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피해자 묘소에서 '사죄'하고 '양심 고백'

"제가 진범입니다.당시 사건 생각이 마음속을 떠나지 않았고 죄책감에 늘 괴로웠습니다."

17년 만에 '삼례 나라슈퍼 3인조 강도치사사건'의 재심이 확정된 가운데 진범이라고 고백한 이모(48·경남)씨의 발언이 새삼 주목받고 있다.

이씨는 지난 4월 전주지법에서 열린 재심 청구사건의 증인으로 출석해 자신이 진범이라고 양심 고백을 했다.

그는 "1999년 삼례 나라 슈퍼에서 발생한 강도치사사건의 진범이 맞느냐"는 변호사의 질문에 "맞다"고 짧게 말했다.

이씨는 당시 상황을 담담히 술회했다.

그는 "익산에 사는 선배가 놀러 오라고 해서 부산에 사는 나와 지인 2명 등 3명이 익산에 왔다가 이곳에서 가까운 삼례에서 범행했다"고 말했다.

이씨는 그러면서 범행 당시 눈이 내리고 도로 결빙 상황과 노루발 못뽑이(일명 빠루) 등 범행 도구, 슈퍼 대문이 열린 점, 슈퍼 내부 구조, 범행 시 청테이프 사용, 피해자의 입에 물을 부은 상황, 인공호흡을 했던 사실을 정확히 설명했다.

그는 "대문을 열고 들어가 오른쪽 미닫이문을 여니 방에서 부부가 자고 있었다.

둔기로 부부를 제압한 뒤 허리띠와 청테이프로 묶었다"라며 "이후 왼쪽에 있는 할머니 방에 들어갔는데 할머니가 고함을 쳐 테이프로 입을 막았다"고 말했다.

이 부부는 피해자의 친척이었다.

그는 피해자인 유모 할머니의 사망 과정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이씨는 "할머니가 갑자기 움직임이 없었다.

테이프를 뜯고 찬물을 떠다가 할머니에게 부었다.

흉부 압박을 하고 인공호흡도 했다.

할머니는 구토했고 이후 '할머니가 돌아가신 것 같으니 빨리 도망가자'고 했다.

빠루 등 공구는 달아나면서 버렸다"고 진술했다.

피해자가 입은 옷과 덮은 이불에서 흘린 물이 발견됐고 내부 구조를 정확히 아는 점은 진범이 아니라면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다.

이씨는 범행 직후 부산 자택으로 달아났고 '삼례 3인조'가 처벌받은 사실은 나중에 알았다고 했다.

그는 "전주지검에서 수사를 받을 때 사실대로 이야기했는데 수사관은 '네가 범행은 했어도 범행 장소가 다른 곳일 수 있다'는 등의 이유로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라며 "그때는 나이도 어리고 죗값을 받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에 그냥 넘어갔다.

당시 제대로 처벌받았다면 이런 마음의 짐은 없었을 것"이라고 진술했다.

"진범임을 자백하게 된 이유가 뭐냐"는 판사의 질문에 이씨는 "우리가 한 게 맞으니까 한 거다.

꿈속에서도 늘 괴로웠다"고 답했다.

"17년 전 일을 어떻게 상세히 기억하느냐"는 질문에는 "머리에서 늘 떠나지 않았다"고 고백했다.

뒤늦은 고백에 대해선 "공소시효가 지났기 때문이 아니라 사건 이후 항상 교도소에서 출소하지 못하는 악몽을 꿨고 이렇게 이야기를 하니 마음이 편하다"고 말했다.

이씨와 함께 '부산 3인조'로 지목된 배모 씨는 지난해 4월 숨졌고 조모 씨는 사건에 대해 함구하고 있다.

이씨는 재판에 앞서 지난 1월 피해자의 충남 부여군 묘소를 찾아 무릎을 꿇고 사죄했다.

'삼례 3인조'에게도 진심을 담아 용서를 구했다.

앞서 전주지법 제1형사부는 지난 8일 '삼례 3인조'의 재심 청구를 받아들이고 재심 개시를 결정했다.

재판부는 사건 발생 후 '삼례 3인조'가 처벌을 받았지만 올해 초 이씨가 자신이 진범이라고 양심선언을 한 데다, 유족이 촬영한 경찰 현장검증 영상 등을 토대로 무죄를 인정할만한 새롭고 명백한 증거가 있다고 판단했다.

'삼례 3인조'는 1999년 2월 6일 오전 4시께 전북 완주군 삼례읍 나라슈퍼에 침입해 유모(당시 76) 할머니의 입을 테이프로 막아 숨지게 한 혐의로 각 징역 3∼6년을 선고받고 복역을 마쳤다.

이들은 지난해 3월 "경찰의 강압수사 때문에 허위자백을 했다"라며 전주지법에 재심을 청구했다.

검찰은 법원의 재심 개시 결정에 대한 항고를 포기했다.

(전주연합뉴스) 김동철 기자 sollens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