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조영남 기자 jop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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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들어 자본거래가 국제화되고 개인과 기업의 금융자산이 늘면서 증권투자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그 거래 규모도 커졌다. 자본시장이 발전하면서 투자전문가에 의한 투자자문(投資諮問) 수요도 증가했다. 투자자문은 금융투자상품에 대한 투자 권유와 기능적으로 유사해 투자자가 금융상품을 합리적으로 선택하는 데 직접적으로 도움을 준다. 양질의 투자자문인력은 우리 자본시장의 경쟁력을 높일 수도 있다. 이에 증권회사가 고객유치 차원에서 부수적인 업무로 행해 온 투자자문업무를 새로운 영업으로 유형화해 제도적으로 수용할 필요성이 대두됐다. 그래서 1987년 당시 구(舊) 증권거래법에 투자자문업에 관한 규정을 신설했다. 현행 자본시장법도 구 증권거래법 입장을 계승, 여전히 투자자문업을 금융투자업의 하나로 취급하고 있다.

[대한민국을 흔든 판결들] "유사투자자문, 자본시장법 대상 아냐"… 고객 보호장치 필요
1980년대에 투자자문업이 법률에 수용된 이후에 세칭 ‘부티크’라고 불리는 사설투자자문업자가 난립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투자자문업 시장으로의 진입요건이 너무 높다 보니 정부는 사설투자자문업자를 규제하기보다는 법률상 일정 요건을 갖춰 금융감독당국에 신고하도록 해 ‘유사투자자문업자’로 활동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두는 이른바 양성화 정책을 수립했고, 1997년 구 증권거래법에 투자자문업자와는 별도로 유사투자자문업을 새로운 제도로 도입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유사투자자문업은 자본시장법상 금융투자업에 해당하지 않아 이에 대한 규제체계가 마련되지 않은 상황이다. 이에 유사투자자문업자의 불건전 영업행위가 사회적 문제로 대두돼 왔고, 투자자 피해도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대법원이 투자자문업자와는 규제 영역이 다른 유사투자자문업자를 어떤 경우에도 동일하게 취급할 수 없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밝힌 최초의 판결(2012다46644)이 2014년 대법원에서 나왔다.

“투자정보 사이트에 책임 있다” 주장

이 판결의 대상이 된 사실관계를 들여다보자. A주식회사는 자본시장법에 의해 유사투자자문업 신고를 마친 회사로 고객들에게 수수료를 받고 인터넷 사이트에서 투자 정보를 제공하는 영업을 했다. B는 위 사이트에서 투자전문가로 활동하면서 투자클럽에 가입한 회원을 상대로 금융투자상품 정보를 제공하고 A사로부터 회원들이 지급한 가입비 중 50%를 배분받았다.

[대한민국을 흔든 판결들] "유사투자자문, 자본시장법 대상 아냐"… 고객 보호장치 필요
일반인 C 등은 위 사이트 이용약관에 동의하고 가입함으로써 A사와 이용계약을 체결했고, 위 사이트에서 B가 운영하는 투자클럽의 유료회원이 돼 월 80만원 상당의 가입비를 지급하고 B로부터 투자 정보를 제공받았다. C 등은 B가 제공한 정보에 따라 2010년 9월부터 주식워런트증권(ELW) 및 주식, 기타 파생상품에 투자했다가 투자액 전액을 날렸다.

이에 C 등은 A사가 유사투자자문업 신고를 한 투자자문업자로서 투자자문계약을 체결했음에도 A사의 직원인 B가 C 등에게 불확실한 사항에 대해 단정적 판단을 제공해 위험성이 높은 ELW에 투자하도록 적극 권유하는 등 자본시장법상 투자자문업자 의무를 위반해 C 등에게 손해를 입게 했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C 등이 지급한 가입비를 배분하는 관계있는 A회사와 B가 연대해 투자자문계약상의 의무 위반 내지 자본시장법상 의무 위반에 따른 채무불이행 혹은 불법행위에 따른 손해배상책임을 부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투자자문업자는 구별돼야

이에 대해 서울고등법원은 A사와 B에게는 자본시장법이 투자자문업자에게 부과한 의무가 인정되지 않고, 그와 같은 내용의 의무를 인정할 만한 당사자 사이의 합의도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금융투자업자를 대상으로 하는 자본시장법상의 적합성 원칙(고객파악제도를 활용해 파악된 자료를 기초로 그에 적절한 상품을 권유해야 하는 것) 및 설명의무는 자본시장법상 ‘투자권유’를 할 수 없는 유사투자자문업자나 미등록 투자자문업자에게는 적용된다고 볼 수 없다고 봤다. 더 나아가 불특정 다수인을 상대로 투자조언을 하는 유사투자자문업자에게는 적합성 원칙과 설명의무에 관한 규정이 유추 적용된다거나, 같은 내용의 신의칙(信義則)상 의무가 인정된다고 할 수 없다고 판시하면서 상고를 기각했다. 설령 유사투자자문계약을 맺은 유사투자자문업자가 실제로 투자조언까지 했다고 하더라도 투자자문업자에게 부과되는 각종 의무 규정은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본시장법에 따르면 유사투자자문업자란 불특정 다수인을 대상으로 발행 또는 송신되고, 불특정 다수인이 수시로 구입 또는 수신할 수 있는 간행물·전자우편·출판물·통신물 또는 방송 등을 통해 투자자문업자 외의 자가 일정한 대가를 받고 금융투자상품에 대한 투자판단 또는 금융투자상품의 가치에 관해 투자조언을 하는 자를 말한다. 투자자 보호 차원에서 투자자문업의 등록에는 법정자기자본과 전문인력 확보 등의 요건을 갖춰야 하는 반면, 유사투자자문업자로 신고하는 경우 자본금과 전문인력 확보 등에 관련된 특별한 규제가 없다. 설령 유사투자자문업자로 신고했어도 이는 단순신고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그 자체로 금융위원회가 유사투자자문업자의 건전성이나 전문성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다만 금융위에 신고하지 않고 유사투자자문업을 영위한 자에 대해서는 30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할 뿐이다.

만약 불특정 다수인을 상대로 한 경우가 아니라 1 대 1 상담이나 조언이 행해지는 한 이는 투자자문업에 해당한다. 투자자문업자의 경우 고객이 주도적으로 조언을 요청하면 이에 수동적으로 응하는 방식으로 자문이 이뤄지므로 그와 고객 사이에 상호작용이 존재하지만, 유사투자자문업자의 경우 그렇지 않다. 전화 또는 인터넷(채팅 또는 상담게시판) 등을 이용하는 방법으로 고객과의 개별적인 접촉을 통해 투자상담 영업을 하고자 하면 이는 투자자문업에 해당하므로 금융투자업자로 등록해야 한다.

유사투자자문업은 ‘단순 신고’ 가능

자본시장법에는 투자자문업자에게 적용 또는 부과되는 선관의무(선량한 관리자의 주의 의무) 및 충실의무, 적합성의 원칙 및 설명의무 등을 유사투자자문업자에게도 적용한다는 규정을 찾을 수 없다. 이처럼 자본시장법은 근본적으로 유사투자자문업을 금융투자업으로 보지 않기 때문에 투자자문업자에 비해 상대적으로 느슨한 규제를 할 뿐이다. 그러나 유사투자자문업을 영위하기 위해 금융위에 유사투자자문업자로 신고를 한 경우 제도권 금융투자업자 또는 관계당국의 규제를 받는 것으로 오인하는 촌극이 빚어지기도 한다.

우리 증권시장에는 여전히 개인 투자가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고, 유사투자자문업자 고객은 대체로 스스로 방위할 능력이 떨어지는 것이 현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설령 고객이 유사투자자문업의 기능과 한계를 직시하지 못하고 유사투자자문업자를 투자자문업자로 혼동하더라도 그 고객은 자본시장법에 의한 보호를 받지 못한다는 사실이 이 판결을 통해 정립됐다. 유사투자자문업자 고객은 애초부터 자본시장법의 보호대상에서 배제돼 있음을 확인한 것이다.

이로 인해 현행 자본시장법이 유사투자자문업자 고객을 보호할 특단의 수단을 마련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무책임한 법으로 오해될 여지가 있다. 이 때문에 유사투자자문업을 실정법으로 수용한 것이 원죄(原罪)이므로 실정법과 현실 사이의 괴리를 메우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는 비판이 제기될 수 있는 것이다.

● 유사투자자문 손실 땐 민법상 손해배상 청구뿐

유사투자자문업자가 고객의 투자판단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요한 사항에 관해 허위의 정보를 제공하거나, 아무런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근거가 없는 정보를 객관적인 근거가 있는 확실한 정보인 것처럼 제공해 고객이 이 정보를 진실한 것으로 믿고 금융투자상품에 관한 거래를 해 손해를 입은 경우 구제받을 수 있을까. 이런 경우 유사투자자문업자에 대해 민법상의 불법행위 책임을 추궁하는 길은 열려 있다(대법원 2015년 6월24일 선고 2013다13849 판결).

그러나 민법상 불법행위로 인해 손해배상책임을 추궁하는 것은 자본시장법에 의해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것보다 요건이 더 엄격하다는 점에서 피해자가 제대로 배상을 받지 못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