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자 '인질'로 대미 압박…실형 선고 후 북미관계 진전 여부 볼 듯

북한은 24일 `조선중앙통신사 보도'를 통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해당기관은 미국 기자들에 대한 조사를 결속했다"며 "해당기관은 확정된 미국 기자들의 범죄자료들에 기초해 그들을 재판에 회부하기로 정식 결정했다"고 밝혔다.

중앙통신은 그러나 구체적인 조사 결과나 죄목에 대해선 밝히지 않았다.

앞서 지난달 31일 중앙통신은 북한이 억류중인 미국 여기자들에 대한 북한 당국의 중간 조사 결과를 언급, "증거자료들과 본인들의 진술을 통하여 불법입국과 적대행위 혐의가 확정됐다"며 "해당기관은 조사를 계속하는 한편 이미 확정된 혐의들에 근거하여 재판에 기소할 준비를 하고 있다"고 보도했었다.

미국의 `커런트TV' 소속 한국계 유나 리와 중국계 로라 링 기자는 지난달 17일 북.중 접경 두만강 인근에서 탈북자 문제 등을 취재하던 도중 국경을 넘는 바람에 북한 군인들에 붙잡혀 억류됐다.

북한이 이처럼 미국 여기자 2명을 비교적 신속하게 정식 재판에 회부키로 한 것은 지난 5일 장거리 로켓 발사에 따른 북미관계 악화와 연관된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북한에 대한 제재의 실행을 골자로 하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의장성명 채택을 주도했고, 북한은 이에 반발해 6자회담 "절대 불참"과 영변 핵시설의 재가동과 폐연료봉 재처리 및 경수로 발전소 자체건설 검토를 선언하는 등 대립이 격화되고 있다.

특히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은 22일 미 하원 외교위원회 청문회에서 북한 문제 해법에 관한 질문에 "우리는 강력하고 끈질기며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면서 "북한 정권의 오락가락하고 예측할 수 없는 행동에 굴복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와 함께 미국의 전반적인 대외정책 구상을 밝히면서도 북한에 대해선 일절 언급하지 않아 '대북 무시정책'을 시사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북한은 김정일 체제를 자극하는 탈북자 문제 취재를 위해 불법 입경한 혐의를 받고 있는 미국 여기자들 문제를 북미관계에서 쟁점화함으로써 미국 정부를 압박하려는 의도인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힐러리 장관의 청문회 발언 하루만에 억류 여기자들을 재판에 회부한다고 밝힌 것은 이들 여기자를 대미 압박의 '인질'로 삼겠다는 뜻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북한은 이란이 오바마 행정부의 유연한 대이란 접근에도 불구하고 억류해온 이란계 미국인 여기자 록사나 사베리를 재판정에 세워 미국을 위한 간첩죄로 징역 8년형을 선고한 점도 고려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따라서 앞으로 북한은 여기자들에 대한 재판에서 이들에게 실형을 선고한 뒤 북미관계 진전 여부에 따라 신병을 처리할 것으로 예상된다.

일각에서는 미국이 여기자 문제의 해결을 위해 특사를 평양에 보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도 내놓고 있어 향후 북미간 대화가 주목된다.

(서울연합뉴스) 장용훈 임주영 기자 jyh@yna.co.krzo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