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즈베키스탄 수도 타슈켄트에서 고속열차를 타고 4시간 넘게 달려야 닿을 수 있는 부하라. 실크로드를 따라 먼 길을 이동한 상인들이 여독을 풀던 고도로 우즈베키스탄의 경주로 불린다. 25일 오후 4시(현지시간) 이곳에서 부하라힘찬병원 개원식이 열렸다. 이수찬 힘찬병원 대표원장은 “이븐시나의 고향인 부하라가 중앙아시아 의료허브로 발돋움할 수 있도록 다 같이 힘을 모아 노력하겠다”며 “라흐맛(감사합니다)”이라고 인사를 건넸다. 이븐시나는 ‘학문의 왕’으로 불린 중세 이슬람 철학자이자 의사다. 이날 개원식에는 알리셰르 사드마노프 우즈베키스탄 보건부 장관, 바르노예프우크탐 부하라 도지사 등 200여 명이 참석해 첫 한국 병원의 개원을 축하했다.
< 우즈베크 힘찬병원 개원식 > 이수찬 힘찬병원 대표원장, 박혜영 상원의료재단 이사장, 바르노예프우크탐 우즈베키스탄 부하라주지사 겸 상원의원(왼쪽부터)이 25일 우즈베키스탄 부하라힘찬병원 개원식에서 기념 테이프를 자르고 있다.  /힘찬병원 제공
< 우즈베크 힘찬병원 개원식 > 이수찬 힘찬병원 대표원장, 박혜영 상원의료재단 이사장, 바르노예프우크탐 우즈베키스탄 부하라주지사 겸 상원의원(왼쪽부터)이 25일 우즈베키스탄 부하라힘찬병원 개원식에서 기념 테이프를 자르고 있다. /힘찬병원 제공
중앙아시아에 부는 의료 한류

우즈베키스탄 등 중앙아시아 지역에 의료 한류 바람이 불고 있다. 시작은 의료봉사다. 서울아산병원, 삼성서울병원, 서울대병원 등 국내 병원은 10여 년 전부터 낙후된 중앙아시아 진료 수준을 높이기 위해 현지 환자를 무료로 치료하며 민간 교류의 토대를 닦았다. 한국과 우즈베키스탄 정부는 이를 계기로 보건의료인 면허 인정 협약을 맺었다. 2015년부터 한국 의사 면허만 있으면 우즈베키스탄에서 별다른 추가 절차 없이 환자를 진료할 수 있다. 이후 민간 교류는 정부 간 보건의료 협력으로 확대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올해 4월 투르크메니스탄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등 중앙아시아 3개국을 순방하며 정부의 협력 의지를 보여줬다. 부하라힘찬병원 개원은 보건의료 분야에서 맺은 첫 결실이다. 우즈베키스탄 정부가 땅과 건물을 무상으로 제공했다. 힘찬병원은 건물 리모델링, 장비 구입 등을 위해 100억원을 투자했다. 이 대표원장은 “수도인 타슈켄트와 지방도시인 부하라를 병원 개설 후보지로 두고 고민한 끝에 부하라를 선택했다”며 “타슈켄트보다 의료 서비스 수준이 다소 낮기 때문에 한국 의료기관이 더 도울 일이 많을 것”이라고 했다.

이곳에는 한국 의사 2명과 간호사 2명, 현지 의료진 176명이 상주하며 환자를 돌볼 계획이다. 한국에 있는 의사와 연결해 협진 등을 할 수 있는 화상진료 시스템도 마련했다. 이날 개원식에서도 한국 의사와 현지 의사를 잇는 화상진료 시연 행사가 열렸다.
병원 세우고 의사·간호사 교육까지…중앙亞 '의료한류' 바람분다
한국과 똑같이 의사 교육도

우즈베키스탄에는 한국과 똑같은 의사 교육을 받는 의대도 들어섰다. 가천대 의대는 우즈베키스탄 첫 사립 의과대학인 타슈켄트 아크파메드라인병원 부속 대학의 교육 과정을 맡아 운영하고 있다. 6년간 200만달러를 받는다. 한국 의대 교육시스템이 수출된 첫 사례다. 올해 9월 첫 신입생을 뽑았다. 이곳의 총 책임자인 정명희 가천대 의대 뇌과학연구원장은 “교육, 커리큘럼 등을 모두 조율하고 현지 의대생 103명 정도를 뽑아 첫 학기 교육을 했다”며 “간호사를 양성하는 간호대학과 방사선사 등을 양성하는 보건과학대를 개설하는 방안도 협의 중”이라고 했다.

우즈베키스탄뿐만이 아니다. 내년부터 전국민 건강보험제도를 시행하는 카자흐스탄은 정보통신 기반 의료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한국 모델을 벤치마킹하고 있다. 경북대병원과 아스펜디야로프 국립의대에 재활의학과를 함께 설립하는 방안도 협의하고 있다. 그동안 한국과 보건의료 협력이 없던 투르크메니스탄도 경북대병원, 부평힘찬병원, 서울의료원 등과 의료분야 협력을 늘려가고 있다.

병원 간 교류가 늘면서 국내 제약·의료기기의 수출 성과도 가시화되고 있다. 미래컴퍼니는 카자흐스탄 현지 유통업체와 손을 잡고 국산 수술 로봇인 로보아이의 수출을 확대하고 있다. 의료계 관계자는 “봉사활동 등을 통해 한국 의료기관의 의료 수준에 대한 입소문이 났기 때문에 한국 의료를 배우고자 하는 의지가 크다”고 했다.

부하라=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