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노무현(盧武鉉) 고문이 27일 잠실 실내체육관에서 열린 서울지역 경선을 끝으로 집권당 대통령후보로 확정됐다. 지난달 9일 제주에서 막을 올린 헌정사상 최초의 국민참여 경선제의 16부작 주말드라마에서 '돌풍'의 주역으로 떠오른 지 정확히 49일만이다. 이에 따라 오는 12월 대선에서는 집권당 주자로 나설 노 후보와 현재 진행중인 한나라당 경선에서 독주하고 있는 이회창(李會昌) 전총재간의 대결로 치러질 공산이 커졌다. 제주 첫경선 당시만 해도 아무도 예상치못했던 '노풍(盧風)'이 맹위를 떨친 끝에 집권당 대선후보라는 결실로 이어진 것은 아무래도 정치권 변화를 바라는 시대적요구가 '노무현'이란 정치인에게 모아진 것 아니냐는 분석들이 많다. 심지어 "기성정치권에 식상한 국민의 항거", "다수에 의한 대리만족적 변화"란 해석마저 나온다. 민주화를 경험한 386 세대의 응원, 신세대 네티즌의 열정, 광주에서 확인된 지역주의 붕괴조짐 등 종전 정치권에서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움직임들이 '노풍'과 함께 정치환경을 바꿔놓은 셈이다. '노풍'이 이처럼 정치권 변화의 출구로 각인되면서 '이인제 대세론'이란 벽을 단숨에 뛰어넘으면서 민주당은 영남출신의 정권재창출 기수를 맞아 '노무현 호(號)'로 탈바꿈하면서 '전국 정당화'의 외양을 더욱 선명하게 갖추게 됐다. 하지만 노풍이 앞으로 8개월 남은 본선에서도 순조로운 진군을 계속할 지는 섣부른 예측이 어려운 것도 사실이며, 그만큼 넘어야 할 험준한 봉우리가 적지 않다. 우선 경선 후유증의 극복이 당장 해결해야할 과제다. 특히 경선과정에서 `내길을 가겠다'며 독자노선 모색 의지를 밝힌 이인제 고문을 어떻게 껴안고 가느냐의 숙제가 간단치 않다. 노 후보는 "잘 모시고 함께갈 것"이라고 삼고초려의 예를 갖출 심산이지만 정작이 고문은 "만날 이유가 없다"며 냉랭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 때문에 이 고문이 지방선거가 끝난 이후 정국 추이에 따라서는 자민련 김종필(金鍾泌.JP) 총재 등과 연대해 새로운 정당을 모색할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당 공조직과의 접목과 김대중(金大中.DJ) 대통령과의 관계정립 문제도 풀어나가야 할 과제다. 새 지도부와 후보간 역할분담은 `당.정분리'란 집권당 사상 처음으로 도입된 환경에서 이뤄지는 것이어서 적잖은 난관이 뒤따를 전망이다. 노 후보는 사조직인 지방자치경영연구원 폐쇄 등을 통해 어느 일방의 우월적 지위를 배제한 `후보-대표간 수평적 새로운 협력관계'의 틀을 구상하고 있다. 하지만 노 후보 스스로 "당과의 관계에서 갈등이 있을 것"이라며 예고했듯이 그간 당조직과 전혀 무관하게 독자의 힘으로 후보자리를 따낸 노 후보측 사람들과 공조직간 접목과정에서 적잖은 진통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같은 맥락에서 이른바 `후보 다듬기' 작업을 놓고 노 후보 캠프와 당 공조직간에 의견조율이 뒤따라야 한다. 김 대통령과의 관계정립도 "DJ와 의리를 저버리는 천박한 차별화는 하지않겠다"고 공언해온 노 후보로서는 쉽지않은 문제다. 특히 대통령 아들 비리의혹이 불거져 나오면서 "노무현 = DJ적자"라는 한나라당의 거센 `후보 흠집내기' 공격에 대응하기 위해서도 이 문제에 대한 효과적인 대처가 주목된다. 이 점에서 노 후보는 "국정운영은 대통령 책임으로 후보가 개입할 일이 없다"는 '상호 불개입' 원칙으로 돌파해 나간다는 복안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후보가 직접 나서지 않고 필요할 경우 당 지도부와의 협의라는 공론화 과정을 거쳐 문제를 풀어나가는 형식이 될 공산이 크다. 그간 수차례 공언해온 정계개편론을 어떻게 구체화시켜 나갈지도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노 후보는 DJ는 물론 김영삼(金泳三.YS) 전 대통령의 민주계 등 과거 민주화세력이 헤쳐모이는 `신(新) 민주대연합' 구상을 품고 있다. 이를 위해 조만간 YS를 방문, 협조를 요청할 생각이지만 그간 YS와 DJ간 악화된 관계를 감안할 때 이런 구상이 실현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당장 노 후보의 책임으로 돌아오게될 6.13 지방선거의 결과 역시 민주당과 노후보의 앞날을 좌우하게 될 결정적인 변수다. 특히 노 후보는 "부산 경남 울산의 광역단체장 선거에서 모두 패배할 경우 재신임을 물을 것"이라며 배수의 진을 친 상태여서 지방선거 결과에 따라 그의 대선가도가 한 차례 출렁거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지방선거란 큰 고개를 넘고나면 '작은 총선'으로 불리는 8월 재.보선이 기다리고 있다. 이밖에 내달 9일 한나라당 후보가 확정된 후 본격적으로 시작될 것으로 보이는 후보검증 과정을 여하히 통과할 것인지도 주목된다. 어쨌든 민주당은 `노무현 후보'라는 새로운 스타 탄생 과정을 통해 한 때의 무기력한 모습에서 탈피, 오는 12월 차기정권을 놓고 다투는 대선에서 다시 집권?수 있다는 자신감을 회복한 것이 가장 큰 수확이다. (서울=연합뉴스) 이상인기자 sangin@yna.co.kr