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지나가듯 던지는 한마디로 상대방을 KO시킬수 있는 코멘트가 하나
있다.

지난주의 일이다.

2번홀에서 진행이 밀려 기다리고 있는데 내 퍼터를 본 친구가 말했다.

"이거 그립을 바꾼 모양인데 헤드가 아주 약간 닫혀져 있군"

옆에서 보던 다른 친구도 거든다.

"음 2도 정도 돌아가 있군. 그래서 첫홀 퍼트가 왼쪽으로 빠졌구나"

장난은 계속된다.

나머지 한명도 빠질리가 없다.

"괜찮은데 뭘 그래. 첫홀 퍼팅은 스트로크가 잘못된거야"

이 상황에서 자신의 퍼터를 살펴보지 않는 골퍼는 없다.

살펴보니 별 문제 없었다.

평소 퍼터만큼은 두툼한 그립을 좋아하기 때문에 그립을 교체한 것인데
교체직후에도 여러번 확인한 것이니 크게 어긋날리는 만무했다.

그러나 인간의 마음이 어디 그런가.

더욱이 바로 그 2번홀에서 1.5m 거리의 훅라인 퍼팅이 홀을 스치자 나는
"오늘 게임이 무척 어려워질 것임"을 직감했다.

결국 그후에도 4홀정도 더 퍼팅을 헤맨끝에 평정을 되찾았다.

쇼트퍼팅은 느낌의 영역이다.

평소 "말의 영향을 별로 안받는다"고 생각해 왔지만 그날 만큼은 내가
보기좋게 당한 꼴.

그립의 정상 여부에 관계없이 나는 "퍼터에 관한 코멘트 만큼은 그
영향이 실로 지대하다"고 인정할수 밖에 없었다.

내가 감각을 되찾은 것은 망각 때문이다.

홀이 거듭되면서 플레이 자체에 집중하다보니 2번홀 해프닝을 잊은
것이다.

어쨋든 "엷은 귀"는 언제나 문제이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6월 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