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통영 초등생 살해사건과 제주 올레길 여성 관광객 살해사건이 잇따르면서 성범죄에 대한 국민 불안이 증폭됐다.

이에 정부는 26일 당정 회의와 관계장관 회의를 열고 반사회적 범죄 근절대책을 발표했다.

큰 그림만 놓고 보면 범죄의 '사각지대'를 줄이고 성범죄 재발을 막겠다는 취지가 읽힌다.

하지만 여성정책 전문가들은 대책이 제 역할을 하려면 고려해야 할 사항이 있다고 조언했다.

◇"가해자 신상정보 공개 범위 다각화 필요" = 정부는 '성범죄자 알림e' 사이트에 공개된 성범죄자의 주소지 기록을 새 주소 체계에 따라 '00구 00동 00로'로 구체화하기로 했다.

또 기존 주민등록 발급일, I-PIN 인증 등의 실명인증절차를 폐지한다.

정보공개 대상도 법 시행 이전 범죄자까지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전반적으로 가해자의 신상정보에 대한 접근성이 한층 높아지는 셈이다.

그러나 성범죄자의 이력이 공개되는 수준은 더 신중하게 결정되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장미혜 박사는 "신상정보가 자칫 성범죄자에 대한 극단적인 경각심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성범죄자가 지역사회에서 철저히 매장되어 재기가 불가능해지면 이것 또한 사회 전체가 감당해야 할 또 다른 짐이자 비용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힌트는 미국의 메건법에 있다.

메건법은 1994년 미국 뉴저지주에 사는 7세 여아 메건이 이웃에 사는 상습 성범죄자에게 강간·살해당한 뒤 마련된 성범죄자의 신상공개에 관한 법률이다.

사실상 우리나라 신상공개제도의 '모체'라고 볼 수 있다.

보통 우리 법보다 '강경하다'고 알려졌지만 역사가 오랜 만큼 섬세한 법 체계를 가지고 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윤덕경 박사는 "메건법이 모든 성범죄자의 이력을 일괄적으로 공개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즉, 죄질이 나쁘거나 형기가 높은 범죄자일수록 더 많은 내용이 공개되고 계도할 수 있다고 판단되면 이름 등 간단한 신상만 밝힌다는 것이다.

윤 박사는 "형법상 불소급의 원칙을 고려하더라도 신상정보 공개 수준을 정하는 것은 매우 민감한 사안"이라며 "시민에게 필요한 정보를 열어주되 법원칙·정책효율성을 고려해 공개 수준을 다각화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스마트폰 '성범죄자 알림e' 우범 지대 표시도" = 현재 컴퓨터에서만 이용 가능한 '성범죄자 알림e' 시스템은 스마트폰까지 확대 시행될 예정이다.

범죄자의 위치를 언제 어디서나 검색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단순히 범죄자의 정보만으로는 범죄를 예방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왔다.

범죄자 정보에 더해 다니는 공간의 '위험도'를 볼 수 있는 복합적인 정보가 제공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장 박사는 "아동·청소년의 보호가 가장 취약한 구간은 집에서 학교를 잇는 등하굣길"이라며 "아이들이 주변 빈집 밀집 지역, 인적이 드문 공터 등에서 어디인지 스마트폰을 이용해 알 수 있다면 범죄 예방이 더 수월할 것"이라고 전했다.

◇"은폐된 아동·청소년 성범죄에 대한 관심도" = 통영 살해사건 피해자 한아름(10) 양은 어른의 보살핌을 제대로 받지 못한 취약계층 아동이었다.

이에 정부는 해바라기 아동센터 등 성폭력 피해자 지원 서비스를 강화하고 취약 계층 아동을 돌보는 지역아동센터, 드림스타트센터 등 복지 인프라를 확충하겠다는 방안은 내놨다.

전문가들은 대체로 환영 의사를 표했다.

가해자 처벌보다는 피해자(잠정 피해자) 지원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 이들의 의견이다.

여기에 더해 경찰청 통계에 잡히지 않는 은폐된 성폭력에 대한 관심을 높여야 한다고 첨언했다.

윤 박사는 "성폭력은 피해자의 신고율이 낮은 범죄 유형 중 하나"라며 "실제 경찰청 통계는 전체 발생의 10분의 1 수준인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윤 박사가 대표 집필해 지난해 12월 발표한 보고서 '여성청소년 성폭력·가정폭력·성매매 피해실태와 대응방안'에 따르면 성폭력 피해 청소년의 46.32%가 피해를 알리지 않았다.

그는 "이 설문에서 친구·선후배, 가족·친척 등 '아는 사람'에게 피해를 보았다고 답한 수도 전체의 절반 수준"이었다며 "성폭력이 은폐되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아는 사람에게 당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성폭력 피해 상담소 프로그램을 개선해 성폭력 피해 청소년들이 '터놓고 하소연할 곳'을 만들어야 한다고 윤 박사는 전했다.

장 박사는 학교 울타리 밖에 있는 청소년에 대한 각별한 관심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통계를 보면 학교를 중도 포기하고 청소년 쉼터 등에서 생활하는 청소년의 29.89%가 성폭력을 경험했다.

여자 청소년만 놓고 보면 그 비율이 47.72%에 달한다.

이는 학교에서 생활하는 청소년 19.6%, 여자 청소년 22.47%보다 높은 비율이다.

정 박사는 "지역사회에서 나서 이들 소외 청소년을 보호해야 한다"며 "단순한 금전적 지원이 아니라 이들의 성격 형성 배경 등을 이해하고 구체적으로 도움을 주는 장기 프로그램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서혜림 기자 hrse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