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조영남 기자 jop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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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범죄가 유죄라는 것이 밝혀졌더라도 법원이 유죄판결 및 형량 선고를 내릴 수 없는 경우가 있다. △범죄자가 사망한 경우 △친고죄에서 피해자의 고소가 없는 경우 △대통령의 사면이 있는 경우 △국회에서 적용 법률이 폐지된 경우 △공소시효가 만료된 경우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 경우 법원은 유죄의 실체 판결이 아니라 공소기각(소송 요건을 갖추지 못했거나 공소권이 존재하지 않는 경우 법원이 공소를 무효로 해 소송을 종결), 면소(실체적 소송조건이 결여된 경우 심리를 하지 않고 소송을 종결) 등의 형식재판을 할 수 있을 뿐이다.

손동권 건국대 로스쿨 교수
손동권 건국대 로스쿨 교수
한국 최고 권력자인 대통령의 범죄와 관련해서도 소송장애사유가 문제됐던 사례가 있다. 1979년 12월12일과 1980년 5월18일을 전후해 발생한 헌정질서파괴범죄를 둘러싼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 및 당시 군부세력 공범에 대한 형사기소사건이다.

당시 두 전직 대통령에게 적시된 공소사실은 법정형이 사형에 해당하는 군형법상 군사반란죄, 일반형법상 내란(살인)죄 등이었는데, 이 사건에서 소송장애사유로서 문제된 것이 소위 ‘공소시효의 완성’ 여부였다. 당시 형사소송법 규정에 따르면 공소시효로서 가장 긴 것, 즉 법정형이 사형에 해당하는 범죄의 공소시효기간은 15년에 불과했다. 따라서 검사가 해당 범죄가 종료한 때부터 15년이 경과되기 이전에 공소를 제기했어야 법원이 유죄판결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내란죄에 대한 공소시효 완성?

그런데 당시 공소범죄는 1979년 말과 1980년 중반에 이뤄졌고, 검찰이 수사해 최종 기소한 시점은 김영삼 대통령 재직 시절인 1996년 1월이었기 때문에 달력상으로는 15년이 약간 넘었다. 따라서 다른 공범 피고인들은 그사이 15년 공소시효가 완성된 것으로 주장할 수 있었다. 다만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의 경우는 대통령 재직기간 동안 내란죄와 외환죄를 제외하고는 소추할 수 없다는 헌법조문(제84조)에 근거해 내란죄가 아닌 다른 공소범죄의 공소시효는 그들의 재직기간 동안(전 전 대통령은 1980년 9월1일부터 1988년 2월24일까지 7년5개월24일간, 노 전 대통령은 1988년 2월25일부터 1993년 2월24일까지 5년간 각 대통령직에 있었음) 정지돼 공소시효가 완성되지 않았다. 또 내란(살인)죄 공소사실에 대해서는 대통령 재직 중에도 법률상 소추가 가능했기 때문에 공소시효가 계속 진행돼 공소시효 완성에 따른 면소판결의 사유가 된다는 주장이 역시 가능했던 것이다.

이런 공소시효완성 여부의 문제점 때문에 그 당시 국회는 12·12 및 5·18사건 관련 범죄에 대해 국가의 소추권 행사에 장애사유가 존재한 1993년 2월24일까지 공소시효의 진행을 정지하는 내용의 ‘5·18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을 제정·시행했다. 그리고 재판 과정에서 헌법재판소는 공소시효와 관련해 피고인에게 불리하게 변경된 이 법률에 대해 합헌결정을 내렸으며(헌법재판소 1996년 2월16일 선고, 96헌가2, 96헌마7,13 결정), 대법원은 이 헌법재판소의 합헌결정을 근거로 이 법률을 소급적용해 피고인들에게 유죄취지의 판결을 내렸다(대법원 1997년 4월17일 선고, 96도3376 전원합의체 판결).

특별법 ‘시효중지’ 소급적용

[대한민국을 흔든 판결들] "'5·18 공소시효 정지' 소급 적용 가능"…법에 명문화 땐 '적법'
특히 두 판례는 구(舊)법에 따르면 공소시효가 완성된 상태라 하더라도 새로 제정 시행된 법률을 소급적용하는 것, 즉 ‘진정(眞正)소급효’까지 허용할 수 있는 것으로 판시했다. 그런데 법치국가의 법리상 행위 시에는 없던 신법을 만들고 이를 소급적용해 피고인을 형사 처벌하거나, 형을 중(重)하게 변경한 신법을 소급적용해 구법보다 중하게 처벌할 수는 없다. 이것은 범죄와 형벌에 관한 형사실체법의 대원칙에 해당한다.

그러나 공소시효와 같은 절차법적 사항에도 이 원칙이 그대로 적용될 것인가에 대해서는 학자 사이에 의견 대립이 있다. 다수설은 신법 시행의 시기가 구법에 따른 공소시효가 완성되지 않은 때라면 소급적용이 허용되지만(즉 부진정(不眞正)소급효는 인정), 구법에 따른 공소시효가 이미 완성된 시점에서 제정 시행되는 신법의 소급효까지는 허용될 수 없다는 것이다. 위 두 판례는 이런 다수설의 태도와는 달리 진정소급효까지 인정함으로써 그 당시 국가 사회적으로 논란이 많았던 과거청산 문제를 일거에 해결한 것이다.

소급적용에 대한 견해는 대립

그런데 이 판례 사건이 있은 이후에도 피고인에게 불리한 방향으로의 공소시효에 관한 입법과 소급적용의 허용 여부가 현재진행형으로서 문제되고 있다. △형사소송법에서는 법정형이 사형에 해당하는 중대범죄에 대해 종전의 공소시효기간 15년을 25년으로 늘리는 규정 △더 나아가 살인 범죄로 사형에 해당하는 범죄에 대해서는 공소시효를 아예 폐지하는 규정(동법 제249조, 제253조의2)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에서는 공소시효의 기산시점을 피해 미성년자가 성년에 달한 날로 늦추는 규정 △DNA 증거와 같은 입증 증거가 확실한 경우 공소시효를 10년 연장하는 규정 △특정한 중대 성폭행범죄에 대해 공소시효를 아예 폐지하는 규정(동법 제21조) 등의 입법이 각각 있었다. 내용상 피고인에게 불리한 여기의 신법 규정에 대해서도 소급적용 여부가 형사실무상 문제되지 않을 수 없다.

이 문제에 대해 판례는 소급적용 여부에 관한 명시적인 경과규정(부칙)이 있는 경우에는 그에 따라 심판하면 일단 적법한 것으로 판시했다. 그런데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은 13세 미만자 내지 장애인에 대한 성폭행범죄의 공소시효폐지에 관한 신법 규정의 소급적용 여부에 관해서는 경과규정을 두지 않았다. 이로 인해 구법에 의하면 이미 공소시효가 완성된 장애인 준강간 범죄자에 대해 신법(규정)의 소급적용이 허용될 수 있는지가 재판상 문제점으로 떠올랐다.

판례는 이 사례에서는 신법의 진정소급효를 부정하고 피고인에게 유리한 구법에 따라 면소판결을 해야 한다는 취지로 판시했다. “공소시효를 정지·연장·배제하는 내용의 특례조항을 신설하면서 소급적용에 관한 명시적인 경과규정을 두지 아니한 경우에 그 조항을 소급해 적용할 수 있다고 볼 것인지에 관해서는 적법절차원칙과 소급금지원칙을 천명한 헌법 제12조 제1항과 제13조 제1항의 정신을 바탕으로 하여 법적 안정성과 신뢰보호원칙을 포함한 법치주의 이념을 훼손하지 않도록 신중히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 동 판례의 판시 요지다(대법원 2015년 5월28일 선고 2015도1362, 2015전도19 판결).

범죄자는 끝까지 추적한다

결론적으로 한국 판례는 적어도 공소시효 신법의 진정소급효를 인정하는 명시적인 국회 입법을 통해서는 아무리 오래된 범행이라도 그 범죄자를 끝까지 추적해 형사 처벌할 수 있다는 일관된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이런 판례 태도는 국민으로부터 지탄받는 범죄를 저지르는 최고 권력자, 실세 정치인 및 사회지도층은 물론이고 그들에게 기생하거나 사회적 약자를 상대로 중한 범죄를 감행하는 일반인에게도 특별한 경각심을 갖게 할 것이다. 한국 사회를 뒤흔드는 중대 범죄자에 대해서는 그 신분 여하를 불문하고 입법주권을 가진 국민이 결코 잊거나 묵과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 범죄 후 일정기간 지나면 공소제기 못해
'공소시효' 란


공소시효(公訴時效)는 범죄행위가 종료된 후 일정 기간이 지나면 그 범죄행위에 대해 국가의 공소 제기를 허용하지 않는 제도다. 공소시효는 범죄행위 뒤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생겨난 사실관계를 존중해 법적 안정성을 도모해야 하고 증거도 사라져 유죄를 입증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 둔 제도다.

공소시효는 범죄행위가 종료된 때부터 시작된다(미성년자에 대한 성폭력범죄의 경우 피해자가 성년이 된 날부터 진행됨).

형사소송법 249조(공소시효의 기간)에 따르면 현행 공소시효는 ①사형에 해당하는 범죄는 25년 ②무기징역 또는 무기금고에 해당하는 범죄는 15년 ③장기 10년 이상의 징역 또는 금고에 해당하는 범죄는 10년 ④장기 10년 미만의 징역 또는 금고에 해당하는 범죄는 7년 ⑤장기 5년 미만의 징역 또는 금고, 장기 10년 이상의 자격정지 또는 벌금에 해당하는 범죄는 5년 ⑥장기 5년 이상의 자격정지에 해당하는 범죄는 3년 ⑦장기 5년 미만의 자격정지, 구류, 과료 또는 몰수에 해당하는 범죄는 1년이다.

또 공소가 제기된 범죄는 판결의 확정이 없이 공소를 제기한 때로부터 25년을 경과하면 공소시효가 완성된 것으로 간주한다.

손동권 < 건국대 로스쿨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