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던 스피스(미국)가 올해 미국프로골프(PGA)투어 첫 대회 현대토너먼트오브챔피언스를 제패하자 골프계는 ‘확실한 1인자’의 출현을 예감하며 환호했다. ‘과거의 황제’ 타이거 우즈(미국)의 몰락으로 냉담해진 팬들의 관심을 다시 달굴 것이란 기대감에서였다. 스피스가 이 대회에서 기록한 ‘사상 두 번째 30언더파 우승’은 PGA투어에 ‘신흥 절대강자’로 군림할 수 있을 것이란 주장의 새 근거로 떠올랐다. 그러나 대회가 거듭될수록 분위기가 사뭇 달라지고 있다.
흔들리는 빅3…춘추전국 PGA
◆시들해진 ‘빅3’…‘빅6’로 재편되나

올 시즌 6개 대회에 출전한 스피스는 현대토너먼트 우승을 제외하면 10위권에 든 게 두 번뿐이다. 나머지 대회에선 공동 21위, 공동 17위 등으로 ‘지존의 특별함’을 잃었다. 노던트러스트오픈에서는 예선 탈락해 체면을 구겼다. 날카롭던 퍼팅은 밋밋해졌고, 현대토너먼트 대회에서 위력을 발휘한 드라이빙 아이언은 잠잠했다. 세계랭킹 1위를 불안하게 지키는 사이 상금랭킹은 13위(152만달러)까지 밀려났다.

지난해 ‘호주 골프의 부활’을 알린 제이슨 데이(호주)는 더 실망스럽다. 올 들어 출전한 4개 대회에서 현대토너먼트만 상위권(공동 10위)에 들었을 뿐이다. 골프채널은 “지난겨울 가족과 긴 시간을 보내면서 예전의 열기가 식었다”고 평했다. 데이는 이번주 세계랭킹에서 로리 매킬로이(북아일랜드)에게 2위 자리를 내줬다.

흔들리는 빅3…춘추전국 PGA
매킬로이가 ‘빅3’ 중 그나마 나은 편이다. 하지만 우즈의 향수에 빠져 있는 골프팬들에게는 밋밋할 따름이다. 이번 시즌 5개 대회에 출전한 그는 지난주 끝난 월드골프챔피언십(WGC)시리즈 캐딜락챔피언십에서만 공동 3위로 이름값을 했다. 나머지 대회에선 한 번도 상위권에 들지 못했다. 퍼팅 부진을 만회하기 위해 ‘고육지책’으로 바꾼 그립(역그립)도 믿을 만큼 물이 오르진 못했다. 첫 승을 기대하게 했던 캐딜락챔피언십에서는 4타 차 선두를 지키지 못하고 애덤 스콧(호주)에게 역전패 해 뒷심 부족까지 드러냈다.

빅3가 주춤하는 사이 스콧, 버바 왓슨(미국), 리키 파울러(미국)가 오히려 빅3 자리를 집요하게 파고들고 있다. 짧은 퍼터로 갈아탄 스콧은 몸에 대는 그립 방식(앵커링)을 포기하고도 혼다클래식과 캐딜락챔피언십을 연속 제패해 올해 가장 먼저 2승 고지에 올랐다.

왓슨의 기세도 무섭다. 이번 시즌 6개 대회에 출전한 그는 지난해 히어로월드챌린지 대회에서 우승한 뒤 두 달 만에 노던트러스트오픈 우승, 캐딜락챔피언십 준우승으로 훨훨 날았다. 파울러의 상승세도 뚜렷하다. 올해 출전한 5개 대회에서 네 차례 상위권에 드는 등 호시탐탐 빅3 진입을 노리고 있다.

◆30~40대 노장들의 반격

‘절대강자’ 자리가 빈 상황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30~40대 노장들의 선전이다. 올 들어 열린 9개 대회 챔피언 가운데 20대는 스피스(22)와 마쓰야마 히데키(24) 두 명뿐이다. 파비안 고메스(38), 제이슨 더프너(39), 브랜트 스네데커(36), 본 테일러(40), 왓슨(38), 스콧(36)은 모두 30~40대다. 지난 시즌 47개 대회에서 24개 대회를 20대가 제패한 것과는 다른 추세다.

흔들리는 빅3…춘추전국 PGA
우승은 없지만 대회마다 우승 후보로 거론되는 필 미켈슨(46)은 특히 40대 이상 노장선수의 부활을 이끌고 있다. 그는 올해 대회에 여섯 번 출전해 세 차례 5위 안에 이름을 올렸다. 53세인 비제이 싱(피지)은 소니오픈 첫날 7언더파를 치며 선두에 올라 최고령 우승 기록(52세10개월8일) 경신에 도전하기도 했다. 지난 1월 파머스인슈어런스오픈에서 준우승한 최경주(46·SK텔레콤) 역시 지난달 노던트러스트오픈에서 공동 5위에 오르며 ‘부활’을 예고했다.

이관우 기자 leebro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