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처음 등장한 기부 관련 법안은 역설적으로 ‘기부금품 모집 금지법’이다. 1951년 11월 제정된 이 법은 기부를 활성화하기보다는 전쟁 직후 구호단체가 난립하는 것을 막기 위해 허가받지 않은 기부금품 모집을 금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이 법은 1995년 12월 대체법인 ‘기부금품 모집 규제법’으로 바뀌었고 다시 2007년 현재의 ‘기부금품의 모집 및 사용에 관한 법률’로 대체됐다. 기부금품의 모집절차와 사용방법을 규정해 성숙한 기부문화를 조성하겠다는 취지다.
그래픽=신택수 기자 shinjar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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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모으기’ 이후 개인 기부 급증

[기부의 경제학] 훈훈한 '나눔 바이러스'…30대 10명 중 3명, 매달 소액 기부
기부에 관한 법률 이름의 변화에서 볼 수 있듯이 한국에서 기부 행위가 주목받기 시작한 지는 오래되지 않았다. 1987년 민주화운동 이후 급증한 시민단체와 공익법인이 기부금 인식 변화에 영향을 줬다는 지적이 많다. 사회운동 차원에서 기부에 관심을 두게 된 사람이 늘어났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기부는 여전히 ‘가진 자’의 전유물이란 인식은 남아 있었다. 바뀌기 시작한 계기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불어닥친 ‘금모으기 운동’이다. 전 국민이 외환위기를 이겨내기 위해 십시일반 참여했던 경험이 ‘풀뿌리 기부문화’를 정착시키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분석이다. 2000년엔 처음으로 개인 기부금 비중이 50.1%(4조4500억원)로 법인 기부금을 넘어서기도 했다. 지난해 기부금은 개인 6조8017억원, 법인 4조9063억원 등 총 11조7080억원(추산)이다. 기부에 참여한 사람은 510만명에 이른다. 경제활동인구(2014년 말 기준 2653만명) 5명 중 1명에 해당한다.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기부금 비율은 0.87%(2013년 기준)로 미국(2.0%), 뉴질랜드(1.35%) 등보다 낮은 수준이다.

○‘정기 소액 기부’ 갈수록 증가

한국 개인 기부의 상당수는 ‘십일조’로 대표되는 종교단체 기부다. 지난해 기준 전체 개인 기부금의 73.7%를 차지했다. 미국(36%), 영국(11%) 등과 비교하면 상당히 큰 편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종교단체 기부가 차지하는 비중은 빠르게 낮아지고 있다. 사회봉사단체 등에 매달 소액을 정기 기부하는 사람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한국 유니세프의 기부금은 2008년 282억원에서 지난해 1169억원으로, 후원자는 11만740명에서 34만5737명으로 증가했다. 개인 기부금이 차지하는 비중도 85.1%에서 90.1%로 높아졌다. 유니세프 관계자는 “늘어난 사람의 대다수는 한 달에 2만~3만원씩 정기적으로 기부하는 사람들”이라고 설명했다.

보건복지부가 올해 4월 발표한 ‘2014년 국내 나눔 실태’ 조사결과에 따르면 2013년 기준 현금 기부자 가운데 주기적(월 단위 이하) 기부자 비중이 가장 높은 연령층은 30대(73.6%)였다. 30대의 기부 참여율이 38.0%인 것을 감안하면 30대 10명 중 3명가량(28.0%)은 매달 기부에 참여하고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기부금 단체 따라 공제금액 달라

정부는 기부문화 확산을 위해 기부 참여자에게 세금 혜택을 주고 있다. 개인은 연간 3000만원 이하 기부금에 대해선 15%, 초과분은 25% 비율로 세금에서 깎아주고 법인은 회사 업무와 관련된 비용으로 인정(손금삽입)해준다.

다만 기부자와 기부금 단체의 공익성 등을 따져 공제받을 수 있는 한도를 차등 적용한다. 세법에서는 기부금을 법정기부금, 지정기부금 등으로 구분하고 있다. 법정기부금은 국가, 지방자치단체, 이재민 구호금품, 사회복지공동모금회 등에 내는 기부금으로 100%(법인은 50%) 인정해준다. 지정기부금은 사회복지, 문화, 예술 등 공익적인 단체에 기부한 것으로 30%(법인은 10%)까지만 공제 대상이다. 종교단체는 10%를 적용받는다. 내년부터는 공제 금액까지 기부할 수 있는 ‘기부장려금제도’가 도입된다.

‘기부=돈’이란 공식도 깨지고 있다. 2006년 14.3%였던 자원봉사 참여율은 2013년 17.7%로 늘어났다. 재능기부 등도 늘어나는 추세다. 기획재정부 세제실장을 지낸 백운찬 한국세무사회 회장도 “직업별 시간당 업무 대가를 산정해 일정 비율을 기부로 인정해준다면 다양한 방식의 기부가 활성화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승우 기자 leesw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