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한약조제 약사 25% 책임..8천만원 배상해야"

중금속인 수은과 비소가 잔뜩 든 한약을 만들어 판 약사가 이를 먹고 중독 피해를 입은 어린이와 가족에게 치료비를 물어줘야 한다는 판결이 나왔다.

23일 법원에 따르면 김모(5) 양은 2004년 4월 태어난 직후부터 간질 증세를 보이는 `오타하라 증후군'이라는 희귀병을 앓았다.

경련 증세가 끊이지 않아 여러 번 병원에 입원했지만 경련을 멈추게 하는 약을 먹어도 병세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김 양의 어머니(39)는 2004년 8월 약사 K 씨가 운영하는 동네 약국을 찾았다.

김 양 어머니가 "딸이 오타하라 증후군으로 약을 먹고 있는데 경기가 심하다"고 하자 K 씨는 "열을 빼야 한다.

항경련제는 독성이 강해 피가 마르니 먹이지 말라"며 안궁우황환이라는 약을 권했다.

안궁우황환은 주사, 웅황 등을 섞어 만드는데 주사는 황화수은을 96% 이상, 웅황은 이황산비소를 90% 이상 포함하는 등 중금속을 다량 함유해 조제ㆍ투약에 주의가 요구되는 약이었다.

어머니는 K 씨 권유대로 안궁우황환 1환을 사 딸에게 먹였지만 전에 없던 설사 증세까지 나타났다.

다시 찾아가자 K 씨는 "열을 빼는 과정"이라며 그해 11월까지 넉 달 동안 안궁우황환 77환을 더 팔아 김 양에게 먹게 했다.

하지만 김 양은 그해 11월 폐렴 등 증세까지 찾아와 혼수상태가 돼 대학병원 응급실로 실려갔다.

안궁우황환을 투약해왔다는 말을 들은 병원 의료진은 어머니가 갖고 있던 약 성분 분석을 검사기관에 의뢰했는데 수은은 1만∼1만8천ppm, 비소는 1만4천∼3만ppm이 검출됐다.

김 양 사건은 당시 큰 반향을 일으켰었고, 이 사건을 계기로 식품의약품안전청은 2008년 생약에 든 주사와 웅황 등 광물성 생약의 중금속 기준을 마련했는데 주사 중 수은 함유 기준은 2ppm, 웅황 중 중금속 함유 기준은 20ppm이었다.

투약 당시 별도 기준은 없었지만 김 양은 식약청이 뒤늦게 마련한 기준치로 볼 때 5천배가 넘는 수은이 든 약을 수개월간 먹다 급성 수은 중독에 걸린 것이다.

현재도 병상을 벗어나지 못하는 김 양은 온몸이 거의 마비된 상태로 심한 호흡부전을 겪고 있다.

잘못된 약을 먹은 사실을 뒤늦게 안 어머니는 약사를 고소하고 민사소송을 따로 내는 등 법정 싸움을 시작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18부(이병로 부장판사)는 김 양과 어머니가 K 씨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K 씨는 8천만원을 배상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고 이날 밝혔다.

재판부는 "K 씨는 전문 지식이 없으면서 주사와 웅황 등 중금속이 과량 든 안궁우황환을 팔아 김 양을 중금속에 중독되게 하고 항경련제를 투약하지 않게 한 과실이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재판부는 김 양의 오타하라 증후군이 상당 부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을 고려해 K 씨의 책임 비율을 25%로 제한했다.

한편 K 씨는 검찰에 의해 기소됐고 최근 징역 2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고 형이 확정됐다.

(서울연합뉴스) 차대운 기자 setuzi@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