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조선중앙텔레비전이 23일 월드컵 한국-이탈리아 16강전을 녹화중계한 것은 가히 충격적인 사건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전문가들과 탈북자들은 과거 한국이 진 경기에 한해서만 방영했던 북한TV가 한-이탈리아전을 중계하고 특히 "이번 승리로 (남한)국민들의 사기가 높아졌다"는 설명까지 곁들인 것은 매우 놀라운 일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이같이 이례적인 한-이탈리아전 녹화중계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분석이 나오고 있으나 무엇보다 한국팀의 예상치 못했던 승전보가 가장 큰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북한은 지난 1일부터 한국팀 경기를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월드컵 경기를 녹화중계해 오고 있으며 이는 전례로 보아 3,4위전과 결승전 방영으로까지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한국팀이 독일팀을 물리치고 결승에 나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어서 만약 한국팀 경기의 방영을 제외할 경우 월드컵의 하이라이트가 빠지게 돼 우스운 모양새가 된다. 요컨대 거의 모든 경기를 중계하는 과정에서 한국팀의 잇따른 승리에 떼밀려 16강전을 방영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분석이다. 또 현재 한국팀의 경기 소식이 해외출장을 다녀온 북한 사람들, '아리랑' 관람차 방북한 외국인, 해외동포, 한국인 등을 통해 북한 주민들 사이에 널리 알려져 있어 감추기보다는 과감히 중계했을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북한이 조별리그에서 한국-포르투갈전을 빠트린 채 한-이탈리아전만 방영한 것은 북한이 이미 지난 66년 잉글랜드 월드컵에서 이탈리아팀을 꺾은 만큼 주민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적을 것이라는 판단에 따른 것이라는 견해도 없지 않다. 적지 않은 전문가들은 월드컵 이후 남북관계를 진전시키기 위한 분위기 조성의 일환일 수도 있다는 분석을 하기도 한다. 조명철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북한의 한국팀 경기 중계가 향후 남북관계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라며 월드컵 이후 진전이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통일문제를 우리 민족끼리 한다는 슬로건을 내놓은 북한이 전세계를 놀랜 한국의 승리를 계속 외면한다는 것은 자기모순에 빠지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판단에 따라 방영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밖에 한국팀 경기를 TV로 중계함으로써 남한의 월드컵 개최에 북한이 동참하는 모습을 보여준 만큼 한국도 북한의 '아리랑' 관람에 적극 동참할 것을 간접적으로 촉구했을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북한이 월드컵 종료와 같은 시기에 막을 내리기로 했던 `아리랑' 공연을 보름정도 연장한 데다 최근 한국인의 '아리랑' 관람 유치에 안간힘을 쓰고 있는 점은 이같은 주장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북한이 한-이탈리아전을 방영한 이유가 어디에 있든지 간에 한국팀이 승리한 경기를 방영한 것은 분명 파격적인 사건이며 남북정상회담 이후 달라진 남북관계에 대한 북한의 긍정적인 태도로도 평가된다. (서울=연합뉴스) 최선영기자 chsy@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