 될 줄은 몰랐고, 그게 가능하리라고는 짐작조차 하지 못했다"고 했다.

샘 킴은 보스턴대 경제학과에 입학한 뒤 대학 아이스하키팀에서 자원봉사로 비디오 분석 일을 도왔다.

2007년 NHL 뉴욕 아일랜더스 구단 인턴으로 입사한 뒤 다음 해부터 마스코트 탈을 썼다.

한국인 부모님은 당장 그만두라고 성화였지만 아이스하키가 좋아서 링크를 떠날 수 없었다.

샘 킴은 이후 학업과 코치 커리어를 병행했다.

2012년 가을에는 대학원에 진학해 매사추세츠주립대에서 스포츠 매니지먼트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2016년 4월에는 백지선 감독의 요청으로 한국 남자 아이스하키 대표팀의 비디오 코치로 합류했다.

석사 학위를 따기 위한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백 감독과 몇 년 전부터 연락을 주고받은 것이 대표팀 인연으로 이어졌다.

한국인 최초의 NHL 선수로 스탠리컵을 두 차례나 들어 올린 백 감독을 어릴 때부터 동경했던 그에게는 꿈만 같은 일이었다.

샘 킴은 "그(백 감독)와 함께 일한 것은 특권과도 같았다.

그가 매우 그립다"며 "대표팀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

다시 대표팀에서 일할 기회가 온다면 무척 흥분된 것 같다"고 말했다.

대표팀이 2018 평창동계올림픽에서 기대 이상으로 선전한 데에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비디오 분석을 통해 전력을 극대화한 샘 킴의 공로를 빼놓을 수 없다.

대표팀과 작별한 샘 킴은 AHL(NHL의 하부리그로 야구의 트리플 A 개념) 베이커스필드 콘도스(에드먼턴 오일러스 산하)의 비디오 코치로 두 시즌을 보냈다.

이곳에서도 능력을 인정받은 샘 킴은 보통 상위 리그 선수 출신에게 허락되는 NHL 비디오 코치직을 따냈다.

백 감독은 "샘 킴은 대표팀에서 나와 선수들이 원하는 게 뭔지 정확히 알고 훌륭하게 일을 해냈다"며 "특별한 재능을 가진 사람이다.

대표팀이 오늘날의 위치에 있도록 큰 도움을 줬다"고 칭찬했다.

그는 "샘 킴은 나를 포함해 많은 까다로운 사람들과 일해왔다.

내가 원했던 기대치를 그대로 해냈다"며 "워낙 똑똑한 사람이고, 자기 동기 부여가 확실한 사람이라 토론토 구단에서도 충분히 능력을 발휘할 것"이라고 자신했다.

평창올림픽 대표팀 비디오 코치 샘 킴, 꿈의 NHL 입성했다
샘 킴은 인터뷰 말미에, 단지 성실한 사람 그 이상으로 알려지고 싶다는 소망을 전했다.

그는 "내가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건 사람들이 나를 정말 좋은 사람으로 기억한다는 점"이라며 "일을 잘한다는 것은 일부분이다.

사람들이 내 이름을 들을 때마다 나를 좋은 사람으로 기억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