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경제' 탈색 부담?..`축재계층' 반발도 부담
장성택ㆍ박남기 주축 TF가동, 극비리 추진된듯

북한이 지난달 30일 17년만에 화폐개혁을 단행하고도 만 이틀이 지난 2일 현재까지 대외적인 공식 발표를 하지 않아 궁금증을 낳고 있다.

북한은 과거 4차례의 화폐개혁 때마다 자체 언론을 통해 그 내용을 공개했다.

1992년 7월15일의 직전 화폐개혁 때도 관련 내용을 담은 중앙인민위원회(현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정령을 전날인 14일자로 제정했고 그 이튿날 북한 언론들이 이를 보도했다.

북한은 이번 화폐개혁을 하면서도 시행 당일인 지난달 30일에야 각 가정에 설치된 `제3방송'(유선 라디오방송)을 통해 주민들에게 알린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이 이번 화폐개혁에 대해 대외적 공개 발표를 미루는 이유는 우선 국제사회의 비판적 시선을 의식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시장경제를 멀리하는 북한 체제의 배타성이 부각되면서 부정적 이미지만 확산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일례로 북한은 지난 4월 최고인민회의 제12기 1차 회의에서 `대외 선전용'인 헌법을 개정하고도 이례적으로 공식 발표는 하지 않았다.

이를 놓고 3남 김정은 후계체제 구축을 겨냥, `1인통치'의 절대적 권력을 행사해온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지위와 권한을 새 헌법에 구체적으로 명시한 것에 대한 부담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그런 맥락에서 볼 때 북한의 이번 화폐개혁은 몇 가지 반시장적, 반자본주의적 `독소'를 갖고 있다.

우선 대내외적으로 `7.1경제관리개선 조치' 이전으로 되돌아가겠다는 시그널을 던진 것으로 풀이된다.

이는 제한적이나마 불가피하게 채택했던 시장경제적 요소를 걷어내고 과거의 `계획경제'로 회귀하는 것을 의미한다.

예컨대 2002년 단행된 이른바 `7.1조치'는 물가와 임금의 현실화를 골자로 하고 있다.

그런데 알려진대로 `100대 1' 교환 방식으로 화폐개혁이 이뤄지면 구권 1만원은 신권 100원이 된다.

다시 말해 새 화폐의 표시가치가 1원, 5원, 10원, 50원, 100원으로 바뀌어 `7.1조치' 이전과 똑같아지는 것이다.

`7.1조치'가 북한 경제에 시장경제적 요소가 수혈된 대표적 사례로 평가받아온 터라 이번 화폐개혁은 반사적으로 시장경제로부터의 이탈로 비쳐질 수 있다는 뜻이다.

상거래를 통해 상당 수준의 부를 축재한 시장상인 등 신흥 부유층이나 특권층을 겨냥한 듯하나 신구권 교환 한도를 가구당 10만원으로 제한한 것도 `시장경제' 원칙에 배치되기는 마찬가지다.

북한 주민들 가운데 웬만큼 여유있는 사람들은 대략 20만원(1가구 기준) 정도를, 규모 큰 시장상인과 같이 부유한 사람은 100만 이상을 현금으로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주민들 입장에서는 나름대로 노력해서 모은 돈을 두 눈 멀쩡히 뜨고 뺏기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은 것이다.

이런 `민감성'과 `인화성' 때문인지 북한은 이번 화폐개혁을 준비하면서 어느 때보다 보안에 신경을 쓴 것으로 보인다.

전체적 밑그림도 내각보다 노동당이 주축이 돼 그렸을 가능성이 높다.

내각은 당에 비해 보안관리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특정 개인이 화폐개혁과 같은 엄청난 일을 좌지우지했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굳이 핵심 인물을 꼽자면 북한의 재정계획 업무를 총괄하는 박남기 노동당 부장(`재정계획부장' 추정)과 장성택 노동당 행정부장 정도다.

실제로는 이들 두 명을 축으로 최소한의 전문가들만 참여하는 테스크포스(TF)가 극비리에 가동됐을 것이라는 분석이 유력하다.

북한은 과거에도 핵문제나 경제문제 등의 주요 현안을 다룰 때는 전담 TF를 운영하곤 했다.

박남기 부장은 김정일 위원장의 경제브레인 역할을 하면서 북한의 '경제사령부'인 내각을 총괄지휘하는 인물로 알려졌다.

장성택 부장의 경우 여전히 건강이 완전하지 못한 김정일 위원장의 최측근으로서 국정 전반에 깊숙이 관여하는 인물이며 `7.1조치'와 남북경협 등도 그의 손을 거친 것으로 전해졌다.

(서울연합뉴스) 최선영 기자 chsy@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