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경제위기를 성공적으로 극복하면서 국민소득 2만달러 시대가 다시 열렸지만 자신의 삶이 만족스럽고 행복하다고 말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행복의 기준은 개인마다 다르겠지만 적어도 국민 전체의 행복 크기가 그동안의 경제적 성과만큼 커지지 않았다는 사실은 분명해 보인다. 특히 압축 성장이 가져온 과도한 경쟁 구도와 상대적인 박탈감은 국민 삶의 질과 만족도를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작용하며 많은 사회 문제를 낳고 있다.

◆행복지수는 후진국 수준

국내총생산(GDP) 등 외형적인 성장에만 초점을 맞춘 경제 수치에서 벗어나 사회의 발전 정도, 국민의 행복 수준을 포괄할 수 있는 평가 수치 개발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지난해 34개 회원국을 대상으로 조사한 행복지수 순위에서 한국은 26위에 오르는 데 그쳤다. 11개 영역에 대한 점수 합산 결과 한국은 △일과 삶의 균형(-1.3) △삶의 만족도(-1.8) △주거환경(-2.3) △공동체 생활(-6.1) 등에서 OECD 평균(0)을 밑돌았다. 유엔이 올해 4월 발표한 세계행복보고서에서도 한국은 156개 조사 대상 중 56위에 머물렀다. 한국의 행복 점수는 10점 만점에 5점대 후반에 불과했다. 미국 여론조사기관 갤럽이 최근 148개국에서 각각 1000명을 대상으로 ‘행복 체감 정도’를 조사한 결과에서도 한국인들의 행복 순위는 97위에 불과했다.

한국은 세계사에 기록될 정도로 빠른 경제 성장을 이뤘다. 1960년 1인당 GDP는 100달러에도 미치지 못했지만 1995년 1만1470달러를 기록하며 30여년 만에 1만달러를, 2007년에는 2만달러를 각각 돌파했다. 그럼에도 행복 관련 조사 때마다 하위권을 맴도는 이유는 무엇일까. 삶이 갈수록 더 고단해지고 팍팍해진다고 느끼는 국민이 많기 때문이다. 앞만 보고 내달리는 사이에 양극화 현상과 물질 만능주의가 사회 전반에 퍼지고, 과도한 근로시간으로 가족과 보내는 시간이 줄면서 삶의 질이 하락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소득은 늘지만 행복은 정체

전문가들은 이런 양상을 ‘이스털린의 역설’로 설명하고 있다. 한 국가의 경제성장과 소득 수준이 일정 수준에 도달하고 기본적 욕구가 충족되면 소득이 증가해도 행복에는 큰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는 이론이다. 소득 수준이 낮은 국가에선 소득이 조금만 증가해도 삶의 만족도가 바로 높아지지만, 1인당 GDP가 1만달러만 넘어서도 성장과 행복의 상관 관계가 약해진다는 설명이다. 미국과 영국 등 선진국이 지난 수십년간 이룩한 경제 성장이 전반적인 삶의 만족도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는 연구 결과를 토대로 삼고 있다.

엄한진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는 “일정 수준 이상의 경제규모를 갖춘 국가의 성장은 자칫 상대적 박탈감과 사회 갈등을 유발할 수 있다”며 “국민의 행복 증진에 초점을 맞춘 지속가능한 성장 정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비욘드(beyond) GDP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계 각국에서는 기존 GDP 지표를 대체할 행복 지수 개발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프랑스는 2008년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 지시로 조지프 스티글리츠 컬럼비아대 교수를 의장으로 한 ‘경제성과 및 사회적 진보 측정위원회’를 설립, 국민의 행복 수준을 포함한 총체적인 경제성과 측정 지표를 개발하고 있다. 캐나다와 영국도 정기적인 국민 행복도 조사 방침을 세워놓고 있다.

이런 글로벌 추세에 맞춰 한국도 행복지수 개발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현재 소득 실업 등 경제지표 이외에 소득분배, 여가생활, 환경, 복지 등의 만족도를 측정할 수 있는 국내 지표는 없다. 행복 지수를 관리하겠다는 정부의 의지만으로도 예산과 정책 집행의 효율성이 상당히 높아질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재열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정부가 국민의 행복 지수를 주기적으로 조사해 발표하고, 행복 지수가 낮은 분야에 다양한 정책을 제시하고 집행하는 선순환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정호 기자 dolp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