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주변정세 엄중, 북핵·사드 등 현안 대응력 약화 우려
탄핵안 가결시, 정상외교 올스톱…'상황관리' 이상 어려울 듯
"새로운 것보다 기존노선 유지 중요" "시스템으로 대처해야"

한국 외교가 깜깜한 터널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다.

'비선 실세' 최순실 국정농단 파문이 일파만파로 커지고, 특히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위한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발의되면서 먹구름이 외교 분야까지 드리워지고 있다.

오는 9일 표결이 예정된 박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되면 헌법재판소의 최종 결정이 있을 때까지 박 대통령의 헌법상 모든 권한은 정지된다.

외교의 백미라 할 수 있는 정상외교를 할 수 없는 외교 암흑기에 접어드는 것이다.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부결되거나 향후 헌법재판소에서 기각 결정이 내려지더라도 정치적 혼란이 가중되면서 차기 정부가 들어설 때까지 안정적인 외교를 펼치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문제는 한반도 주변 정세가 어느 때보다 유동적이고 엄중한 상황이라는 점이다.

평상시 모든 전열을 가다듬고 외교에 집중할 때도 강대국들의 틈바구니에서 우리가 움직일 공간이 좁은데, 가뜩이나 더욱 엄중해진 주변 정세 속에서 우리 외교가 제대로 대응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당장 연내 개최하기로 했던 도쿄에서의 한일중 정상회의 개최가 불투명해졌다.

일본이 개최를 추진해왔던 19~20일이 2주 앞으로 다가왔지만, 박 대통령의 거취가 불투명해지면서 5일 현재까지 개최 여부 및 일정을 확정하지 못하고 있다.

오는 9일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가결되면 한일중 정상회의는 사실상 무산 가능성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북핵 및 북한 문제도 최대 도전과제다.

북한은 그동안 차기 미국 대통령으로 도널드 트럼프 후보가 당선되는 과정과 함께 트럼프 당선인의 향후 대북정책 등을 예의주시하며 도발을 자제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왔다.

그러나 북한이 한국의 정치적 혼란 상황을 적극 활용할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트럼프 차기 미 행정부의 의지를 시험하기 위해 미국의 새 정부가 출범하는 내년 1월 20일을 전후로 장거리 미사일 발사나 추가 핵실험 등 전략적 도발에 나설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망 5주기인 12월 17일 이전에 도발할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한국의 외교 공백이 커질수록 대북제재 전선 및 북핵 공조가 느슨해지고, 북한의 오판 가능성도 커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중국은 한미의 주한미군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배치 결정과 관련해 대응 수위를 서서히 높이면서 이미 힘이 빠진 박근혜 정부를 시험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중국 당국은 한국 연예인·드라마·방송·영화를 제한하는 '금한령(禁韓令)'을 내린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자국 내 150여개 롯데 점포에 대해 세무조사와 함께 소방안전, 위생검사 등을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사드 배치 예정 부지인 경북 성주군의 롯데스카이힐 골프장(성주골프장)과 경기도 남양주 군(軍) 소유 부지를 롯데 측과 한국 국방부가 교환하기로 한 상황에서 중국 측이 롯데에 대해 보복조치에 나선 것이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미국 국방부는 박 대통령의 향후 거취와 상관없이 사드 배치를 계속 추진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어, 사드 배치가 가속화할수록 중국 측의 압박 강도도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한국내 정치적 혼란을 틈타 사드 배치와 관련한 여론 흔들기에 열을 올릴 것으로 관측된다.

내년 1월 20일 출범하는 미국 트럼프 신행정부와의 관계 설정도 핵심적인 외교과제다.

대북정책 구상이 불투명한 트럼프 차기 행정부가 북한·북핵 문제를 최우선 외교과제로 설정하고, 한국과 긴밀한 대북공조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우리로서는 시급한 숙제다.

북핵 대응과 한미동맹의 공고함을 재확인하기 위해 필수적인 한미 정상회담이 적어도 내년 상반기까지는 어려울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이 나온다.

미국 뿐 아니라 다른 모든 나라와의 정상회담도 마찬가지다.

박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9일 국회에서 가결되면 총리가 권한을 대행하겠지만, 정상외교와는 확연한 차이를 가질 수밖에 없고, 외교 현안에 대한 결정도 상황관리 수준에 머물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국내 정치 상황이 불안정하고 불투명한 상황에서 외교적 협상에서도 힘을 발휘하기 어렵다.

천영우 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은 5일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중요한 결정을 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면서 "이런 상황에서는 정책 등에서 새로운 것을 하기보다는 사드 등 이미 결정된 것을 그대로 이행하고 기존노선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윤덕민 국립외교원장은 "외교부를 중심으로 시스템으로 잘 챙기고 대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이귀원 기자 lkw777@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