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파문' 불똥에 유일호 부총리 임기 1년도 못 채우고 교체될 듯
美 오바마 대통령 초기 4년간 교체된 장관 단 2명
전문가들 "경제부처 장관 인사, 정치권 입김 빼고 전문성 높은 관료 중심으로"

단명 장관이 속출하는 것은 경제부처 장관 인사에 정치권의 입김이 적지 않게 작용하고 있어서다.

정치인 출신이 장관으로 올 경우 총선에 출마하고자 장관 스스로 물러나는가 하면, 정권이 위기를 맞을 때 분위기 쇄신용으로 개각 카드를 꺼내 들면서 엉뚱하게 장관들이 '희생양'이 되기도 한다.

문제는 장관들이 '롱런'하지 못할수록 경제 정책의 일관성이나 추진력이 떨어지게 된다는 점이다.

전문가들은 단명 장관을 막기 위해서는 정치권과 거리를 둔 전문성 높은 인사들을 장관으로 임명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 '최순실 게이트' 파문에 경제부총리 교체?

지난 2일 청와대는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교체를 포함한 개각을 발표했다.

유일호 현 부총리가 지난 1월 12일 취임한 뒤 불과 296일째 되는 날이었다.

유 부총리는 그동안 박근혜 정부 임기 후반부를 책임지는 경제 컨트롤타워로 대통령과 함께 임기를 마칠 것으로 보는 전망이 우세했다.

그러나 '최순실 게이트'로 정국이 어수선해지자 청와대는 국무총리와 함께 경제부총리 교체카드를 꺼내 들었다.

임종룡 경제부총리 내정자가 순탄히 임명될지는 미지수지만 교체가 기정사실화된 유 부총리로서는 아무리 길어야 1년 남짓 자리를 지키는 데 그칠 것으로 전망된다.

유 부총리는 박근혜 정부의 최소기간 재임 경제부처 장관 기록도 보유하고 있다.

2015년 3월 국회의원 신분으로 국토교통부 장관에 올랐다가 242일 만에 정치권으로 복귀한 경험이 있다.

문민정부 이후 임명된 경제부처 장관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유 부총리보다도 훨씬 단명한 사례가 많다.

가장 재임 기간이 짧았던 이는 참여정부의 최낙정 전 해양수산부 장관이다.

2003년 9월 취임한 직후 최 전 장관은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태풍 '매미'가 북상 중일 때 뮤지컬을 관람한 것을 두고 "왜 우리는 대통령이 태풍 때 오페라를 보면 안 되는 이런 나라에서 살아야 하는가"라며 옹호발언을 했다가 설화를 입었다.

곧이어 한 특강에서 교사들을 비하하는 듯한 발언까지 문제가 되자 결국 14일 만에 옷을 벗어야 했다.

국민의 정부에서는 김용채 전 건설교통부 장관과 안정남 전 건설교통부 장관 2명이 임명된 지 한 달을 버티지 못하고 물러나야 했다.

김 전 장관은 2001년 8월 임명됐지만 DJP(김대중-김종필) 공조 파기의 여파로 17일 만에 야인으로 돌아갔다.

안 전 장관은 언론에서 집중적인 땅 투기 의혹이 제기되자 23일 만에 사퇴했다.

1996년 말 김영삼 대통령이 임명했던 안광구 전 통상산업부 장관은 이듬해 1월 당시 재계 서열 14위였던 한보그룹 부도를 계기로 정경유착 비리가 드러난 '한보 사태'의 유탄을 맞았다.

주무부처 수장으로서 책임을 지고 76일 만에 자리에서 내려왔다.

이명박 정부에서 가장 단명한 경제부처 수장은 159일간 재임한 정운천 전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이다.

취임한 지 얼마 안 돼 조류 인플루엔자(AI) 확산으로 홍역을 치렀으며, 미국산 쇠고기 수입협상과 관련해 '광우병 파동'이 터지면서 국민적 반발을 이겨내지 못하고 결국 사퇴했다.

◇ 근시안정책 쏟아내는 '단명' 장관들…선진국 장수 내각과 대비

정책부처의 수장인 장관의 교체가 잦으면 관료들이 중심을 잡기 어렵고 그만큼 정책의 일관성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장관들 스스로도 임기를 장담할 수 없는 탓에 책임을 갖고 신중하게 정책을 추진하기보다는 포퓰리즘에 흔들릴 수 있는 유인이 큰 것도 사실이다.

박근혜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불과 몇 년의 가까운 미래도 내다보지 못했다는 지적을 많이 받는다.

현오석 부총리 당시에는 부동산 경기 침체에도 불구하고 각종 규제를 유지하다가 최경환 전 부총리가 들어서면서 주택담보대출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 완화 조치를 단행했다.

부동산 거래는 점차 활성화됐지만 경기가 살아날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내수는 침체를 반복했고 우려했던 가계부채는 급증하기 시작했다.

날로 불어나는 가계부채 폭탄은 올해 1월 최 전 부총리에서 바통을 건네받은 유일호 부총리가 떠안았고 결국 정부는 지난 8월 주택공급 축소를 골자로 하는 가계부채 관리 방안을 허겁지겁 내놓으며 기존 수요 관리 체제를 공급 관리 체제로 전환했다.

배당소득 증대세제 역시 도입 초기 고소득층에게 혜택이 집중될 것이라는 지적이 나왔지만 정책 도입 당시에는 이같은 우려가 반영되지 못했다.

하지만 세제 도입 이후 기업 소득이 임금보다 배당에 더 많이 흘러들자 정부는 부랴부랴 고소득층에 유리한 분리과세제를 없애고 모두 세액공제로 전환했다.

선진국처럼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장관의 임기가 최대한 보장되고 책임이 부여되는 구조였다면 처음부터 신중한 접근이 가능했을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장관이 언제든 교체될 수 있는 환경이 정책 일관성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정권마다 각자의 입맛에 맞게 이뤄지는 대대적인 정부 조직 개편 역시 정책 일관성을 방해하는 요인 중 하나다.

김영삼 정권은 당선인 시절 1차 조직 개편을 통해 상공부와 동력자원부를 통합했다.

이명박 정부 때는 부총리제가 폐지됐고 기획예산처와 재정경제부가 합쳐졌다.

반면 대부분 선진국은 가급적 장관의 임기를 보장하고 내각에 대한 신뢰를 강조하며 국정 운영의 안정을 꾀하고 있다.

미국의 오바마 정부는 8년간의 재임 기간에 내각 교체를 최소화하며 안정성을 유지했다.

2009년 1월부터 4년간 오바마 1기 내각 중 교체된 장관은 국방부와 상무부 2곳에 불과했다.

최근 유럽연합(EU) 탈퇴(브렉시트) 결정 이후 어수선한 영국 역시 개각에서 변화를 강조하면서도 주요 내각은 그대로 유임하며 안정을 꾀하는 분위기다.

테리사 메이 신임 영국 총리는 지난 7월 개각에서 여성을 대거 등용하며 브렉시트 투표 이후 혼란을 수습하기 위한 쇄신 노력을 기울이면서도 내무장관, 국방장관, 보건장관 등 주요 보직 장관 4명은 유임했다.

아베 총리는 2012년 12월 2차 아베 정권 출범 이후 617일간 한 명의 각료도 교체하지 않았고 지난 8월 개각에서도 재무상, 관방장관, 경제재생담당상, 외무상 등 내각의 중추 각료들을 유임시키며 경제살리기에 역점을 뒀다.

대형 사건·사고 등이 터질 때마다 '도의적 책임' 딱지를 붙여 장관을 교체하는 것으로 사태를 수습하는 대한민국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 "롱런할 인재 풀 미리 만들어놔야…5년간 부총리 2명 정도가 바람직"

전문가들은 경제부처 장관들이 단명하는 것은 경제부처 장관 인사가 정치권의 영향 아래에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박정수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치인 출신이 장관이 되면 총선 출마 등을 이유로 장관에서 물러나기도 한다"며 "모든 권력이 국회로 넘어가다 보니 장관 교체 일정도 국회의 종속변수가 된 것"이라고 평가했다.

백웅기 상명대 경제학과 교수 역시 "그간 장관이 자주 바뀐 이유 중 하나는 장관의 무능이라기보다는 정치권과 연루된 문제들 때문"이라고 꼬집었고, 김태윤 한양대 행정학과 교수는 "무슨 파동이 일어나거나 사건·사고가 생기면 장관에게 책임을 물어서 경질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분석했다.

경제부처 장관들이 롱런하지 못할수록 경제 정책의 연속성과 추진력을 상실할 수 있어 우려스럽다는 지적이다.

이는 경제 정책 전반의 신뢰도를 훼손시키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백 교수는 "(특히) 경제부총리가 자주 바뀌면 경제 컨트롤타워 역할을 제대로 못 하고 다른 부처와의 협조에도 문제가 생긴다"며 "각종 경제 관련 회의·위원회의 위원장이 관례상 부총리인데, 부총리가 바뀌면 해당 내용을 제대로 모르고 회의에 참석할 우려도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장관이 바뀌는 상황에서는 공무원이 나가는 장관에게도, 새로 올 장관 후보자에게도 경제 현안 관련 결정을 내려달라고 하기 어렵다"며 "부처 내에서도 레임덕 아닌 레임덕이 생긴다"고 꼬집었다.

단명 장관이 나오는 사례를 막기 위해서는 정치권과는 거리가 있으면서도 전문성이 높은 인물을 찾는 게 가장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부처 중에서도 경제 총괄부처의 수장인 부총리의 경우 다른 곳보다 롱런할 수 있는 인물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전문가들은 강조했다.

백 교수는 "상당히 전문적인 관료에게 부총리를 맡기는 게 바람직하다"며 "임기를 제도적으로 정할 수는 없지만 5년 대통령 임기에 부총리를 2명 정도 두는 관행이 적절하다고 본다"고 제언했다.

박 교수 역시 "인물난 때문에 1순위 후보가 부총리가 되지 못했고 그러다 보니 부총리가 자주 바뀌는 측면도 있었다"며 "미리 검증을 거쳐 부총리가 돼도 롱런할 만한 인재 풀을 만들어놓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고 말했다.

(세종=연합뉴스) 정책팀 = porqu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