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배우로 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팬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호사를 누리는 운명일까. 은밀한 사생활도 도마 위에서 낱낱이 까발려지는 짐을 져야하는 숙명일까. 이재용 감독의 영화 '여배우들'(12월10일 개봉)은 이런 궁금증에 대한 작은 실마리를 제공한다. 윤여정 이미숙 고현정 최지우 김민희 김옥빈 등 20대부터 60대까지 6명의 여배우가 화보를 찍기 위해 모여 기싸움을 시작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다. 이 감독은 현장에서 배우들에게 즉흥 연기를 요구하며 속내를 끄집어낸다. 영화에서 맞짱뜬 최지우와 고현정을 강남 한 카페에서 따로 만났다.

"TV로만 보던 지우를 만나니 정말 아름답고 곱더군요. 사람도 잘 정돈돼 있고.그렇지만 언니로서 뻔뻔하게 밀고가야 했어요. 내가 거의 술잔을 들고 다니면서 시비를 거는 역할이었지요. 이미숙 선배한테만 조금 무릎을 꿇었을 뿐 나머지에겐 악역으로 비쳐질 것 같아요. "(고현정)

"현정 선배는 확실히 고수였고 노련했어요. 학창시절 현정 언니의 '모래시계'를 보고 배우의 꿈을 키우다 이번 촬영장에서 처음 봤어요. 그런데 맞붙는 신이었어요. 센 대사가 나오니 어쩔 줄 모르겠더라고요. 생전,남한테,연기로도 안 해 본 말들을 하려니 심장이 터질 것 같았어요. 다행히 현정 선배의 리드로 무사히 촬영을 마쳤어요. 막상 끝내고 나니 속이 시원해지더군요"(최지우)

고현정은 이 작품에서 4년 후배인 최지우의 이마를 톡톡 건드릴 정도로 도발적인 행동도 서슴지 않는다. 평소 야단을 맞거나 쳤으면 쳤지,누구와 싸워본 적은 없었던 터라 싸움 신은 오히려 짜릿했다고.그녀의 기싸움 신이라면 얼굴 근육을 미세하게 움직였던 '미실'역(드라마 선덕여왕)을 자연스레 떠올리게 만든다.

최지우는 '얌체'로 등장한다. 매일 촬영장에 늦게 나타나고 특별대우를 원하는 여배우의 속성을 잘 대변한다. 하지만 실제 촬영장에서는 고민도 많았다고."아무리 영화라지만 선배에게 이렇게 센 대사를 해도 될까. " 이럴 때면 현정 선배가 조용히 계단으로 그를 불러내 연습 파트너가 돼 줬다고.

이들에게 여배우로서의 실제 삶은 어떨까.

"여배우로 사는 건,좋아요. 원하고 추구했으니까 수영복 입고 세종문화회관에 선 거지요. 타고 난 것도 있겠지만 주위의 도움과 행운이 없이는 여기까지 올 수 없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감사하고 보은해야지요. "(고현정)

미스코리아 출신으로 '모래시계'로 방송에 데뷔한 그는 재벌가 3세와의 결혼과 이혼,드라마틱한 복귀와 성공까지 늘상 사람들의 이목을 모았다. "여배우는 가십도 너무 멀리하면 안돼요. 후배들한테도 말해요. 전세기를 탈 능력이 있어서 타는 건 좋은데 그게 여러 사람들에게서 분리되는 순간을 즐기는 건지,아니면 간첩처럼 아무도 모르게 살고 싶은 건지 잘 구분하라고.자신이 무얼 원하는지 알고 행동하라고."

최지우도 아직 부족한 점이 많긴 하지만 여배우에 대해 만족한다. "'여배우'란 호칭을 얻고 싶지만 항상 부족하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다시 태어나도 여배우로 살고 싶어요. 여배우는 촬영장의 꽃이고 단점보다는 장점이 많아요. 많은 사람들을 위로해주고 저도 누구보다 먼저 위로받으니까요. " 다만 사생활이 왜곡돼 비쳐지는 것은 힘든 일이라고 했다. "앞 뒤 상황이 빠진 사생활 얘기가 알려진 뒤 내가 왜 그랬을까라는 자책도 해요. 도마 위에 오르지 않기 위해 다시 숨고 싶어져요. 한 없이 소심해지는 거지요. 그렇지만 캐릭터와 작품에 대한 욕심이 커져 다시 카메라에 서게 돼요. "

글=유재혁/사진=정동헌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