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멍뚫린 재정
(10·끝) 예산심의·관리 개혁하자
종교 유적지 복원을 지원하는 문화체육관광부의 ‘종교문화시설 건립’ 사업은 최근 수년간 예산 집행률이 곤두박질치고 있다. 2017년에는 362억원이 배정됐으나 집행률은 43.0%로 절반이 안 됐다. 이 와중에 지난해 사업 예산은 404억원으로 오히려 늘어났고, 집행률은 37.3%로 더 떨어졌다. 애초에 사업부지 매입 여부조차 고려하지 않은 채 과다하게 예산이 편성됐는데도 이를 국회에서 걸러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국회의 소홀한 예산 심의로 평균 집행률이 70%를 밑도는 국가 예산사업이 최근 4년간 200개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은 김재원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장(자유한국당 의원·맨 왼쪽)이 지난 7월 국회에서 추가경정예산안 소위원회를 주재하는 모습. /연합뉴스

국회의 소홀한 예산 심의로 평균 집행률이 70%를 밑도는 국가 예산사업이 최근 4년간 200개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은 김재원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장(자유한국당 의원·맨 왼쪽)이 지난 7월 국회에서 추가경정예산안 소위원회를 주재하는 모습. /연합뉴스

예산 다 못 쓰는데…“일단 끼워 넣자”

부실한 국회 예산 심사가 국가 재정의 비효율적 배분과 재정 누수의 주요 요인으로 지목받고 있다. 국회의원들의 지역구 관리를 위한 ‘묻지마 편성과 증액’ ‘나눠먹기식 배분’이 횡행하고 짧은 심사 기간과 전문성 부족으로 ‘날림 심사’가 이뤄진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무늬만 삭감’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국회는 매년 정부로부터 예산안을 제출받으면 소관 상임위원회 예비심사와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종합심사를 거쳐 본회의에서 심의·의결한다. 심사 과정에서 감액은 국회 재량껏 할 수 있지만, 증액은 해당 정부 부처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통상 상임위에서 지역 의원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예산 부풀리기에 나서고, 예결위에서 ‘주고받기식’으로 심사가 이뤄진다.

지난해 예산 심사에서는 16개 상임위 중 기획재정위원회를 제외한 15개 상임위가 지출 요구액을 정부안보다 늘렸다. 특정 지역을 위한 예산 ‘끼워 넣기’가 주된 이유다. 정부 부처가 반대하는데도 의원들이 ‘묻지마’식으로 밀어 넣는 사업들이다.

국회 회의록에는 이 같은 실상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지난해 예결위 예산안조정소위원회에서 보건복지부는 충북 단양 보건의료원 신축 사업에 대한 예산 편성을 반대했다. 사업 타당성 검토, 설립 심의 등 절차로 인해 올해 추진이 어렵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의원들의 요구로 결국 20억원이 들어갔다. 농촌 지역을 대상으로 한 ‘쌀전통민속주 제조장 건립’ 사업은 농림축산식품부에서 “전년도에 집행이 전혀 안 됐다”고 반대 의견을 냈는데도 국회 심사 과정에서 10억원의 예산이 마련됐다.

법령을 어기면서까지 억지로 예산을 편성하는 사례도 있다. 올해 391억원이 편성된 ‘서울 노후하수관로 정비’ 사업은 보조금관리법 시행령을 어긴 예산 배정으로 지적받고 있다. 재정자립도가 높은 서울시는 보조금 지급 대상이 아닌데도 의원들이 400억원 편성을 요구했고, 결국 환경부가 받아들여 거의 전액이 반영됐다.
사업성 없는데도 의원들 '예산 부풀리고 나눠먹기'…심사는 시늉만

‘쪽지 예산’의 온상 ‘소(小)소위’

그나마 예결위 소위에서 논의된 사안들은 국회 회의록을 통해 국민에게 알려지기라도 한다. 예결위 소위가 결론을 쉽게 낼 것 같지 않으면 으레 여야 간사·기획재정부 관계자만 참여하는 ‘소(小)소위’가 가동된다. 소소위는 국회법상 규정된 비공식 기구이기 때문에 언론의 접근이 불가능한 데다 속기록도 남지 않는 ‘깜깜이 심사’를 진행한다. 이 때문에 소소위는 의원들이 간사에게 민원 예산을 전달하는 ‘쪽지 예산’의 온상으로 지적된다.

김재원 예결위원장(자유한국당 의원)은 지난 7월 선출되면서 “소소위 관행을 끊겠다”고 선언했지만, 예결위는 같은달 30일 추가경정예산안 심사 시한을 이틀 남겨두고 결국 소소위나 마찬가지인 예결위 간사 회의를 가동했다. 국회 혁신자문위원회는 지난 5월 소소위를 금지하는 국회법 개정을 권고했지만, 의원들의 반대로 개정안은 제출되지 않고 있다.

정작 깎을 건 놔두고…

‘묻지마 증액’만큼이나 문제점으로 지적받는 것이 ‘무늬만 삭감’이다. 국회가 예산 낭비사업은 제대로 거르지 못한 채 회계적 삭감에만 치중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한국지방정치연구소와 나라살림연구소가 올초 공동으로 2008~2019년도 정부 제출 예산안을 분석한 결과, 이 기간 일반회계에서는 4조7000억원, 교통시설특별회계에서는 4조원이 증액된 반면 공공자금관리기금(공자기금)에서는 11조6000억원이 감액됐다. 공자기금 감액은 국고채 발행에 따른 정부의 이자상환 예상 금액을 줄이는 것이다. 정부가 실제 갚아야 하는 이자는 그대로 둔 ‘회계상 감액’이다. 이 때문에 애초부터 기재부가 국회에 감액 여지를 주기 위해 이자상환 예산을 과다편성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감사원은 지난해 5월 기재부가 2013∼2016년 4년 동안의 예산안에 3조원에 달하는 공자기금 예수금 이자를 과다 산정했다는 감사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마찬가지로 지방교육교부금·교부세, 국민연금·공무원연금 지급액 등 지출 예상액만 조정하는 회계적 감액을 모두 제외하면 매년 정부 제출 예산안은 국회에서 깎이는 대신 오히려 수천억원에서 수조원씩 늘어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창수 나라살림연구소 소장은 “정작 복지 고용 국방 등 분야에서 감액할 예산이 많은데도 국회 심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임도원/고은이 기자 van7691@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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