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 제33기 명인전 도전 5번기 제2국이 열린 한국기원 4층 특별대국실.오전 10시에 시작된 바둑이 끝난 오후 7시30분께 대국장에는 적막감이 흘렀다. 승자인 이창호 9단이나 패자인 안조영 7단이나 아무런 말이 없다. 뜨거운 열기로 귓볼까지 붉게 물들어버린 두 젊은이의 뒷모습은 이날 대국이 얼마나 치열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줬다. 아쉬움을 떨쳐버리기라도 하려는 듯 후배인 안 7단이 바둑판 한 쪽을 가리키며 침묵을 깼다. '아무래도 이 쪽을 가는 게 낫지 않았을까요.' '그 수는 이렇게 나오는 수가 있어 만만치 않아.'(이 9단) '이 장면에선 씌워서 공격하는 게 좋았나요.'(안 7단) '가능한 수이긴 하지만 쉽게 공격당할 말 같지는 않은데.'(이 9단) 두 고수의 선문답 같은 복기는 1시간 이상 이어졌다. 시간은 어느새 오후 8시30분을 훌쩍 넘기고 있었지만 두 사람은 배고픔도 잊은 채 묻고 답하고 또 다시 반문하며 바둑공부에 빠져들었다. 이날 대국에서 이 9단은 도전자 안 7단을 상대로 1백44수만에 백 불계승을 거두며 2연승, 명인 타이틀 5연패를 눈앞에 뒀다. 점심 전까지 두어진 수가 불과 37수밖에 되지 않았을 정도로 이날 두 사람은 초반부터 장고에 장고를 거듭하며 승부에 대한 강한 집착을 보였다. 초반은 흑을 든 안 7단이 두텁게 판을 짜 다소 유리하다는 게 검토실의 중론.그러나 점심시간 이후 이 9단은 우변 흑진에 침투,망외의 소득을 올리며 국면을 유리하게 반전시켰다. 포인트를 잃었다고 판단한 안 7단은 이후 손해를 감수하며 중앙 백대마를 맹공했지만 이 9단이 흔들림 없는 수읽기로 백대마를 손쉽게 수습하자 돌을 거두고 말았다. 안 7단은 본선에서 조훈현 이세돌 유창혁 등 '정상 3인방'을 연파하며 7연승의 호성적으로 도전권을 쟁취했으나 이번에도 이 9단의 높은 벽을 넘지 못했다. 안 7단은 특히 이날 패배로 이 9단과의 상대전적 10전 전패로 '이창호 콤플렉스'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3국은 오는 24일 같은 장소에서 속개된다. 김재창 기자 char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