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대통령, '미국이 못받을 제안 던져 볼 넘기자' 각료들 건의에 역정"

2007년 9월 시드니에서 열린 한미정상회담에서 노무현 당시 대통령과 조지 W. 부시 당시 미국 대통령이 미국산 소고기 수입을 놓고 팽팽한 논쟁을 했다고 당시 외교통상부 장관이었던 송민순 북한대학원대학교 총장이 회고록에서 밝혔다.

송 총장이 최근 발간한 회고록 '빙하는 움직인다'에 따르면 2007년 9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열린 한미정상회담에서 두 대통령은 미국산 소고기 수입 문제를 놓고 공방을 벌였다.

포문을 연 부시 대통령은 노 대통령에게 "한국이 이제 국제수역사무국(OIE) 기준을 존중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같은 해 5월 22일 '미국 소고기가 광우병 통제 범주에 속하는 것으로, OIE의 기준을 충족한다'는 OIE의 발표를 상기하며 미국산 소고기 수입금지를 해제할 것을 요구한 것이다.

그러자 노 대통령은 "한국 국민들은 왜 일본은 (미국산 소고기를) 수입하지 않는데 한국이 나서야 하는지 의문을 제기한다"며 "일본, 대만, 홍콩도 한국처럼 수입한다고 해야 우리도 움직일 수 있는데, 아직 그들과 (미국이) 협상한다는 소식은 못 들었다"고 맞받았다.

그러자 부시는 일본과도 한국과 똑같은 소고기 합의를 할 것이라고 다짐했지만 결국 미국 오바마 정권 들어서 미일 사이에는 한국보다 개방 폭이 좁은 수준에서 소고기 협상을 타결했다고 송 총장은 밝혔다.

아울러 2007년 12월, 퇴임을 약 2개월 앞뒀던 노 대통령은 소고기 수입 문제 결정을 위한 총리 및 관계장관 회의때 미국 측이 수용할 공산이 희박한 방안을 제시함으로써 '공'을 미국 코트로 넘기자는 각료들의 제안을 거부했다고 송 총장은 전했다.

송 총장은 회고록에서 "나는 우리 코트에서 볼을 갖고 있지 말고 '위험부위를 제외한 30개월 미만 소고기' 수입을 허용하는 방안을 미국에 던지자고 제안했다"고 소개했다.

이 방안은 한덕수 당시 총리, 김종훈 당시 통상교섭본부장과 미리 의논한 아이디어였다.

이에 대해 노 대통령은 "미국이 그 방안을 받을 것 같으냐"고 물었다고 송 총장은 전했다.

한 총리가 "받을 것 같지 않다"는 의견을 내자 노 대통령은 안색이 굳어지더니 "미국이 받지도 않을 방안으로 우리의 카드를 써 버리면 다음 정부가 들어와서 협상할 여지만 줄여버리고 또 국내적으로도 나를 지지한 사람들에게 좋은 소리도 못 들을 제안을 왜 하느냐"며 역정을 냈다고 송 총장은 회고했다.

송 총장은 당시 자신이 자리에서 일어나는 대통령을 뒤따라가며 "부담을 미국 측에 넘기자고 드린 말씀"이라고 하자 노 대통령은 "피도 눈물도 없느냐"며 돌아보지도 않고 나갔다고 밝혔다.

송 총장은 "노 대통령은 정권이 반대편(당시 한나라당)으로 넘어가게 되니 각료들이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고려하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은 것으로 보였다"고 적었다.

한국 정부는 이명박 정부 출범 첫해인 2008년 4월, 한미정상회담을 하루 앞두고 소고기 연령(월령) 제한을 단계적으로 해제하는 방식으로 미국산 소고기 수입을 사실상 전면 개방하기로 미국과 합의했다.

(서울연합뉴스) 조준형 기자 jhch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